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4-믿음의 가운데에서(3)>
“올해로 결혼한 지 3년째예요. 저희 집안은 독실한 불교 집안이고 남편의 집안 독실한 기독교 집안입니다. 하지만 남편도 저도 무교나 다름이 없어요. 남편은 그저 부모님 성화에 어릴 때부터 교회에 그저 들락거린 것뿐이고, 저 역시 부모님을 따라 절에 구경만 다녔습니다. 저나 남편이나 종교에 관심도 없고 딱히 의지하고 싶지도 않고요. 결혼할 때도 종교문제 때문에 양가에서 마찰이 있었지만 남편이 열심히 양가 어른들을 설득하고 종교 문제로 서로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나서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그때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요.”
여자의 목소리는 정말 작았다. 작고 가늘고 힘이 없었다.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힘겹게 긴 이야기의 포문을 연 뒤 잠시 조용했다. 목이라도 축이는지 나무 상에 그릇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튼, 처음 석 달 정도는 별말씀 없으셨어요. 석 달쯤 지나니까 시어머님은 저희 집에 방문하실 때마다 석고로 만든 예수 상, 벽걸이 십자가 같은 기독교적 장식품들을 하나하나 두고 가셨어요. 처음엔 그냥 너희 생각나서 샀다, 탁자가 휑해서 장식이나 하라고 가지고 왔다, 문에 장식용으로 걸라고 얻어 왔다. 하시면서 조금씩 갖다 놓기 시작하셨는데...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님 다녀가시면 치우고, 오시면 꺼내놓고 그랬는데... 어느 날, 저희가 집에 없을 때 연락도 없이 오셨더라고요. 그러고는 다 어떻게 했냐며 불같이 화를 내셨어요. 그래서 저는 일하느라 살림이랑 같이 하기도 빠듯한데, 작은 소품들 하나하나 챙기기도 힘들고 너무 많아지니까 보기 좀 그렇다고 했더니... 아무튼 엄청나게 혼이 났어요. 속이 상해서 친정 언니에게 하소연하듯이 털어놓았는데, 그걸 친정 엄마가 들으시고는 화가 나셨는가... 염주, 불상, 탱화, 목탁에 부적까지 써가지고 오셔서는... 온 집에 그걸 늘어놓으시는 거예요.”
차근차근 이야기를 꺼내놓는 그녀는 점점 감정이 격해졌는지, 그때의 일이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울컥한 듯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은미 씨가 다독이는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남편도 자기 엄마가 그렇게 할 때는 몰랐는데, 저희 엄마까지 그렇게 하니까 사태가 심각했다는 걸 늦게 알았고... 저희 엄마께 빌고 저한테도 빌고 시어머니께도 직접 자기가 전화해서 다시는 이런 거 갖다 놓지 말고, 우리 없을 때 오지도 말라며 난리를 치고는 좀 조용 한가 했죠. 근데 이번에는 저희 엄마가... 어휴. 저희 친정은 지방이거든요. 반찬을 종종 택배로 보내주시는데, 매번 염주나 작은 불상, 소원 양초, 연등 장식 이런 것들을 보내시는 거예요. 그냥 다 창고 방에 쌓아 두고 보내지 마시라 화도 내고... 그 와중에 시어머님은 은근슬쩍 십자가나 조각상 같은 것들 두고 가시고요. 아무리 해도 두 분 다 포기를 안 하시더라고요. 시어른들은 주말마다 교회 가야 한다며 새벽부터 찾아오시고, 친정은 갈 때마다 절에 가서 치성드리자며 끌고 가고. 지칠 대로 지쳐서, 반쯤 포기하고...”
