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4-믿음의 가운데에서(2)>

by 혜니




출근하는 길에 사 온 두부와 장독에서 퍼 온 된장으로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매운 된장찌개를 끓였다. 은미 씨는 나를 우러러보았다. 된장찌개를 집에서도 끓일 수 있다는 것에 감동한 듯했다. 아니 그럼 된장은 왜 있는데요. 어이가 없어서 물었더니 약된장이란다. 헐. 나는 약재로 쓰는 된장을 가지고 찌개를 끓인 것이었다. 은미 씨는 상관없다며 뚝배기 가득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변변찮은 반찬도 없이 찌개와 김치 하나 달랑 놓고 먹는 밥상이었지만 맛은 좋았다. 된장이 좋아서 그런가. 내가 끓인 찌개지만 정말 맛있었다. 한 그릇 더 먹을까요? 하며 마주 웃는데 대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나는 벌떡 일어나며 돌아보았다. 허억. 심장마비 오는 줄 알았다. 피골이 상접한 몰골은 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깔딱깔딱하며 들어서는 앙상한 여인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부축해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 같았다. 은미 씨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냉큼 숟가락을 던지고 달려왔다. 여인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의 부축을 받아 대청으로 올라왔다. 나는 푹신한 방석을 깔아 주고 치워 두었던 상을 폈다. 은미 씨는 여인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내게 주문했다.


“우선은 미지근한 물부터 한 잔 주세요. 찻물 올려놓으시고요.”


나는 박 노비로 돌아가 충실하게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 가장 가벼운 잔에 미지근한 물을 담아내어 주었지만 여인은 그 잔 하나 들기도 버거워 보였다. 은미 씨는 물을 천천히 씹어서 다 마시라고 차분하게 일러주고는 나에게 해당화 술이 있으니 한 잔만 담아 오라 했다.

술? 이 훤한 대낮에요? 하지만 충실한 박 노비는 군말 않고 국자와 그릇, 술잔을 챙겨 건넛방으로 들어갔다. 방안 가득 꽉꽉 들어찬 병들 사이에서 해당화 술이라는 단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아, 여기 있다.”


나는 꽉 잠긴 병을 힘껏 열고 새하얀 도자기 잔에 검붉은 술을 한 국자 떠서 담았다. 하얀 잔에 담고 보니 선명한 붉은색이었다. 향기도 좋았고 색깔도 예뻤다. 국자에 남은 것을 호로록 먹어보려다 꾹 참고, 나는 서둘러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술을 내어주자 여인은 주저하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드세요. 지금 상태로 약이든 차든 드셔 봤자 제대로 효과 보기는 힘듭니다. 단번에 다 비우지 마시고 조금씩 나누어서 천천히 드시면 됩니다.”


은미 씨는 부드럽게 웃으며 여인의 앙상한 등을 연거푸 쓸어내렸다. 잠시 고민하던 여인은 홀짝홀짝,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가 술을 마시는 사이, 은미 씨는 나를 데리고 주방으로 갔다.


“이건 해당화 열매로 만든 효소입니다. 이 잔에 두 스푼만 넣고 미지근하게 타서 가져다주세요.”


은미 씨는 차통들이 가득 진열된 진열장 아래를 열고 한자로 이름을 써 놓은 병을 꺼냈다. 내가 그것을 받아 들자, 은미 씨는 서둘러 나가 버렸다. 아무래도 저 환자는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았다. 그래. 내가 봐도 끔찍할 정도인데 은미 씨 눈에는 훤히 보이겠지. 나는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해당화 차를 타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미지근하게 끓인 붉은 차는 향긋하면서도 효소 특유의 향이 진하게 났다. 석류보다는 조금 더 탁하지만 약간 주황빛이 도는 붉은 음료는 그 색깔만으로도 식욕이 솟아났다. 아. 된장찌개 아직 그냥 있는데. 상도 치워야겠다.

나는 음료를 가져다 두고 먹다 만 점심상을 주섬주섬 치웠다. 저 멀리서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는 은미 씨의 시선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좀. 아무리 먹는 게 좋아도 아픈 사람 앞에 두고. 이따가 간식 맛있게 해 줄 테니 포기하세요. 나는 엄청난 스피드로 점심의 흔적을 말끔히 치워버렸다.


“정우 씨, 송화다식 한 개만 갖다 주세요.”


주방으로 들어가는 나에게 은미 씨가 또 다른 주문을 했다. 송화다식이 뭐지? 아까 그건가. 흑임자다식 옆에 있던 노란 건가, 아님 연두색인가. 나는 상자를 열었다. 열 개 남짓 들어있는 노란 다식과 연두색 다식 중에서 고민하다가 송화라는 이름에 깨달았다. 송화. 소나무 꽃가루. 그 노란 가루. 봄비 테러범. 그건가. 나는 노란 다식 두 개를 작은 꽃 모양 접시에 담았다. 한 개는 뭐냐. 야박하게. 주려면 두 개쯤은 줘라. 좀. 술도 먹여놓고.

