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08. 멕시코
세계여행 첫 번째 위기
세계여행자들에게 ‘배낭여행자의 무덤’이라 불리는 세 곳이 있다.
— 태국의 치앙마이, 이집트의 다합, 그리고 멕시코의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
오늘은 바로 멕시코의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르로 향하는 날.
대체 어떤 곳이길래 그런 별명이 붙었을까?
조금은 피곤하고,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또 다른 곳으로 향한다.
새벽 5시 출발 셔틀을 타기 위해 부지런히 나섰다.
밤새 내리던 비는 다행히 그쳤고, 어둠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셔틀에 올랐다.
첫 번째 탑승자라 그런지 자리가 넉넉했다.
차는 산후안, 산마르코스를 차례로 돌며 여행자들을 태웠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마을의 불빛 사이로 희미하게 아티틀란 호수의 일출이 번져왔다.
구름이 많았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
6시 10분.
과테말라 국경까지 그대로 갈 줄 알았던 셔틀이 갑자기 주유소 앞에 멈춰 섰다.
"산 크리스토발 가는 사람은 여기서 내려서 좀 기다려요" 이 말을 남기고 차가 떠났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공기가 너무 차가워서 침낭을 꺼내 이든이 몸에 둘둘 말았다.
'설마 차가 오지 않는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에 이리저리 서성서성 거렸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셔틀이 도착했다.
두 번째 탄 차는 처음 탄 차보다 편했지만 구불구불한 산길에 멀미가 몰려왔다.
눈을 감아도 흔들림이 느껴졌다. 겨우 잠이 들려는 순간, 휴게소에 멈춘다며 깨운다.
핫도그 하나와 커피 한 잔, 과자를 사 먹으며 남은 께찰을 털었다.
그렇게 다시 출발했는데, 이번엔 뒤따라오던 다른 셔틀이 펑크가 났단다.
우리 차 기사님도 내려서 차 수리에 동참했지만 결국 고치지 못했고
그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우리 셔틀로 옮겨 태워졌다.
차 안은 숨조차 막힐 만큼 빽빽해졌다. 그 와중에 이든이는 여전히 꿀잠 :-)
12시 반이 되어 드디어 과테말라와 멕시코 국경, 프론테라 라 메시아(Frontera La Mesilla)에 도착했다.
시장 골목 한편에 있는 과테말라 출입국사무소는 너무 소박해서, 기사님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도장 ‘꽝’— 출국 절차는 단 10초 만에 끝났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다시 셔틀을 타고 멕시코 측 출입국사무소(Ciudad Cuauhtémoc)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엄청 시간이 오래 소요되었다는 글을 보았지만 우리 차는 여섯뿐이니 금방 끝나겠거니 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출입국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 입국 신고서를 제출하고
준비한 서류(여권 복사본, 계좌 잔고증명, 항공권, 숙박 확인서)를 제출했다.
앗! 근데 이든이의 항공권이 빠졌다.
어제 꼼꼼히 확인했어야 하는데 세명의 서류를 준비하다 보니 누락된 모양이다.
다행히 길 건너 작은 문방구에서 출력이 가능하다고 해서 부랴부랴 문방구를 찾았다.
항공권 한 장 프린트하는데도 짜증이 솟구치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출력하고 서류 제출은 통과.
이번엔 입국세를 내야 할 차례.
지난달 칸쿤으로 입국할 때 이미 냈었다고 이야기했지만 또 막무가내로 내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입국세를 내는데 직원이 한 명이라 일처리가 너무 느렸다.
우리와 함께 차를 타고 온 3명은 이미 수속이 끝난 상황이라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렇게 30분 이상 걸려 입국세까지 납부 완료.
입국세 영수증을 제출하자 출입국 심사관이 여권을 한 장씩 스캔했다.
그런데 이든이 차례가 되자,
“헉” 하며 놀라더니 곧바로 안쪽 사무실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참 후에 나온 심사관은 뜻밖의 말을 했다.
“이든이의 여권을 본부에서 확인해야 해서 이메일을 보냈어요."
"언제 결과를 알 수 있나요?"
“몇 시간 안에 확인이 될지, 오늘 안에 될지 우리도 알 수 없어요."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나 무책임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결과를 언제 알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에 우리를 산 크리스토발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셔틀은
우리 가족을 두고 떠났다.
셔틀을 같이 타고 왔던 여행자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혹시 다섯 시 반 넘어서도 결과가 안 나오면, 오늘은 그냥 이 마을에서 머물러.
어두워진 뒤에 이 국경을 넘는 건 위험해요.”
국경 한가운데에 우리 셋만 남았다. 무서웠다.
'도대체 5세 아이의 여권에 문제가 있을게 뭐가 있단 말인가?'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 현재 진행상황이 어떠한지 알고 싶었다.
우리가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대사관 직원과 통화하면 일처리가 좀 빨리 되지 않을까?
그 덕분이었을까, 잠시 후 “확인이 완료되었다. 문제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렇게 빨리 해결될 거였으면 우리 셔틀 안 보내도 됐잖아...
이미 셔틀은 떠났으니, 이제는 우리 스스로 산 크리스토발로 가야 했다.
다행히 심사관은 우리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줬다.
“꼬미탄까지 콜렉티보를 타세요. 거기서 갈아타면 산크리스토발까지 갈 수 있어요.”
그리고 직원이 직접 국경 근처 콜렉티보 정류장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면서
기사에게 우리를 꼬미탄에서 산 크리스토발행 콜렉티보를 탈 수 있게 도와주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멕시코 국경에서 두 시간 반을 보낸 뒤 국경을 떠날 수 있었다.
짜증이 잔뜩 난 남편은 맥주 한 캔을 꺼내 꿀꺽꿀꺽, 이든이와 나는 뒤늦은 점심을 먹었다.
남편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달 멕시코 출국할 때 이든이 출국처리가 제대로 안돼서 그런 거 같다.
아니면 입국할 때 체류기간을 90일을 줬는데 오늘은 항공권 날짜대로 25일만 주려니 충돌이 생긴 거 같다. 이미 입국세를 냈는데 또 내게 해서 문제가 생긴 거 같다. 온갖 추측을 해댔다.
난 어쨌든 해결됐고,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으며
오늘 안에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할 수 있으면 된 거다 싶다.
세상에 내가 가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가장 쉬운 문제 아닌가.
꼬미탄에 도착해 다시 산크리스토발행 콜렉티보로 갈아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둠 속, 7시 반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했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새벽 5시에 시작한 오늘 하루가 밤 8시 되어 끝났다.
라면을 끓여 먹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니 하루의 모든 피로가 씻겨 내려갔다.
오늘 하루, 정말 길었다.
“그래도 무사히 도착했다.” 이거면 됐다.
내일부터 '여행자의 무덤'에서 재미있게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