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8월 중순, 미국의 일상
8월도 중순,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토요일 아침에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운동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고, 타이어를 갈아야 하는 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집까지 걸어올 생각이었다. 기왕 걷는 김에 모처럼 주변을 천천히 살피며 사진을 몇 장 찍어볼 요량으로 사진기를 챙겨갔다. 처음엔 집으로 오는 길을 천천히 산책하며 걸을 생각이었지만, 사진을 찍다 보니 이곳저곳 좀 쏘다니게 되었다.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주지 주변의 일상을 통해 고국과는 좀 다른 부분들을 소개하고 싶다.
미국 제비!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고국에도 제비 개체수가 줄고 있단다. 미국으로 이주해서 그동안 제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드디어 제비를 봤다. 워낙 빠르게 움직이는 새라서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지만 생김새는 틀림없는 제비였다. 너무 반가운 새를 본 까닭에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으려나 기대해 본다.
'화사한 행복'을 다시 만나다
지난 오월에 '화사한 행복'이라는 글로 미국에 피는 자카란다(Jacaranda) 꽃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이 꽃나무는 봄에 만개하는 꽃으로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무성해져서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는 고마운 나무다. 그런데 산책하다 보니 이 꽃이 이 더운 여름에도 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봄철만큼 많지는 않지만, 그런 만큼 훨씬 더 예뻐 보였다. 희소성의 법칙일까?
집집마다 여름 꽃이 만발했다.
주택가 골목을 걷다 보니, 집집마다 앞마당에는 여름꽃들이 만발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수수한 빛깔과 모양으로 무더운 여름을 씩씩하게 견디고 있었다. 앞마당의 정원을 보면 집주인의 심성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꽃을 심었다는 자체는 심성이 곱다는 뜻이겠지? 꽃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심성이 곱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다른 집에 비해 유난히 정원에 신경을 쓴 집을 볼 수 있는 데, 이들은 십중 팔구는 일본 계일 공산이 크다. 아시아, 특히 일본 사람들의 정원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게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정원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분재(盆栽, bonsa)다. 그들의 정원에는 크고 작은 분재가 빠짐없이 심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분재를 굉장히 싫어하는데, 분재는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생명을 억압하고 제어하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있을까?
이곳에는 주택 형태 가운데 '모빌 홈(Mobil Home)'이라는 주택이 있다. 말 그대로 이동식 주택인 셈이다. 기본 베이스는 이동할 수 있도록 자동차의 베드 같이 생긴 철구조물 위에 구조물을 세워 집으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동하는 것은 아직 보질 못했다. 거기에 외장재를 붙여 겉모습만 보면 이동식 주택인지는 알아보기 힘들다. 내부 구조는 일반 주택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수도, 전기, 가스, 하수도 등의 설비가 다 되어있고, 냉. 난방도 되어 있으므로 살림을 하는데 전혀 불편함도 없다. 주차 공간도 마련되어 있고, 단지 안에 공용 수영장도 마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일반 주택과 무엇이 다를까? 모빌홈의 택지는 개인 소유가 아니고, 건물만 개인 소유다. 즉, 주택 매매 시 건물에 해당하는 물건만 거래를 하고, 택지는 임대료를 내는 방식이다. 모빌홈의 사업주는 대규모 택지를 시나 주정부로부터 저렴하게 임대를 받아 건물을 지어 매매한다. 그러므로 모빌 홈은 일반 주택 가격의 약 25% 정도에 거래된다.
미국은 땅이 넓어서 필요한 만큼의 주택을 지어 무주택자가 별로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땅이 넓은 만큼 황무지도 넓다. 캘리포니아만 해도 대부분의 땅이 사막 지역이다. 그러므로 실제 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이 그리 넓지만은 않은 셈이다. 물론 일 에이커(약 1200평, 4000평방미터) 쯤 되는 황무지에 집을 지을 수는 있다. 실제로 그런 집들이 꽤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먹고살기가 쉽지 않으므로 특수 목적이 없다면 일반인들이 그런 주택을 소유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투자 가치도 없으므로 사 둘 만하지도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람이 살만한 지역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게 되고, 특히 대도시 지역에는 이곳도 택지가 부족해졌다. 한국의 연립주택을 연상하게 하는 주택들도 들어서고, 대도시의 도심 지역에는 고층아파트들도 즐비하다. 이민자들이 많다 보니 경제적 자립도가 낮은 서민들은 주택 마련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모빌홈은 이런 서민들 중에서도 그래도 벌이가 좀 되는 사람들을 위한 주택인 셈이다.
