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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an 13. 2020

만화 동사의 맛

김영화, 김정선/ 유유

  2020년,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아이폰과 함께 세상에 탄생했다. 잡스가 선사한 '혁신'의 감동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인류이다. 최근 이들보다 새로운 신인류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쓰지 않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용불용설을 같은 세대 안에서 확인할 줄이야. 아주 마땅히 머릿속에 있어야 할 그 '개념'이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날로그 시계를 읽지 못한다.


 디지털 신호로 원하는 시간 정보를 더 빠르고 편하게 읽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만 시간을 읽는다면 언젠가는 12시를 두 바퀴 돌아야 하루가 완성되는 시간의 체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나열된 숫자만 읽게 될 것이다. '째깍째깍' 태엽 돌아가는 소리와 '뻐꾹뻐꾹' 울음소리도 함께 없어지겠지.


 물론 이 같은 변화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세상은 항상 변화하고 있었다. 나 역시 앙부일구나 자격루로 시간을 읽는 방법을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한 어려움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아날로그시계를 읽지 못하는 저 친구들도 남은 여생 동안 이 문제로 인한 불편함은 절대 없을 것이다.

앙부일구 애플워치? @Dioniso Punk(페이스북)

 위와 같은 비슷한 충격을 학교 현장에서 느껴본 경험이 있다. 낱말 카드들을 탐색하는 활동을 중학생들에게 설명하는데 모든 학생들이 그 방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전에서 단어를 찾을 때의 원리인 단어 순서만 알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활동이다. 그런데 이 학생들 중 어느 누구도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간편한 검색 시스템으로 탐색이 어려워지고 있다. 내가 원하는 정보에 다가가는 시간은 현저히 줄었다. 하지만 ‘탐색’이라는 과정 속에 수많은 단어들을 만나는 기회도 함께 줄었다. 내가 ‘검색’한 정보 외의 다른 정보는 차단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재밌는 책 한 권을 읽었다. <동사의 맛>이라는 만화책이다. 아래처럼 우리말의 여러 가지 용언들을 비교하고 이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야기 책이지만 동시에 사전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책을 읽고 나서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작성한 글은 만화책을 읽고 나서 쓴 글임을 밝힌다.)

 비슷한 의미를 지닌 동사들을 정확하게 구분하기도 하고, 형태는 비슷할지라도 그 뜻이 전혀 다른 표현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설명만 모아놓으면 자칫 따분한 교과서가 될 수 있겠지만, 소설의 구조 안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글을 읽는 것만으로 흥미롭다. 더구나 만화의 서사는 각각의 단어가 가진 느낌을 이미지로 쉽게 표현한다. 물론 시각화 과정 속에 원작 소설을 해칠 수 있었겠지만, 그것을 애초부터 염려하였던 만화가의 깊은 숙려도 함께 느껴질 정도로 그림체는 힘을 뺀 듯 아주 간결하다.

해찰하다 vs 헤살하다
'해찰하다'는 마음에 썩 내키지 아니하여 물건을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려 해치다.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하다 라는 뜻을 지닌 동사고 '헤살하다'는 일을 짓궂게 훼방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다. 해가 들어가는 데다 뜻풀이에 해치다라는 낱말까지 들어 있어 '해찰하다' 쪽이 훼방을 놓는다는 말로 여겨지지만, 훼방을 놓는 건 '헤살하다'쪽이다. P. 162-163


"후려치다는 위에서 아래로! 휘갈기다는 가로로!"

 우리말을 모아 사전을 편찬하는 일제강점기를 그린 <말모이>라는 영화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는 단어마다의 정확한 의미를 구분하지 않은 채 사용한다. 후려치는 건지 휘갈기는 건지 모른 채 손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말은 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어는 사유의 기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정확하게 단어를 구분할수록, 생각을 확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느 시대보다 '창의적 사고'가 중요해지는 이때, 내가 쓰고 있는 단어 하나하나에 깊은 관심을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동사의 맛> 만화책을 읽으며 편리한 '검색' 보다 고생스러운 '탐색'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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