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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니 Oct 20. 2020

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10-선물(E)>




 이튿날이 되자 인터넷은 시끄러웠다. 예상대로 그들의 영상을 찍은 사람이 여럿 있었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긴 했지만, 나는 인터넷에 뿌리거나 그러진 않았는데. 어쨌든, 전 국민을 넘어서 전 세계인이 그 발광의 현장을 보았고,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서 우리를 촬영했던 이들의 기사도 없었고, 그들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거나 건강하게 퇴원했다는 기사도 없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 몇 개 말고는, 공식적인 발표나 기사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합성이다, 마약에 취했다, 행위예술이다 등등의 온갖 추측성 댓글로 도배가 되다가 며칠 뒤 깨끗이 사라졌다. 우리도 그렇게 잊어갔다. 내 폰에 남은 동영상 하나만 남겨둔 채 말이다.


 “싹 잊혀졌네. 신기하게.”


 “원래 그런 겁니다. 자극적이고 놀라운 이슈가 하나 떠오르면 모두들 달려들죠. 하지만 후속 소식이나 근거가 없다면 결국은 주작이니 자작이니 하는 소리를 듣고 사라지고 마는 겁니다. 더구나 외국 배우들이 한국에서 그런 짓을 했다니, 안 믿는 사람들이 더 많겠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괴현상은 시선을 끌지만 기억에 오래 남지는 않는 법이에요.”


 아직 몇몇 사이트에는 그 영상들이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굉장히 외설스러운 말들과 함께 말이다.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언급하지 않게 됐다. 자꾸만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그 사건을 사라지지 않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폰에 남아 있던 영상도 지워버렸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호은당에 의외의 손님이 찾아왔다. 이세연. 으잉...?


 “지난번에... 그렇게 갑자기 가시고 연락이 없으셔서요. 걱정도 되고... 근데 제가 그 이후로 좀 바빠지는 바람에 연락도 못 하고...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뭐. 찻집에 차 마시러 온 게 잘못은 아니니까. 나는 괜찮다며 웃었다. 그녀에게 시원한 차를 내어주고 마주 앉았다.


 “아닙니다. 그 날 경황이 없어서 제가 잊고 있었어요. 걱정하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사과했다. 어쨌거나 내가 연락을 주겠다고 했음에도 연락을 하지 않았으니까. 세연 씨는 볼을 붉혔다. 왜? 사과하는데 왜 얼굴이 빨개지는데?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별 다른 내색을 하지 않기로 했다. 뭐... 정말 연화나 은미 씨 말대로 날 좋아한다면... 진짜 저 여자는 눈이 삔 거니까. 괜히 좀 민망하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일어났다. 내가 엉덩이를 들썩이는 순간, 차를 마시던 세연 씨가 화들짝 놀라 내 손을 잡았다. 으잉? 이 여자, 왜 이래?


 “아아, 어... 죄송합니다. 그게... 저... 아니, 그게 아니고...”


 “아니, 괜찮습니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셔서 잡으셨나 본데... 말씀하십시오.”


 나는 다시 엉덩이를 붙였다. 아. 담배 사러 가야 하는데. 계란도 떨어졌고... 또 뭐가 없더라...?


 “그... 저... 제가 준비하는 게 곧 마무리가 되거든요... 다음 달에 전시회 시작하는데... 보러 오시라고요...”


 그녀는 주섬주섬 가방을 뒤적거려 하얀 봉투를 꺼냈다. 금장식이 둘러진 고급스러운 봉투를 내 앞으로 밀어내며 그녀는 또 얼굴을 붉혔다. 뭐, 홍반증인가 뭔가 하는 그런 거 아니야? 틈만 나면 얼굴 빨개지는데. 그거 병이라던데... 진맥 받아보라고 해야 하나...


 “좋아하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열심히 준비한 전시회거든요. 시간 되시면... 보러 오시라고... 아, 물론 약사님이랑 선녀님 것도 넣었어요! 다, 다 같이... 다 같이 보러 오세요...”


 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가라앉는 머리, 쪼그라드는 어깨... 아니, 사람이 저렇게 자신감이 없고 소심해서 어떻게 살았대? 큐레이턴지 크리에이턴지 하는 그거, 그렇게 소심한 사람이 할 수 있어? 아니, 다 떠나서... 사회생활하기 힘들지 않아? 자신감 좀 가져요! 아오, 답답하네.


 “예. 감사합니다. 약사님과 시간을 조율해서 꼭 가도록 할게요.”


 나는 봉투를 열었다. 짙은 남색의 종이 위에 금빛 글자가 번쩍이고 있었다. 으음... 숨겨진 고대의 유산... 그래. 그래서 그 거시기 한 거시기를 만져서 위험했었지. 고생 꽤나 했으니 보러 갈까? 도대체 뭐가 그런 사고를 쳤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날짜는 넉넉했다. 전시 기간도 꽤 길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를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활짝 웃는 세연 씨에게 마주 웃어주고 나는 일어섰다. 장도 봐야 하고 할 일이 많다. 손님은 별로 없지만, 이따 마당에 타프를 쳐야 해서 오늘은 바쁜 날이 될 것 같았다.


 내가 분주한 티를 냈던가. 세연 씨는 이내 일어났다. 그녀는 방긋 웃으며 인사하고 사뿐사뿐 걸어 나갔다. 와... 연화도 저렇게 좀 입지. 사뿐사뿐 걸어 다니니까 진짜 선녀 같은데. 저게 선녀지, 홀딱 벗고 화장 떡칠해서 또각또각 다니는 게 선녀가 아니라.

 쉬폰이라고 그러나? 저 원피스 재질. 하늘하늘하니까 예쁜데. 연화한테 어울릴까? 하나 사 줄... 아니, 분명히 또 명품만 받는다고 할 거야. 말 안 해야지.



 그녀가 나간 뒤,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는데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달려가 대문을 열었다. 이 더운 여름에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와. 보기만 해도 덥네.


 “어서 오십시오.”


 “백은미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 미리 전화를 드렸는데요.”


 “아, 예. 기다리고 계십니다.”


 국과수인지 뭐시긴지에서 사람이 올 거라고 했었다. 난 상당히 나이 있고 왠지 좀 괴짜 같은 느낌의 과학자를 상상했는데... 그냥 멀쩡한 젊은 영업사원 같은 느낌이었다. 인상도 좋고 목소리도 좋고 체격도 좋다. 이열. 옷 빨이 끝내주는구만. 부럽네.

 나는 그들을 상담실로 안내하고 시원한 차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어디 보자... 아까 은미 씨가 이걸 준비해 달라고 했는데... 약포를 풀자 잘게 다져놓은 잎이 나왔다. 오호라. 이건 좀 비싼 건가 봐? 푸르스름한 마른 잎을 주전자에 넣고 불을 올렸다. 꽤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 차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얼음을 넣어 차게 만든 차를 내어주자, 두 사람은 시원하게 들이켰다. 방 안에는 향긋한 향내가 가득했다.


 은미 씨의 앞에 놓인 상 위에는 지난번에 보았던 버섯들이 든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들은 두툼하게 묶어 놓은 서류를 내밀었고, 은미 씨는 그것을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덥기도 해서 안 나가고 버텨보려고 했는데, 국과수 요원이라는 사람이 나가 달란다. 쳇. 아쉽네.

 나는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그래. 타프나 치자. 더워 죽겠는데 그늘이라도 있어야 사람이 살지. 나는 미리 사 두었던 베이지색의 커다란 천막을 주섬주섬 펼쳐 어디에 걸까 고민했다. 이내 방 안의 세 사람은 잊고 열심히 그늘 만들기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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