달칵. 그릇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보다는 힘이 있는 목소리였다. 무뚝뚝한 돌멩이 같던 목소리에 조금씩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목소리도 조금이나마 커졌고, 발음도 조금씩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남편도 아예 양가 인연을 다 끊어버리자 하는 와중에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혼자 계시는 시어머님이 가엽기도 하고... 그래도 정 붙이고 잘 지내면 덜하시겠거니 하는 마음에 저희 집으로 모셨어요. 네. 제가 미쳤죠. 제가 병신이에요. 제가 제 손으로 화를 불러들인 거죠. 멍청했어요. 그때는... 그저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머님이라고 나쁜 뜻으로 그러셨겠어요... 잘 되라고, 자식 며느리 잘 살라고 하신 건데. 이해해요. 그러니까 모시기로 한 거였고요. 같이 산지 지금 1년이 조금 넘었는데... 매주 교회에 같이 가는 것 정도는 하겠다고, 하지만 믿음까지는 강요하지 말아 달라고 남편과 제가 강하게 밀어붙여서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고 예전에 쓴 각서까지 들먹이고 그랬는데... 안 되더라고요. 남편이 몇 달 전에 해외 장기 출장을 갔어요. 남편이 없으니 시어머니는 더욱 독하게 밀어붙이시더라고요. 네가 믿음이 없어서 애가 안 생기는 거다, 믿음이 없어서 아픈 거다, 믿음이 없어서 입맛이 없는 거다, 믿음이 없어서 해고된 거다... 해고가 아니라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제가 사표 쓴 건데. 스트레스 때문에 조기 폐경이 올 지도 모른다는 판에 무슨 임신을 하겠어요? 제가 무슨 말만 하면 그게 다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믿고 감사하고 기도해야 하느님이 보살펴 주신다고... 어휴. 제 주변에도 기독교인들 많아요. 제 절친도 기독교인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건... 맹신이죠, 광신. 아주 미친 것 같아요. 눈 뜨고 감을 때까지 믿음 타령하시고, 제가 잘 때는 슬그머니 찬송가 같은 거 방에 몰래 틀어 놓고 그러신 적도 있어요.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듣질 않으시니... 결국은 제가 이 꼴이 되고 말았어요. 제가 이렇게 된 것도 다 믿음이 없어서라고, 지금이라도 당장 교회에 가서 기도하면 다 나아질 거라고... 믿음이 없으니 사탄이 몸에 깃든 거라고 십자가로 매일 같이 맞고요. 이젠 맞는 것도 이골이 났어요. 남편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새끼는 외국에서 바람난 것 같더라고요.”
그녀는 속에 든 모든 것들을 토해내는 것처럼 막힘없이 모든 이야기를 쏟아냈다. 중간중간 훌쩍이기도 하고 은미 씨의 속삭임도 있었지만, 여자는 처음보다 힘 있게, 그러나 아주 담담하게,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훌훌 털어놓았다.
환자인 저 여자의 담담한 사연을 듣는 내내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말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진짜, 거짓말 같았다. 실제로 저런 일이 있다고? 종교 갈등으로 다투거나 이혼, 혹은 파혼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저건 심각한데. 저건 고부갈등이 아니라 폭행이다.
나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를 한다고 해도 저걸 내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는 없었다.
모든 종교인이 다 저렇지는 않다는 것을 나도 안다. 나도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힌두교, 그 유명한 사이비 종교 신도도 봤다. 각자의 믿음과 신념 안에서 자신의 행복과 평화를 누리던 온화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굉장히 특이한 사이비 종교를 제외하면, 가장 보편적인 기독교인과 천주교인, 불교인들은 서로를 존중할 줄 알고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다. 남에게 강요를 하지도, 상대방을 비난하고 비하하지도 않았다.
내가 본 가장 완벽했던 종교인은 마트의 왕이모였다. 나이 많은 그 이모님은 내가 왕이모 하며 불렀다. 이모님은 아주 독실한 불교인이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불가의 가르침을 남발하지 않았고,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면박을 주지도 않았고, 부처님의 공덕이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았다. 보시하러 오는 스님들에게 정중했고 성경을 든 기독교인들을 다른 눈으로 보지 않았다. 새벽기도 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인사말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왕이모는 항상 그러셨다. 누구를 믿고 누구의 가르침을 따르든, 내 마음이 편안하고 내 마음이 풍족해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음은 오직 나를 위한 위로일 뿐이라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그 어느 성인도 가르친 적이 없다고. 왕이모는 같이 천국 가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어느 사이비 종교인에게 그렇게 대답하셨다.
사이비 종교인은 죽어서 가는 세상에서는 우리가 왕이라며 침이 마르게 설교했다. 온화한 얼굴로 끝까지 듣고 있던 왕이모가 대답했다. 그렇게 좋은 곳이면 지금 저세상 가라고. 뭐하러 귀찮고 피곤하고 힘들게 포교하냐고. 천 명이 가서 천 명이 왕이 되면 왕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한 사람이라도 덜 가야 왕이 적어서 권력이 더 세지 않느냐면서 웃었다.
이 세상에서 무엇 하나 이루지 못 한 시원찮은 인간이 사후세계에서 무슨 재주로 왕이 될 것이냐고. 이 세상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괜한 열등감에 시달리니 그런 감언이설에 속아 허송세월 하는 것뿐이라고. 정신 차리고 지금이라도 자신을 위해 살라고. 그 날 왕이모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단호하고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
진짜 믿음, 진짜 종교는 그런 것이 아닐까. 남에게 강요하고 유혹하고 보상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내 마음의 평온을 찾는 것. 그 믿음 속에서 내가 안정을 찾는 것. 그것이 종교가 하는 역할이 아닐까. 나는 종교가 딱히 없어서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저 여자의 시어머니라는 사람이 하는 행동은 올바른 신도가 할 행동은 아닌 것 같았다.
