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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환 May 25. 2017

손범수 아저씨 어디 계세요

보통 사람의 아프리카 여행법 - Maasai Mara, Kenya

 다행히 택시기사는 제시간에 숙소 앞에 딱 와 있었다. 교통체증이 시작되기도 전에 출발해서 한 시간이나 일찍 집결장소인 호텔에 도착했다. 로비에서 시간을 때우다 여행사에서 보낸 아저씨를 따라 호텔 밖으로 나왔다. 마트에 들러 음료수와 과자 등 차에서 먹을 군것질거리를 사고 나오니 빈 승합차가 한 대 와 있다. 일행 중 내가 제일 먼저 왔나 보다. 


나이로비의 아침


 잠시 후 도착한 두 동양 남자. 대만에서 온 이옌과 카이다. 중국인과 대만인은 정말 구별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일행이 한 명 더 왔다. 키가 큰 흑인 남자 로버트. 케냐 사람인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왔다고 한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차는 어느덧 나이로비 시내를 빠져나왔다. 의대생인 이옌과 카이는 방학이라 아프리카에 놀러 왔고 케냐에서 관광을 한 후 말라위에서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로버트는 고등학교 교사이고 정치, 경제를 가르친다고 했다. 나는 내 이름을 ‘Moon Hwan’이라고 소개하려다가 아무래도 이 사람들한테는 좀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냥 ‘Moon’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기억하게 쉽겠다며 좋아했다. 우리의 운전기사 겸 가이드는 찰스. 인상은 되게 험악한데 이름은 귀여워서 적잖이 당황했다. 찰스라니.


“이봐 친구들. 나는 조용한 건 못 참겠으니 계속 질문하고 시끄럽게 떠들라구.”

“찰스. 이따가 캠핑장에 도착하면 게임 드라이브(우리가 말하는 ‘사파리’)는 다른 차를 타고 하는 거지?”

“아니, 이 차로 계속하게 될 거야. 지금은 닫혀 있지만 이 차 나름 오픈카라구. 하하하.”


찰스는 무슨 말을 해도 유쾌하게 대답을 해줬다.



 두어 시간쯤 갔을까. 초원이 보이는 전망대에 차가 멈춰 선다. 내려서 기지개를 켜고 도시와 다른 찬 공기도 힘껏 마셔본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지평선을 보는 사이, 많은 승합차들이 이곳에 멈추고 또 떠났다. 마사이마라로 가는 많은 관광객들의 휴게소쯤 되나 보다. 아프리카에 와서 백인들이 이렇게 여럿 모여 있는 모습을 처음 봐서 그런지 평범한 관광객들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다시 출발해서 20분 정도 만에 다시 차가 멈춘다. 새 일행들이 여기서 합류했다. 덴마크에서 온 커플인 크리스천과 메티, 그리고 인도에서 온 우마.




“Such an International Group!”


 로버트의 외침은 이 여정의 진정한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같았다. 나이로비를 벗어날 때만 해도 탁 트인 교외의 풍경에 다들 ‘우와’를 남발했건만 아무리 풍경이 멋진 들 새로운 사람보다 반가울까. 다들 몸을 돌려 마주 보며 서로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크리스천은 한국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보통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별다른 반응이 없는데 크리스천은 내가 소개를 마치자 반색을 했다.


“이봐 Moon! 난 정말 한국에 관심이 많아.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한국에 제일 가보고 싶어. 특히 어디선가 남북한 군인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을 봤는데 조만간 가서 꼭 직접 보고 말 꺼야.”


 이것뿐 아니라 크리스천은 한국의 정치, 경제와 문화에 꽤 많이 알고 있었다. 반면 나는 놀랄 만큼 덴마크에 대해 아는게 없었다. 덴마크 사람을 Danish라고 하는 것도 방금 알았으니 말 다했다. ‘어렸을 때 안데르센 동화를 읽고 감명을 받았으며 레고를 좋아했다’ 같은 허접한 대답으론 남북한 정세에 대해 논하는 그에게 맞설 수 없을 것 같아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지평선이 보이는 초원, 간혹 옆으로 휙휙 비켜 지나가는 학교들, 길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원숭이들을 지나쳐 달리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북적이는 마을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안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고 있었다. 어느 여행 블로그에서 보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 동물들을 보기 전부터 나는 벌써 무슨 탐사대원의 일원이 된 것 마냥 들뜨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한 차는 이제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길이 울퉁불퉁해질수록 차는 천천히 달리고 차가 천천히 달리는 만큼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우리가 손을 흔들기 전에 먼저 손을 흔드는 아이들. 우리가 답례로 손을 흔들면 아이들은 더 세차게 손을 흔든다.



