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 부시 포인트:태평양 해안도로(PCH)
몇 주가 지났어도 진한 가을여행의 여운이 남아있는 11월 첫 토요일, 동네 바닷가(실은 동네 바닷가도 PCH에 있다)도 좋지만, 바람을 쐬려면 아무래도 동네를 벗어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두 시간여를 운전하며 가는 길에는 눈으로만 느끼며 가보기로 했다. 멈추지도 않고 사진도 찍지 않고 오직 눈과 마음으로 느끼며 탁 트인 태평양을 바라보며 두 시간여 동안 하염없이 달렸다. 파란 하늘에는 뭉게구름 몇 조각 떠 있고, 햇살에 반짝반짝 바닷 물결, 시원한 바닷바람이 기분 좋은 해감내를 실어다 주는 해안도로, 비록 컨버터블, 뚜껑 열리는 차는 아닐지라도 열린 차창으로 스치는 늦가을의 정취는 촉촉한 감성에 젖게 한다.
PCH는 샌프란시스코에 가까워질수록 좀 더 멋있는 절경을 보여주지만, 바다는 어디든 시시한 경치를 보여주는 법이 없다. 이곳은 이름이 근사해서 잠시 들렀던 곳이다. 무려 패러다이스 만(Paradise Cove)인데, 바로 옆에 주택가가 있고,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길 수 있도록 시설해놓았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놓고 가족 단위로 와서 즐기는 해변을 모토로 하고 있다.
줌마 비치(Zuma Beach)는 주립 해변(State Beach)이다. 날이 살짝 선선해진 까닭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 는 않지만, 이곳에서 소규모의 결혼식이 열릴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기도 하다. 저 멀리 텐트가 보이지만, 이곳은 낮에만 사용할 수 있는 곳이므로 텐트는 낮동안 이용하기 위해 쳐놓았을 것이다. 고운 모래를 밟으며 해변을 따라 걸으면 일상의 상념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다녀온 곳은 PCH 베니스 비치에서 말리부 구간을 지나 옥스나드의 채널아일랜드 해상 국립공원(Channel Islands National Park) 직전까지다. 이 구간에는 다수의 스테이트 비치(State Beach; 주정부에서 관리하는 해변)가 있을 정도로 경관이 뛰어난데, 이름이 붙어있는 해변에 들러 산책을 하는 등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중간중간에 마련된 해변 캠프장에서 캠핑을 하면서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해변 캠프장은 인기가 있는 곳이라서 성수기에는 1년 전부터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오늘 다녀오면서 해넘이의 장관을 맞이한 곳은 제대로 된 이름이 붙은 해변은 아니지만, 비공식적으로 트윈 부시(Twin Bush)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해변이다. 아마도 바다로 내려가는 길목에 두 그루의 잡목이 자라고 있어서 붙은 이름인 것 같다.
사람들에게는 일몰이 예쁘고 아름다운 장면이겠지만, 그곳의 생명들에게는 저녁이 오고 밤을 맞이해야 하는 시간일 것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충분한 먹이를 먹어둬야 할 시간이다. 분주한 시간이겠지...
이 해변은 크지는 않지만, 바닷가에 이렇게 작은 바위들이 오밀조밀하게 있는 구역이 있어서 이곳에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바위 사이로 가까이 가보면 그곳에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서식하는지 볼 수 있다. 특히 저 바위에 붙어있는 반짝이는 검은 것들은 바위의 빛깔이 검은 것이 아니라, 바로 홍합이 붙어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홍합들이 자라고 있지만, 마음대로 잡으면 혼쭐이 나니 조심해야 한다.
이것이 홍합이 붙어서 자라는 모습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다양한 생명들의 활동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들의 생태적 습성을 알고 관찰하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의 움직임이라든가, 먹이 활동이라든가, 서로의 경쟁까지 종별로 많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생명들 하나하나가 이 지구라는 행성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 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이 연출하는 장관을 보면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감탄사를 연발하거나, 조용히 앉아 지는 해가 남기는 흔적과 빛깔과 긴 여운에 자신을 돌아보거나, 혹은 연인들끼리 사랑을 맹세하는 등 달리 할만한 것이 별로 없다. 그러고 나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와 내일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오늘도 하루를 살 수 있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