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문학동네
가끔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 책장에서 시집을 꺼내게 된다. 쉼이 필요하다는 것은 마음과 생각의 공간이 무언가로부터 촘촘하게 들어차 있을 때, 그곳에 틈을 내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일 텐데, '시'는 연과 행 속의 여백을 느끼며 읽는 글이다 보니 이러한 '쉼'과 꽤 어울린다. '시'와 '쉼'. 날숨 소리까지 비슷한 두 글자는 입술 위에 검지를 갖다 대며 누군가에게 조용하라고 내는 소리 같기도 하고, 품 안에 아기를 안고 재울 때 입으로 내는 소리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고요하고 소란스럽지 않게 읽어야 하나 보다.
그렇게 고른 시집이다. 표지에서부터 여유가 느껴진다. 성긴 글자 배열들 사이로 널따란 흰 공간이 훤하다. 이 책은 52번째 문학동네 시인선으로, 이문재 시인의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시집이다. 학창 시절, 지문으로 만난 시인 외에는 아는 작가가 전무할 정도로 시.알.못인데 이문재 시인을 우연히 접하고 언제부턴가 그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이 시집을 소장하는 것은 물론, 자연스럽게 이문재 시인이 칼럼이나 외부 강연 등에서 자주 인용하신 책들(저항안내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등)에 관심이 생겨 스스로 찾아 읽어보기도 했다.
절제된 언어로 감성을 흔드는 많은 시들이 이 한 권의 시집 속에 들어있다. 페이지의 순서라는 강박에 벗어나 독자가 읽고 싶은 시를 골라 맛볼 수 있다. 그렇게 나의 생각을 오늘 이 곳에 남기고 싶도록 만든 시는 바로 <사막>이라는 시다.
이문재, 「사막」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일이다.
예전 중국 내몽고로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다. 초원과 사막, 그리고 쏟아지는 별을 보러간 여행이었다. 일 년 365일 중 흐린 날이 3일 정도 있을 정도로 맑은 하늘을 가진 곳이라 해서 기대를 가지고 갔지만, 내가 도착한 날이 그 3일안에 속한 날이라 아쉽게도 별은 보지 못했다. 다행히 드넓은 초원과 사막은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지평선 너머까지 보이는 수많은 사구_砂丘 들을 보며 자연의 웅장함에 압도되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내가 눈에 담았던 엄청난 광경이 (시에서 말하는 대로) 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들이 만든 장면이라니. 시인은 시를 통해 우리 사는 세상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작동한다고 일갈한다.
또한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모래와 모래 사이라 이야기하며 그것 때문에 사막이 오래전부터 존재할 수 있었다 말한다. 모래사막으로 인간 군상을 떠올리며, '관계성'을 짚어낸다. 거칠고 건조한 모래 알갱이를 보고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이'라는 단어로 관계의 의미를 꺼내는 것이다. 시인의 은유의 과정을 추리하며, 그의 생각 속 자유로운 유영을 따라가 본다.
사실, 이 지구 상의 존재하는 인간의 숫자보다 이들이 연결되어 완성된 선분의 숫자가 더 많다는 건, (한 점이 여러개의 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굉장히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당연한 사실을 익숙함 속에 잊지 않도록, 또는 중요한 것을 그렇지 않은 것들로부터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래하는 게 시인의 역할이지 않을까. 그래서 시인은 전체 시에서 절반 이상을 연속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여 노래한다.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것은 그 사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것은 그 사이라는 것.
시를 읽는 동안 실험 하나가 떠올랐다. 하버드대의 그랜트스터디_Grant Study라는 실험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진행되는 연구로 유명한 이 실험은 1938년, 당시 하버드대의 2학년 남학생 268명을 선정하여 그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졸업한 이후로도 80년동안 계속되었다. (놀랍게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 무엇인지 신체적, 정신적 건강들의 다양한 요소들을 측정하여 연구하였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결론을 짓는다.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의 깊이와 의미가 그들의 행복 수준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링크(the havartd gazette)
“The surprising finding is that our relationships and how happy we are in our relationships has a powerful influence on our health,” said Robert Waldinger, director of the study, a psychiatrist at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and a professor of psychiatry at Harvard Medical School.
"관계와 관계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가 건강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 아주 놀라운 발견입니다." 연구 책임자, 로버트 왈딩거 하버드 교수
실험의 결과처럼 삶의 의미를 만드는 것이 바로 관계라는 것이다. 우리 부부의 딸, 재인이도 그 사이에서 탄생했다. 내가 사랑하는 일 또한 조직이라는 우리 사이에서, 혹은 고객과 나 사이에 존재한다. 우리는 평생 동안 그 사이를 만들고 그것의 의미를 느끼기 위해 애를 쓴다. 바꿔 말하면 사이가 나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시에서는 '그래서 ~을 해야 한다’는 처세술의 가르침은 없다. 이런 사실이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로 갈음할 뿐이다. 그저 관계를 필요로 하는 태생적 한계는 태고부터 시작된 원리라는 것이다. 단정 짓는 시인의 말투 때문에 '원래 다 그런 거야' 라며 개인적인 상황을 스스로의 기준으로 치부하며 결론짓는 무책임한 꼰대 부심으로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담담한 단어 선택과 간결한 구성 때문인지 시인의 이야기 속에 '너도 그렇지? 나도 그래.'라며, 서로의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어주는 따뜻함을 느낀다.
읽고 나면 책을 덮는데,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표제로 격려도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