하지만 은미 씨는 하나만 먹으라고 당부했다. 그녀가 하나를 집어가고, 은미 씨는 냉큼 접시를 내게 돌려주었다. 야박하기는. 쳇. 그게 얼마나 귀하고 비싼지는 모르겠지만 너무하잖아.

내가 정리를 마치고 오자, 은미 씨는 방으로 들어갈 것을 권했다. 술잔은 겨우겨우 다 비운 것 같았다. 나는 앙상한 여인을 부축해 상담실로 옮기고, 미지근한 해당화 음료를 가져다 놓았다. 방문을 닫고 돌아 나오면서 이번에는 어떻게 사기를 치려나 하는 궁금함도 들었다. 휴대폰의 녹음 어플을 켜고 대청에 걸터앉은 나는 방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병원에서도 딱히 병명이 없어요. 아시죠? 신경성입니다. 하는 것들요. 신경성 위염, 신경성 장염, 신경성 불면증, 신경성 편두통... 죄다 신경성이래요. 원인이 딱히 없는데, 아프고 토하고 쓰러지고 못 먹으니 그냥 신경성이라고만 해요. 결국엔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는데... 도통 나아지지가 않아서요.”


기운 없는 목소리로 증상을 이야기하는 여자는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겨우 조금이나마 먹으면 그마저도 토하거나 설사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먹은 거라곤 보리차와 청주 조금이 전부라고 했다. 워낙에 못 먹고 못 자니 청주는 친정의 어머니 권유로 자기 전에 한 잔씩 마시고, 하루 종일 속이 쓰리고 아프니 물을 마시는데, 그나마 보리차는 잘 넘어가서 그걸 마시고 있다고 했다. 은미 씨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는지, 조용했다.


“약은 독하지, 음식은 안 넘어가지. 속은 속대로 상하고 기운도 없고 이러다 진짜 죽는 게 아닐까 겁이 나서 물어물어 찾아왔어요. 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


애원하는 목소리는 가늘고 힘이 없었다. 하지만 간절했다. 뭐 하는 겁니까. 계산기 두드리지 말고 약 좀 지어 주라고요. 좀 살려줘요. 진짜 톡 치면 죽을 것 같은 사람인데.


“속에 담아 둔 것이 많아서 병이 난 것입니다. 속에 쌓아두고 속으로만 앓으니, 그것이 썩어 병이 된 겁니다. 흔히 말하는 화병, 그것입니다. 우스갯소리가 아닙니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들을 모두 꾹꾹 눌러 참고, 속으로만 삭히니 그것이 탈이 난 것이지요. 어느 정도는 삭힐 수 있겠지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것들을 속에 꽁꽁 담아 두고 있으니 썩어버린 겁니다.”


그건 또 뭔 소리야. 결국은 신경성이라는 말이잖아? 아니, 저기요. 사장님아. 한약사가 왜 그런 소릴 하고 있는 겁니까? 내가 화병으로 돌아가시겠네. 그럼 속에 든 화를 꺼내 풀어야 하니 굿을 합시다. 하겠네. 연화선녀한테 전화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해당환지 뭔지 하는 술이랑 효소 먹이고 물도 씹어 먹으라고 하길래, 이번엔 제대로 하나 했더니. 에이. 모르겠다.

저 사람, 입고 있는 옷은 명품 같던데. 있는 집 사람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또 연화선녀가 보낸 건가?


“하지만... 세상살이가 그렇게 어디 내 맘대로 되나요. 저도 온갖 방법 다 찾다가 연화선녀님께 선생님 이야기 듣고 정말 힘들게 찾아온 거예요. 선녀님 찾아간 것도, 선생님 찾아온 것도, 저희 시어머님이 아시면 경을 치실 거예요.”


역시. 연화선녀 짓이었다. 그럼 이건 사기의 현장이다, 이거군. 오늘 제대로 잡겠다.


“고부갈등이 원인입니까?”


고부갈등이라. 그 질문을 하는 은미 씨의 목소리도, 그렇다 대답하는 여자의 목소리도 무거웠다. 그래. 대한민국 최대 난제라고 하는 고부갈등. 세상에 그렇게 무서운 기싸움도 없다고 하지. 아무래도 그 고부갈등이 극에 치달으면서 병을 얻은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사람이 저 꼴이 된 걸까. 나는 문에 조금 더 바짝 붙어 귀를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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