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엄마는 모르게
[에세이] 분홍색 커피콩
공공장소에서 마구 뛰어다니며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아이, 주변 의식 없이 소리 지르고 떼를 쓰는 아이, 스마트폰의 볼륨을 크게 키운 채 만화영화를 보는 아이, 계산하지 않은 과자를 뜯어 먹으며 깔깔대는 아이,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제지하지 않는 부모들. 훈육이라곤 강아지에게 밖에 안 해본 미혼이지만, 마음 속 깊은 솔직한 꼰대어가 튀어나올 때가 있다.
“안 맞고 커서 그래”
오빠와 나는 어렸을 때 꽤 많이 맞고 자랐다. 부모님이 폭력적이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고쳐야 할 나쁜 버릇이나 예절 앞에선 우리 부모님에게 아량이란 없었다는 말이다.
오빠가 방으로 불려가 아빠에게 엉덩이를 맞았다면, 나는 엄마에게 구둣주걱으로 위 허벅지를 맞았다. 살이 많은 부위라서 그런지, 맞은 부위가 2-3 분 후면 스멀스멀 부어올랐다. 그 모양이 꼭 커피콩 같았다. 엄마의 꾸중은 귀에 듣는 둥 마는 둥, 부어오르는 허벅지의 커피콩을 손끝으로 간질이며 이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은 잔소리와, 약간의 체벌이 끝나고 나면 엄마는 내심 미안하셨는지 “일루와.” 하시며 조금 토닥여주시기도 했다. 가끔은 잘못한 척, 반성하는 척하는 나를 보며 웃음을 꾹 참으시기도 했는데,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나의 어색한 애교에 넘어가 결국 소리 내어 웃어주시기도 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에서 학교와 가정 내 체벌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체벌이 가해가 되는 사회이고, 사랑의 매는 옛말이 된 것이다. 체벌을 통해 약간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었던 나 같은 케이스도 있지만, 꽤
많은 연구 결과에서는 체벌이 문제적 행동을 개선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내 부모님 모두 부모가 처음이기에 훈육에도 서툴렀을 그 시절들, 다행히 내게 지우고 싶은 기억은 아니다. 무엇 때문에 혼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그저 허벅지 위 분홍색으로 부어오르던 커피콩만이 떠오를 뿐이다.
부모님의 품을 떠나고 나니, 범법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아무도 나에게 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혼자서 스스로를 가두고 미워하고, 상처를 주고선 또다시 내가 나를 위로한다. 가끔은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무엇이 어떻게 왜 잘못되었는지 따끔하게 일러주곤, 다시 감싸 안으며 타일러주시던 엄마가 그립기도 하다. 그땐 몰랐지만, 분홍색 커피콩이 나중을 위한 사랑이었다는 것도 이젠 안다.
・ 글쓴이 : 이가루(35/여/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