 캠핑장은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외부에 있었다. 우리가 묵을 곳은 튼튼한 천막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텐트였다. 침대 2개와 모기장,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었고 비가 와도 문제없도록 짚이 지붕을 덮고 있었다. 로버트와 같은 방에 짐을 풀고 첫 게임 드라이브를 갈 준비를 했다. 캠핑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식당도 들러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오후 4시. 게임 드라이브를 위해 차에 올랐다. 차는 올 때와 달리 오픈카가 되어 있었다. 모두들 소풍 가는 버스에 오른 초등학생들 마냥 기대에 부푼 표정이었다. 나는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막상 들어가 보면 별거 없을지도 몰라.’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장면들은 몇 박 며칠씩 밤새워서 찍은 거라던데 그런 장면이 쉽게 보이겠어?’


라며 스스로를 진정시켰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기대감과 설렘까지 짓누를 수는 없었는지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입구에서 기념품을 파는 마사이족 아주머니들을 지나 드디어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 근처엔 가젤 한 마리도 없더니 20분 정도 들어가니 동물들이 슬슬 모습을 드러낸다. 가젤, 누같은 초식동물이 띄엄띄엄 보이기 시작했다. 

 마사이마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누. 영어로는 Wildebeest라고 한다. 누를 가까이서 처음 보고 느낀 것은 ‘와, 얘네들 진짜 못 생겼네’였다. 길고 시커먼 얼굴에 흐물흐물 날리는 수염. 새끼, 어른 할 것 없이 늙고 못 생겨 보인다. 하지만 지금 같은 대이동 시기에 수백 마리씩 떼를 지어 강을 건너는 장관을 만들어 내는 녀석들 역시 누떼다. 



  흔히 빅 5라고 불리는 ‘Must See’ 동물들이 있다. 코끼리, 사자, 버펄로, 표범 그리고 코뿔소. 특히 코뿔소는 가장 보기 힘든 동물로 나도 아프리카의 세 국립공원을 방문하면서도 딱 한 번 봤다. 그것도 한 마리. 아무튼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빅 5를 다 봤네 못 봤네가 사파리 여행의 후기가 되는데 대부분 표범이나 코뿔소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누떼가 강을 건너는 장면이다. 동물 자체를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 동물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면 더욱 생동감 있는 아프리카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풀을 뜯는 누는 별 볼 일이 없어도 떼를 지어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정말 누가 빅 5가 다 같이 모여 있는 걸 봤다고 해도 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누와 얼룩말이 슬슬 식상하게 느껴질 때쯤 버펄로가 등장했다. 우와. 덩치도 엄청나게 크다. 녀석들의 등에 앉아 있는 새들은 뭐지? 악어새 같은 건가? 오! 저건 뭐지? 버펄로 중에 한 마리는 싸우다가 다쳤는지 엉덩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 저 멀리 기린이 보인다. 찰스는 차를 기린 무리 가까이에 세운다. 우왓. 기린도 엄청 크네. 무늬도 내가 알던 기린의 무늬가 아니다. 아프리카 기린은 좀 다른가? 오오! 코끼리다. 아기 코끼리도 있네? 진짜 귀엽다. 마지막으로 동물원을 간 게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이이라 그런가. 나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놀라고 있었다.


 아까부터 귓가에 멤도는 멜로디가 있었다. 그건 '우와~우와~'로 시작되는 목도리 도마뱀이 조연으로 출연한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의 오프닝송이었다. 어릴 적 신문 TV편성표에 나온 시간에 딱 맞춰 TV앞에 앉아 챙겨보던 프로그램이다. '정답입니다~'를 외치며 문제를 맞춘 패널에게 인형을 하나씩 주던 손범수 아저씨도 덩달아 떠올랐다. 그리고 우승자만 받을 수 있던 커다란 인형도.  

 TV를 통해서만 보던 그곳이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음에 감동하는 그 순간 왜 옛날 기억이 떠올랐을까. 기대했던 감상과 전혀 다른 감상을 하고 있는 내가 조금 이상했다. 


 그 모든 것이 여행감상이 된다는 것을 이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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