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목면지와 은미 씨>
<외전 3-목면지와 은미 씨>
국과수 사람들이 돌아가고, 은미 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사다리를 옮기는 나를 도와주었다. 손이 하나 더 붙자 순식간에 일이 끝났다. 나는 골목 끝의 커피숍에 달려가 시원하고 달콤한 빙수를 두 개 사 왔다. 우리는 에어컨 빵빵한 상담실에서 달달한 빙수를 퍼먹었다. 상담실의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왜요? 궁금해요?”
은미 씨는 내 눈이 자꾸만 그리로 가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싱긋 웃으며 물었다. 나는 숨김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럼 보면 되지! 하며 뚜껑을 열었다. 버섯은 지난번에 보았던 그대로였다. 아니, 갓이 좀 더 폈나...? 잘 모르겠다. 은미 씨는 뜯어먹은 것 같은 버섯을 꺼내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험하게도 뜯어먹었네.”
은미 씨는 길쭉하게 뜯겨나간 한쪽 끝을 잡고 주욱 당겼다. 버섯은 길게 쪼개졌다. 속살도 그저 그런 누르스름한 흰색이었다. 잿빛이 많이 도는, 탁한 베이지색 같았다. 은미 씨는 손가락 굵기 만 한 그 조각을 망설임 없이 입에 쏙 넣었다.
“으, 은미 씨!!”
“한 입 드실래요?”
그, 그거... 먹으면 미친다면서요!! 미친 듯이 춤추고 흥이 돌고 뭐 어쩌고 했잖아요!! 서, 설마 훌렁 벗고 그런 거 아니죠?!
내가 기겁을 하니 은미 씨는 픽 웃었다. 내 눈이 튀어나오거나 말거나, 그녀는 또 한쪽을 주욱 찢어 맛깔나게 씹었다. 그걸 왜 먹어!! 미친 거 아니야?! 나는 덜덜 떨며 내 몫의 빙수 그릇을 들고 슬금슬금 방문 쪽으로 도망갔다.
“괜찮아요, 저는.”
하지만 조금 이상하다. 얼굴이 이상해졌다. 입 꼬리가 올라가고 평소의 은미 씨가 짓던 미소와는 달랐다. 어딘가 모르게 광기가 느껴지는 웃음이 얼굴에 피어났다. 소름이 와드득 돋았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한 입 드실래요?”
한 입 드실래요. 하는 그 말 뒤의 은미 씨는, 무서웠다. 진짜로. 입 꼬리가 높게 치솟고 히히 하는 소리로 웃었다. 눈은 안 웃는데 입만 웃는다. 공포 영화가 따로 없다. 더위 따위 싹 사라졌다. 정말 모골이 송연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소름이 돋고 온 몸에 냉기가 휘몰아쳤다. 무서웠다. 미쳤어! 왜 그딴 걸 처먹어!
나는 후다닥 밖으로 도망쳐 문을 꽝 닫았다. 저러다 훌떡 벗는 건 아니겠지?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했으니... 괜찮아지면 나오겠지. 나는 밖에 있을래.
나는 그늘 아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남은 빙수를 퍼먹었다. 하지만 내 눈은 계속 안채를 향해 있었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흐흐흐, 호호호 하는 기괴한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맙소사. 그걸 왜 먹어? 돌겠네, 진짜.
한 시간쯤 지났을까. 빙수 그릇에 남은 우유도 말라버렸다. 그늘 아래 있어도 덥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바람이 불면 그나마 시원했다. 나는 여전히 곁눈으로 안채를 살피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 놀라고 말았다. 멀쩡한 얼굴의 은미 씨가 상자를 안고 쏙 나왔다.
“놀랐어요? 진짜 괜찮은데.”
안 괜찮아요. 아까 그 얼굴, 사진 찍어놓을걸. 자기가 직접 보면 그런 소리 못 할 거다. 얼마나 소름 끼치는 웃음이었는지. 근데 먹어도 괜찮아요? 어디 아프거나 그런 거 아니에요?
“독성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기분이 좋아지게 할 뿐이죠. 그리고 진품인지 확인할 필요도 있었고요.”
그 사람들 미쳐 날뛰는 것만으로도 진품이라고 봐도 되는 거 아닌가? 그 위험한 짓을 꼭 해야 했어요? 그걸 꼭 먹어서 확인을 해야 했냐고요! 어우, 진짜!
“그... 맛은 좋아요?”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아주 부드럽고 연한... 썩은 나무 맛? 뭐, 그런 맛이에요.”
뭔 맛이야, 그게. 썩은 나무를 먹어봤어야 알지.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거 어떻게 할 건데요? 약으로 쓰거나 그런 건 아니죠?”
“약으로 써요. 독도 잘 쓰면 약이 되거든요. 이것도 잘 보관해야죠. 목면을 구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아쉬운 대로 이번엔 이걸로 만족해야겠어요.”
에엥...? 독이 약이 된다는 말은 그 유명한 허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맞나? 아무튼, 뭐 그런 말이 있긴 하다. 그래서 나도 알긴 아는데... 저걸 도대체 무슨 약에 쓰지? 우울증 걸린 사람에게 처방하나? 미친 듯이 웃고 춤추는 버섯을 얻다 써? 알 수 없는 세계다, 정말.
은미 씨는 대청에 털썩 앉더니 서랍 하나를 열었다. 나무로 된 도마와 나무칼이 나왔다. 은미 씨는 그걸로 그 괴상한 버섯을 아주 얇게 썰기 시작했다.
와... 잘 써네. 이렇게 칼질 잘하면서 음식은 왜 못하지? 늘 그렇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약재를 써는 것과 음식을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나도 안다. 나는 주방에서 칼질은 잘해도 약재 써는 건 정말 못 하겠더라. 은미 씨도 같은 거겠지.
커다란 버섯이 수십 조각이 되었다. 은미 씨는 커다란 채반에 버섯들을 하나하나 펴서 깔더니 보리수나무 아래 그늘로 가져갔다. 저기서 말릴 모양이었다. 햇빛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멀거니 보고 있으니 은미 씨는 못생긴 조각 하나를 입에 쏙 넣으며 웃었다. 아니, 그거 좀 먹지 말라고요! 무섭다니까!!
“보통 버섯은 햇볕에 말려서 비타민D를 생성하게 만드는데, 이건 그럴 필요가 없어요. 식재료가 아니라 약재니까요. 얘는 지금 이대로가 따악 좋아요. 맛도 좋고요.”
썩은 나무 맛이라면서요. 나는 웩하는 소리를 하며 주방으로 도망쳤다. 은미 씨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무 도마와 나무칼을 씻었다. 나는 오늘 저녁에 먹으려고 했던 메뉴를 바꾸었다. 버섯전골이 아니라 김치볶음밥으로. 당분간 버섯은 꼴도 보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