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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보다 깊었던 20분

23. 08. 멕시코, 산크리스토 발 데 라스까사스

by 이미호


산 크리스토발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우리는 수미데로 협곡 투어에 나섰다.

숙소를 나서며 데스크 위에 열쇠를 올려두는 것으로 간단히 체크아웃을 마쳤다.


그런데 조금 앞서 걷던 남편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 시선을 따라 뒤돌아보니, 저 멀리서 우리 호스트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왠일이야…”

우리가 돌아볼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냥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니... 너무 감동이잖아!

‘산크리가 더 좋아진 건 당신 덕분이에요.’

기분이 좋아 배낭이 무거운 줄도 모르고 성큼성큼 걸었다. :-)






가방을 여행사에 맡기고, 아침식사 대용으로 빵 몇 개를 사 들고 투어의 모임장소인 소깔로 광장으로 향했다.






오늘 함께할 사람들은 총14명, 팔목에 갈색 팔찌를 하나씩 채우고 바로 렛츠고!






버스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렸다.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첫 번째 전망대는 작고 소박했지만, 아래로 내려다본 협곡은 장관이었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초록빛 강이 흐르고 있었다.

'멕시코 넌 없는게 뭐니?'






“이든아, 저 코딱지만 한 보트 보여? 이따가 우리 저거 탈 거야.”






별 볼일 없었던 두 번째 전망대를 지나, 본격적으로 협곡 아래로 내려가 보트를 탔다.






보트 타기 직전 드라이버는 미팅 포인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뒤에 미색 건물이 있고 그 앞에는 CHIAFAS 싸이니지가 있는곳!! 3시 40분까지 오라고 했다.

나도 남편도 똑똑히 보았다. 아니 봤다고 생각했다.





제발 달려줘

산크리는 고도가 2,200미터, 이 곳은 고도 400미터.

선선했던 날씨는 오간데 없고 뜨거운 햇살이 머리위로 무자비하게 내리쬐었다.

1분만 손등을 내줘도 화상입겠는데?






깎아지른 절벽, 그 위를 흐르는 폭포, 절벽 사이에 모셔진 성모상, 독수리 섬, 입 벌리고 자는 악어까지

다채로운 풍경들이 지나갔다.

영어를 지원하지 않는 가이드의 스페인어 설명에 제대로 알아들은 건 없지만 풍경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이 곳이 수미데로 협곡의 하이라이트!

탑승객 모두 한번씩 뱃머리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투어비는 이 한 컷을 위한게 아니었을까.






협곡이 끝날무렵 나타난 협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이고 곧 선착장에 도착했다.






점심은 강가 레스토랑에서 해결했다. 너무 더워서 어디를 고르고 할 정신도 없었다.

에어컨은 없었는데, 강바람이 시원했다.

생선요리는 예상외로 괜찮았고, 돼지고기는 기름졌지만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놀이방까지 있어서 이든이는 천국을 만났다.






3시 35분, 계산을 마치고 서둘러 식당을 나섰다.

햇살은 쏟아지고, 공기는 뜨거웠다.

사진 속 건물 앞, 그 자리에 섰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눈앞이 하얘지고 입술이 바싹 말랐다.
주변에는 사람 한 명, 버스 한 대, 그림자조차 없었다.
도대체 나와 남편이 본 사진은 뭐란 말인가?

“혹시 치아파스 싸이니지가 다른 곳에 또 있나요?"
알고있는 스페인어를 총 동원해 근처 상인에게 물었지만, 고개를 젓는다.

‘우리… 버스 놓친 거야?’ ‘이 곳에서 그럼 산크리로는 어떻게 가지?’ ‘오늘 밤 와하까행 버스는?’
시간은 이미 3시 45분을 지나고 있었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든이는 내 손을 꼭 잡고 말이 없었다.

'아놔!! 도대체 어디있는거야!!!.'



거의 포기하려던 찰나,
멀리서 슬로우모션으로 버스 한 대가 눈에 띄었다.
우리 버스다.
아마도 운전기사가 우리를 찾기위해 큰길로 나온 듯 했다.
“저거야!!”
우리는 거의 날다시피 버스로 내달려갔다.

일행들이 안도와 놀람이 섞인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흔치 않은 동양인 3명이 없어져 그들도 얼마나 놀랐을까?

운전기사도 우리를 찾으러 나간상황이라 버스에 있던 몇 명이 다시 운전기사를 찾으러 갔다.

“정말 미안해요… 정말 죄송해요…”

이렇게 또 한번 위기를 넘긴 우리가족의 여행이다.


오늘의 투어는, 협곡을 내달리던 순간보다 차를 찾아 헤매던 20분이 훨씬 더 스릴 넘쳤다. 휴~

근데 도대체 그 만남의 장소는 어디였단 말인가?






다시 산크리로 도시로 돌아와 여행사에 맡긴 배낭을 찾고, 스타벅스로 향했다.

한식을 먹기로 했지만 너무 기진맥진해선지 식욕도 없었다.


문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각자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두통이 몰려왔다. 두통약을 먹었지만 여전히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더위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고산병 증세였다.

400m에서 2200m로 단숨에 올라왔으니 그럴만 했다. 다행인건 나만 그런 증상이 있다는것.

'나 고산병 있는거야? 그럼 마추픽추 못가는거야?' 아픈 와중에서 여행부심이라니...






밤이 되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의 낯섦과 긴장감은 온데간데없고, 산크리의 모든 것이 예쁘게만 보였다.



오늘 밤, 버스는 또 다른 도시 와하까(Oaxaca) 로 향한다.

'멕시코의 전주'로 불리는 와하까! 또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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