창고가 필요해
언제부터인가 자율형 창고 공간인 셀프 스토리지(Self Storage)가 성업을 하고 있다. 대규모 부지에 다량의 창고를 지어 임대하는 곳이다. 창고의 크기는 아주 다양하게 구성돼있어서 필요에 따라 적절한 공간을 임대하여 사용할 수 있고, 임대주의 간섭 없이 물건을 입출고할 수 있다. 셀프 스토리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집에 수납공간이 부족한 개인들로부터 매장의 창고 공간이 없어 이용하는 개인 사업자들, 아파트를 임대해 살면서 창고가 필요한 개인 사업자들, 작품을 많이 생산해서 집에 보관하기 어려운 예술가들까지 창고가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임대료가 싸지는 않다.
거의 공짜
식물원이나 공원처럼 보이는 이곳은 너서리(Nursery)다. 식물의 묘목을 전시. 판매하는 곳이다. 그런데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규모가 보통이 아니다. 이런 너서리들은 주로 도심지에 있는데 땅 값도 비싼 도심지에서 어떻게 이런 규모의 너서리들이 성업할 수 있을까? 인건비는 고사하고 임대료가 장난이 아닐 텐데 말이다. 비밀은 바로 고압 전선에 있다. 이곳은 고압 전선이 지나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데, 고압 전선 밑에는 주거용 건물을 지을 수 없다. 고압선에서 나오는 인체에 유해한 전자파 등 때문에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정부는 이 고압 전선이 지나가는 바로 아래의 땅을 아주 저렴하게 임대하고 있는데, 이들 너서리 업자들이 이곳을 선점하고 있다. 얼핏 듣기로 평방 스퀘어피트 당 일 불씩 일백 년 기한으로 임대를 받았다고 하니, 이야말로 거의 공짜에 가깝다.
???
뒷골목을 걷다 보니 컵라면 상표가 나뒹굴고 있다. 처음엔 어! 했는데, 좀 착잡했다. 컵라면은 이곳의 구멍가게나 편의점의 인기 상품 가운데 하나이기는 하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라티노들의 입맛에도 곧잘 맞는 모양이다. 낯선 길에서 아는 상표를 만나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지만, 쓰레기로 나뒹구는 것을 보니 낯이 부끄럽기도 하다.
진정한 버거의 맛
우리 마을에는 상당히 많은 햄버거 체인 스토어 브랜드가 성업 중이다. 맥도널드를 필두로 잭 인 더박스, 인 앤 아웃, 델 타코, 타코 벨, 웬디스, 칼스 주니어, KFC, 위너슈니첼 등등등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을 만큼의 버거 체인점들이 있다. 물론 이들은 저마다의 다른 맛을 내걸고 영업을 하고 있지만, 크게는 별로 다를 게 없는 맛이다. 개인적인 편차는 있겠지만, 체인화 된 햄버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수월찮게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 많은 가게들이 다들 성업 중에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개인이 운영하는 햄버거 가게들과 비교하면 양과 질 모두에서 좀 부족하다. 처음엔 이런 조그만 가게에서 만든 햄버거가 뭐 먹을만할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한번 먹어본 뒤로는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크기도 크려니와 페티의 맛이 체인점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두어 시간을 걷고 나니 해가 중천에 걸렸다. 그야말로 핫하다. 몸엔 땀이 가득한데, 마음은 좀 가볍다. 지난 두어 달 동안 콧바람을 쐬지 못한 탓에 좀 울적했었는데, 그나마 이렇게라도 해소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본격적인 가을이 오기 전, 여름의 끝자락을 밟으러 한번 다녀와야 할까 보다. 몸이 햇빛이 고프다고 아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