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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미 Oct 08. 2022

스위스에 왜 왔니

어디서든 잘 지내는 너에게

정말 불편해 죽겠어. 갤럭서스라고 스위스 쿠팡 같은 쇼핑몰이 있어. 거기에서 전기장판을 시켰는데 장판만 오고 온도조절기가 안 왔어. 이번만 이런 게 아니야. 저번엔 전자레인지를 시켰는데 부지 않는 이상 분리되지 않는 고정형 돼지코가 끼워진 채로 배송이 왔어. 다이얼까지 이상해서 환불 보내었는 데 사용 흔적이 있다고 하는 거야. 돼지코는 내가 끼운 게 아닌데! 의료보험은 또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 내가 직접 지불한 병원비용을 환불받아야 하는데, 벌써 한 달째 기다리고 있어.

실수로 프라이팬을 태웠어. 한국이었으면 그냥 버리고 새로 샀을 거야. 근데 여기에선 한국 같은 가격에 살 수 없으니까 어떻게든 태운 자국을 지우려고 애썼어. 베이킹 소다를 뿌리고 그 위에 식초를 붓고 끓이기를 두 번 하니까 드디어 다시 좀 쓸만해졌어.

뭘 사든 여기에선 다 비싸니까 배송대행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한국에서 사보려고 해. 저번에 조립식 협탁을 오늘의 집에서 주문하고, 배송대행 신청을 했어. 내가 우체국에서 계산한 국제 배송비용은 10만 원 초반이었는데 오늘 23만 원을 입금하라고 연락받았어. 아니 협탁이 7만 원인데 이게 무슨 일이야.


도대체 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여기까지 와 이 불편함을 겪고 있나 싶었어. 짜증 나서 일을 일찍 마치고 강가에서 산책을 좀 했어. 금요일인 데다 날씨도 좋아서 강변에 사람들이 많더라. 유럽에 여행을 오면 현지 사람들 표정에 여유가 있는 게 부러웠어. 서울에선 다들 말 걸면 한대 칠 것 같은 표정으로 바쁘게 걸어가잖아. 막연히 해외 생활을 동경했던 이유는 그런 표정의 차이였던 것 같아. 나도 유럽에 살면 매일 저런 얼굴로 살 수 있을까 싶었어.


그래서 내 표정이 좀 좋아졌냐고? 잘 모르겠어. 큰 걱정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오늘처럼 사소한 일들이 나를 열받게 해. 달라져야 했던 건 상황이 아니라 나였던 걸까. 사소하게 짜증 나는 일들도 많지만 사소하게 즐거운 일들도 분명히 있을 텐데. 지금 내 눈엔 즐거운 일들이 잘 안 들어오는 것 같아. 이제 주말이니까 좀 즐거운 일을 해야겠어. 날씨가 좋으면 호수에 가고 비가 오면 미술관에 가볼까 봐.


2022.10.7. 한국식 유럽 살이 중인 유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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