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미 Oct 10. 2022

백조는 사실 발버둥치지 않아

월요일이 부담스러운 너에게

오늘은 호숫가에 다녀왔어. 친구와 벤치에 걸터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수다를 떨었어. 가끔 오리나 백조가 다가오면 빵을 뜯어 호수에 던져 주기도 하면서. 즐거운 주말을 보냈고, 크게 걱정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역시 기분은 좋지 않아. 내일 월요일이니까.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잘하고 싶어. 예정된 실험 날짜를 미루고 싶지 않고, 버그도 없었으면 좋겠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적화도 하고 싶어. 하지만 실험 날짜는 이미 일주일 넘게 미뤄졌고, 버그는 매번 새로 발견되고, 최적화는 커녕 내 코드엔 Hack이 난무해. 매번 내 능력의 120%를 쏟아도 목표의 80%밖에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아.

호수의 백조들은 우아하게 떠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아래로 발버둥 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지? 아까 호수에서 그 얘기가 떠올랐어. 백조들이 가여워 보여서 자꾸 빵을 뜯어 나누어 주게 되더라. 그런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까 그건 거짓말이래. 백조의 깃털 사이에 공기층이 있어서 별다른 노력 없이 떠있을 수 있다는 거야.

스위스 동료들은 야근을 하지 않아. 할 일이 있다고 해서 휴가를 미루지도 않고. 하지만 나는 늘 ‘30분만 더, 10분만 더’ 하다가 늦은 시간에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곤 해. 그런데 말이야. 우리 매니저가 보기엔, 내 성과에 아무런 문제가 없대. 오히려 번아웃을 걱정하더라고.

혹시 발버둥을 멈춰본 적 없어서 알지 못하는 것 일 뿐, 사실 나도 백조들처럼 가만히 물에 떠 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발버둥을 멈추면 어떻게 되는 걸까. 천천히 가라앉게 될까, 아니면 원하는 방향으로 물장구쳐 나아갈 수 있게 될까?

“여태 까치발 인생. 내게 요구되는 건 늘 높게 뻗은 두 손보다 조금 위”

에픽하이의 ‘빈차’의 가사야. 오늘 돌아오는 버스에서 노래를 듣는데 궁금해지더라. 그 높은 기대치를 요구하는 건 세상일까 아니면 나 스스로일까.


2022.10.9. 일요일 저녁마다 생각이 많아지는 유미가.




이전 07화 말하기 듣기 싸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