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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미 Oct 09. 2022

스위스에 왜 왔니 2

떠난 이유를 묻는 너에게

“스위스에 오기로 결정한 이유가 뭐야?”

이 질문을 생각보다 많이 받았어. 나는 그냥 “복잡해”라고 대답하곤 해.


마침 스위스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었고, 또 마침 좋은 일자리가 있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떠나고 싶은 기분이 들었어. 그 기분은 어디서 온 걸까? 해외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 해외가 익숙한 친구들 사이에서 느낀 초라함? 다 맞아. 근데 그걸로 다 설명되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어.


운이 좋았던 나는, 좋은 팀에서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이 얘기를 해주곤 했어. 함부로 윽박지르는 상사, 당연한 듯 례한 회사 대표에 대한 얘기 같은 거. 또 내가 회사생활에 대해 불평할 때면, 다른 회사에서 일해본 친구들이 혀를 차기도 했어. “네가 진짜 K-직장생활을 안 해봐서 그래.”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학교 다닐 때 겪었던 기분 나쁜 일들이 떠올랐어. 선배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술을 강요했었던 일이나, 졸업 프로젝트 팀을 정할 때 여학생들끼리 하면 잘할 수 없다고 말하며 교수가 우리 팀을 허락해주지 않았었던 일 말이야.

밖은 겨울이고 나는 유리온실 안에 있는 것 같았어. 운신의 폭은 좁았고, 유리벽엔 언제 금이 갈지 몰랐지. 그러던 차에 스위스에 살던 친구가 자기 팀에 오지 않겠냐고 물어 왔던 거야.


난 아직 스위스에 대해 잘 몰라. 분명 여기도 문제가 많이 있을 거고,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지도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온실에 있는 것 같진 않아. 여기에서 한번 견뎌 볼 거야. 그러다 마침내 돌아가더라도, 나는 좀 더 용감해져 있을 테니까.


2022.10.8. 겁은 많지만 약하진 않은 유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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