거기다가 해외 출장 간 남편이 바람까지 났으니. 저 여자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거다. 당장 이혼하고 소송 걸라고, 사유는 시어머니한테 있으니 시어머니한테 위자료 받으라고 외치고 싶었다. 남편은 외도하고 시어머니는 괴롭히고.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다. 당장 때려치우고 그 집에서 나오라고 하고 싶었다.
“환자분께는 약보다 상담치료가 우선입니다. 전문가와 상담을 하셔서...”
“그게 되면 제가 진작 나았죠! 안 되니까 여기까지 온 거라고요! 저도... 저도 살고 싶어요! 연화선녀님께 얼마나 큰돈을 드리고 여길 왔는데!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정말 마지막 남은 희망을 걸고 온 건데... 선생님도 안 되면 저는 어떻게 살라고요! 죽으라는 말씀이시죠? 그냥 죽으라고! 콱 죽어버리면!”
갑자기 짚불처럼 화르륵 타올라 협박이라니. 저럴 힘이나 있나. 나는 불안한 마음에 벌떡 일어나 문 앞을 서성거렸다. 혹시라도 나쁜 마음을 먹을까 봐 겁이 났다. 내가 문 앞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은미 씨는 나를 불렀다. 나는 노크 따위 할 정신도 없이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자는 상을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저렇게 화를 내는 것조차 몸은 이겨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은미 씨는 다급하게 작은 궤짝을 열더니 이불을 꺼냈다.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여자의 앙상한 팔목을 잡았다. 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았다.
“사모님, 진정하시고...”
“진정? 진정하게 생겼어요? 연화선녀한테 내 전 재산을 바치고 잡은 마지막 동아줄이라고요! 어떻게 해서든 약을 받아야겠어요!”
아. 그래. 연화선녀. 이 망할 무당. 나는 상을 꽉 그러쥔 손을 조심스럽게 도닥였다.
“예, 압니다. 그러니 진정하십시오. 선생님께서 방도를 찾고 계시니 우선은 좀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불을 깔아 놓은 은미 씨는 어제 보았던 그 붉은 실이 묶인 책을 펼쳐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어디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이 사람부터 눕히는 게 우선이다. 이러다 혈압 올라서 죽을 것 같았다.
여자는 은미 씨가 구석에 서서 책을 바쁘게 뒤지는 것을 확인 한 뒤에야 손에서 힘을 풀었다. 앙상한 몸이 스르륵 무너지듯 늘어졌다. 나는 얼른 그녀를 받치고 은미 씨가 깔아 둔 이불 위에 눕혔다. 갑자기 화를 내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이 정도로 약해진 몸으로,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렇게까지...
나는 정신없이 책만 들여다보는 은미 씨를 흘긋 돌아보고, 다른 이불을 하나 더 꺼내 정신을 놓은 여자에게 덮어 주었다. 상 위엔 쏟아진 해당화 음료가 검붉은 물결을 그리고 있었다.
“행주... 가지고 오겠습니다.”
은미 씨는 여전히 책 속에 코를 박고 있었다. 아마도 저 책은 장부 같은 게 아니라 비법서나 약 레시피 같은 것들이 적혀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방에 가서 행주를 챙기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무식하게 참고 그냥 산 걸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참고 또 참기만 하다가, 풀어놓는 법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아까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면, 그리 꾹꾹 눌러 참은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의절까지 할 생각을 했고 친정이든 시가든 화도 내고 각서도 받고 다 했는데. 할 만큼은 한 것 같았는데.
어쩌면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저 여자에게 가장 큰 짐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되지 않고 답답하기만 한 그 상황에서 아무리 화를 내고 울고 소리를 쳐도 벽에 대고 외치는 꼴이니, 한 공간에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저 여자의 시어머니라는 사람도, 남편도, 친정 엄마라는 사람도. 그리고 저 여자도.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게 괴로운 일이라면, 이겨낼 수 없다면 피해도 되잖아. 즐길 수 없는 스트레스라면, 피한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는데. 어째서 그 괴로움의 구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걸까. 단지 며느리라서? 남편의 어머니라서?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왠지 저 여자의 마음속에는 무언가 비밀이 더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행주의 물을 꾹 짜냈다. 방으로 돌아가 보니 은미 씨는 다른 책을 뒤적이고 있었고, 여자는 정신을 잃은 그대로였다.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일렁이는 검붉은 물결을 행주로 닦아냈다. 뽀얀 행주가 벌겋게 물들었다. 상을 씻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상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마당 구석에 자리 잡은 수돗가에서 끈적거리는 상을 행주로 문질렀다. 벌건 물이 철철 흘렀다.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