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롭티 입고 출근하는 요즘 것들
어디까지가 비즈니스 캐주얼인지 모르겠다는 너에게
지난여름, 취리히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있었던 일이야. 내가 가진 원피스 중에 상의 부분은 셔츠처럼 생기고 하의 부분은 그냥 치마인 게 있어. 셔츠처럼 단추가 달려있긴 한데 등에 지퍼도 있어서 보통 지퍼로 입고 벗어. 그 원피스를 입고 출근한 어느 날이었어. 야외에서 팀원들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명치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는 거야. ‘이 옷이 이렇게 통풍이 잘됐었나?’ 하고 옷을 보니까, 맨 윗 단추만 빼고 모든 단추가 풀려 있었어. 아침에 출근해서 점심이 될 때까지 내 브라자는 전체 공개였는데, 알려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거야.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요즘 신입들이 크롭티 입고 출근해서 어이가 없다”는 얘기를 봤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회사에서 남의 배꼽 보기 싫을 수 있지. 문제는 “누가 참을 것인가”야. 배꼽을 보기 싫은 사람이 참을 것인가, 아니면 회사에서 크롭티를 입고 싶은 사람이 참을 것인가. 인터넷의 여론은 “크롭티 입고 싶은 사람이 참아야 한다”였어.
하지만 우리 회사는 배꼽을 보기 싫은 사람이 참는 분위기야. 그날 내 브라자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이 꽤 있었을 텐데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던 건 남의 옷차림에 관여하는 게 무례하게 여겨지기 때문일 거야.
회사 분위기야 다 다른 게 당연해. 옳고 그름이 있진 않을 거야. 다만, 그 ‘회사 분위기’에 구성원들이 공평하게 기여하고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크롭티를 입고 싶은 사람들이 참기로 하자.”는 괜찮아. 하지만 크롭티를 입는 다수가 신입이기 때문에 쉽게 결론 내릴 수 있었다면 그건 괜찮지 않아.
2022.11.4. 크롭티 입고, 슬리퍼 신고, 곰인형 달고 출근하는 유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