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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Jun 13. 2017

사진 좀 찍으세요?

'사진을 취미로 한다'는 것은...


어린 시절 사진기를 만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집에는 가보로 모시는 사진기도 없었고, 어쩌다 사진을 찍어야 할 일이 생기면 이웃에게 잠시 빌려 써야만 했다. 그러나 이웃이 애지중지하던 사진기를 마음껏 만질 기회는 오질 않았다. 행사가 끝나면 바로 반납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좀 지나자 일회용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그나마 사진기를 마음껏 만질 수 있었다. 어느 날인가 직장을 다니는 형님이 사진기를 한 대 마련한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언감생심 그것을 애용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사진기는 보물로 모셔야 할 만큼 비쌌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더 이상 사진기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필름 카메라. 젊은 시절을 추억하고 싶어 50불인가에 구입했다. 아직 시험 사진을 찍어보질 못했다. 기계는 잘 작동된다.

는 오질 않았다. 물론 필자가 사진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지만, 사진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만큼 관심의 척도도 내려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진 찍는 일을 취미로 삼을 수 있는 기회가 없이 그저 기록용으로 가끔씩 사진을 찍거나, 필요하면 사진관에 가서 얼굴 사진을 찍는 것으로 사진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왔는데도 필자는 여전히 사진에 관한 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흔해져 버린 사진기 홍수의 시대에도 사진기를 꼭 사야 할지 고민을 하는 정도의 관심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카메라와 본격적으로 만난 것은 아주 현실적인 이유였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어느 날인가 운명 같은 시간이 다가왔다. 고객에게 제안서와 사진을 함께 제시하면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부터였다. 전화기의 사진 기능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고, 사진기를 '한번 사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그 시점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많은 고민과 검색과 연구를 해야만 했다. 주변에 사진을 하는 사람이 없던 필자에게 그래도 좀 괜찮은 사진기를 고른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우연한 기회에 입수하게 된 구형 중형 카메라다. 기계는 작동을 한다. 그러나 필름을 다루는 기술이 없는 관계로 아직 시험을 해보지는 못했다.

이때부터 DSLR과 사진의 기초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일과 관련된 사진을 찍으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것저것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찍어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인터넷에 사진과 관련된 사이트들이 그렇게나 많고, 사진과 관련된 글들이 그렇게나 많으며, 아마추어든 프로든 사진가들이 찍은 사진이 차고 넘친다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과 관련된 사진은 거의 찍지 않고 이제는 찍고 싶은 것을 찍는 데 더 많이 활용하고 있으니 본말이 전도된 셈이기는 하지만, 필자에게는 사진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통로 역할을 해 주었다. 그렇게 사진은 내게 다가왔다. 



그 무렵인 것 같다.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 처음에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사진을 찍기 위해 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DSLR과 삼각대, 그리고 렌즈 한두 개 더 챙겨서 산을 오르니 처음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자기 몸을 가지고 다니기도 힘든데 그 무거운 것을 왜 들고 다니냐고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한 마디씩 한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고 해도 사진기는 꼭 챙겨갈 만큼 사진기와 친해질 무렵이 되니, 산에 오를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것도 물론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다닌 것은 아니었다. 

산을 오르다 보니 내려다 보이는 세상이 좋았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산 위에 있는 자연들이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산을 오르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더 넓은 세상과 만나는 기회는 계속 가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다닐 때도 물론 사진기는 옆에 끼고 다녔다. 삼발이, 예비 렌즈, 기타 필요한 물품들 -이젠 이 정도를 알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은 꼭 챙겨야만 여행 준비가 완료된 것으로 여길 만큼 사진과 많이 친해진 것 같다. 



사진을 취미로 가지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눈에 띄는 것들, 예뻐 보이는 것들, 좋아 보이는 것들, 깨끗해 보이는 것들을 주로 사진에 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찍으려는 대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조금 더 바라보게 되고, 조금 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옥토끼

그렇게 한 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대상의 특정 부분이 두드러져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대상 자체가 달리 보이기도 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럴 때 사진기 셔터를 누르면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기기도 하지만, 이때 담은 사진들은 나중에 보더라도 그 당시의 감흥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무엇인가와 관계를 맺을 때 좀 더 가까이서 좀 더 오랫동안 바라보고 생각하다 보면 그 상대와 자연스럽게 친밀해질 수 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심지어 생명이 없는 대상이라도 말이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그것들 대로, 생명이 없는 것들은 또 그 나름대로 그들이 그곳에 있는 그 상태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들도 내게 관심을 주게 된다. 이렇게 교감된 관심이 서로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아니, 더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과 연대하고, 공감하며, 기다려주고, 함께 행동할 때 우리는 또 다른 우리와 한 걸음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모르던 바는 아니지만, 사진을 찍으면서 더 절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별다른 의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찍은 사진이 좋아 보이는 경우가 있고, 오히려 의도를 가지고 잘 찍으려고 구도 잡고, 각도 잡고, 거리 잡고... 온갖 폼을 다 잡아서 찍은 사진이 꼭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잘 찍은 사진이 꼭 좋은 사진은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잘 짜이기는 했지만, 그뿐인 사진의 경우 한번 보면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지만, 형식적으로 잘 된 사진은 아닌 것 같은데 괜스레 끌리는 그런 사진들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 폴더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사진이 쌓여갔다. 아직 현상도 하지 못한 채 RAW 파일로 몇 년을 묵힌 사진들도 수두룩하다. 사진을 찍기는 하지만 딱히 어디 쓸데가 있어서 찍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대상들과의 관계가 깊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장씩 찍게 된 것들, 여행의 기억을 위한 편린들로써, 또 어쩌다 정말 전문 사진가라도 된 듯한 착각에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어떤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들도 있지만, 그런 사진들은 이미 주인을 찾아갔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파일들이 별 의미는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다가 여행기를 쓰게 되면 그 여행 중에 찍은 사진들 가운데 몇 장을 골라내어 글에 붙이려는 용도가 생긴다. 또 어쩌다가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해 사진이 필요한 경우 몇 장 골라 현상을 한다. 그게 다였다. 필자에게 사진은 이 정도 범위에서 사용되고 있다. 스탁 사진 사이트에 기웃거리기도 하고, 동호회 홈피에 올려 보기도 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찍은 사진을 다른 이들과 나누거나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거나 혹은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그치질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찍은 사진에 비해 보관하고 있는 사진의 양은 너무도 많고 지금도 기하급수적으로 쌓여만 간다. 


의문이 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일까? 

사진을 계속 찍어야 하나?


이 질문에 아직 답을 얻지는 못했다. 책꽂이에 몇 권의 책도 준비했다. 그리고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예술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면 있는 대상의 재현 또는 반복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의 생각과 느낌을 담아 나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든다. 다음 여행에도 사진기를 챙겨갈 것이다. 그리고 수도 없이 많은 사진을 찍을 것이다. 아직은 답은 얻지 못했으므로 관성적으로 담아오는 사진들은 또 컴퓨터에 저장되겠지. 아마 몇 장은 현상을 해서 여행기에도 붙이고, 블로그에도 올리고, 인스타에도 올리겠지. 그리고 정말로 운이 좋다면 괜찮은 사진을 하나쯤 찍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진은 좀 더 공을 들여서 '어디 공모라도 해 볼까?'라는 궁리를 할지도 모른다.  취미생활로 사진을 한다는 의미는 아마도 이 정도의 의미일까? 

비행; 갈 길이 먼 한 마리 새의 날갯짓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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