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08. 멕시코,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그냥 '산크리'라 불린다.
산크리에서 지낸 지 며칠, 우리는 공기처럼 느릿한 이곳의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시골 같은 평화로움과 예술적인 감성이 함께하는 그런 도시
오래된 골목 여기저기 보물찾기 하는 재미가 넘쳐나는 도시
시골인데 스타벅스도 있는 그런 도시 :-)
오랜만에 날씨가 좋은 오늘
우리는 '코카콜라교'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차물라의 산 후안 성당으로 향했다.
마야 전통 신앙과 가톨릭이 융합된 독특한 종교적 분위기로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모습 유명한 곳이다.
이든이에게 엄청 무시무시한 성당이라고 이야기를 한 것 부풀려 놓았더니 무섭기도 하고 신나기도 하고 얼른 가자며 성화다.
작은 봉고차를 타고 이동! 산크리에서 출발해 대략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멀지 않은 곳이다.
드디어 도착했다.
외관은 스페인 식민지풍이라고 하는데 왠지 우리나라 처마 같은 느낌도 들어서 예쁘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성당 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에 비해 굳게 닫힌 문이 왠지 쉽게 범접할 생각하지 말라는 듯 느껴져 입장이 조금 두려워졌다.
성당 왼편에서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었다.
내부사진 촬영은 전면 금지되어 있고 적발 시 어마무시한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내부 촬영은 물론 전통복장을 입은 여자들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하는데
'누군가 자신을 촬영하면 본인의 영혼을 빼앗긴다'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성당으로 들어가면 내부는 어둡고 연기로 가득하고
성당 내부는 많은 천주교 성인들의 동상들이 설치되어 있지만
바닥엔 의자가 아닌 솔잎이 깔려있고 촛불이 빼곡히 세워져 있다 한다.
사람들은 아픈 가족의 치유를 위해 생닭의 목을 비틀어 재물로 바치고, 코카콜라를 마신다.
코카콜라의 검은색이 신성한 색이라 여기고, 콜라를 마신 후 나오는 가스가 몸속의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데 애초부터 유일신을 믿는 가톨릭과 토착 마야 신앙의 결합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게 아닌가
여기까지 왔지만 나는 도저히 생닭 목 비트는 건 못 볼 거 같아서 입장 포기.
남편과 이든이만 다녀오라고 했는데 남편도 안 가겠다고.....
청소시간인지 살짝 열린 성당 문 사이로 어두운 내부와 바닥에 켜진 초들 이 보였다.
무서워 :-(
우리는 마을을 관통해 작은 공동묘지를 찾아갔다.
묘지 가운데 교회인듯한데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생화가 싱싱한, 만들어진 지 며칠 되지 않은 것 같은 묘지들도 눈에 띈다.
검은 십자가는 늙어서 돌아가신 분, 하얀색은 어려서 돌아가신 분, 파란 십자가는 기타 이유로 돌아가신 분이라고 한다.
“엄마 내 눈에 눈물 보여? 난 엄마가 죽으면 너무 슬퍼할 거야.”
이든이에게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누군가는 죽고 또 누군가는 태어난다고.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자고 이야기했다.
아이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맘인데 그러다 보니
엄마, 아빠 죽는다는 소릴 너무 많이 한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이 많은 엄마, 아빠의 노파심인가... 혼자 남게 될 아이가 벌써 애처롭다.
에잇! 쓸데없는 생각 그만!!
영화 코코에서처럼 죽은 후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어
묘비가 아닌 망자가 사는 집으로 만들어 둔 곳도 있었다. 작은 집도 있고 큰 집도 있고.
정말 죽은 사람들이 그 안에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두워지면 “활동을 시작해 볼까?”할 것 같은 느낌
망자들이 그곳에서 행복하기를 빌며 자리를 뜬다.
다시 성당 앞 평화광장으로 돌아왔다.
차물라는 일요시장으로도 유명한데 일요일이면 성당 앞 광장부터 길목까지 북적북적하다고 한다.
오늘은 일요일이 아니어서인지 한산한 분위기였다.
갓 튀긴 치킨 엠빠나다 냄새가 너무 좋아서 한 접시 사서 광장 한편에 앉았다.
엠빠나다 위에 몰레 뿌리고 양배추채 올리고 살짝 매콤한 소스까지 곁들이니 천상의 맛이었다!
튀긴 음식은 언제나 옳다.
다시 산크리로 돌아가는 길 우리가 타고 가던 콜렉티보의 바퀴하나가 펑크가 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차를 고치러 카센터에 들어갔는데 이든이가 잠이 들어 나와 이든이만 차에 남고 다른 승객들은 모두 내렸다.
우리를 태운 차는 위로 들려져 바퀴를 고쳤다. 차 안에 잠든 이든이와 나는 왠지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ㅋㅋㅋ
다시 산크리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으러 타코집을 찾았다.
이든이가 타코를 좋아하지 않아서 타코의 나라 멕시코에 왔지만 타코를 맘껏 먹지 못하고 있다. ㅜㅜ
다행히 이 집 타코는 다 맛있어서 가족 모두 배 터지게 먹었다!
소소한 풍경이 안정감을 주는 도시, 산 크리스토발 라스 까사스
왜 여행자들의 무덤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해 질 무렵,
과달루페 성당 언덕에 올라 주홍빛으로 물든 하늘에 감사 인사를 건넸다.
오늘 하루,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