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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염소가 주고 간 선물

by 나경

콜롬비아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뒤로 삼고 캐리비안해를 앞으로 품은 마을 이름은 팔로미노.

우리만의 산골 집을 찾을 때까지만 있을려고 한 마을이 결국에는 도착지가 된 이곳.


이 마을에 온 지 2개월도 되지 않았을 때, 아직은 적응되지 않은 뜨거운 햇살을 직광으로 받으며 마을의 메인 거리를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긴 우기를 마치고 찾아온 건기에 같이 따라온 먼지들은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마다 공기에 휘날렸다. 그 먼지 바람 사이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3개월도 안되어 보이는 아기 염소.


처음 보는 아기 염소에 '귀엽다'라는 감탄과 함께 이곳에서는 아기 염소가 길거리에 묶여있는 것이 일상이구나 하며 신기해했다. 그러나 곧장 아기 염소가 딱해 보였다.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무리들과 동생하는 것이 아닌, 하루 종일 오토바이 먼지에 앉아있는 것이 안타까워 보였다.


로부터 몇 달이 더 흘렀고 아기 염소를 자주 동일한 곳에서 보니 나에게도 그것도 일상이 되어 마주치는 일도 큰 감흥이 없이 지나쳤다. 새로운 것이 일상이 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지루하다. 언제 하루하루가 지날까 생각하는 사이에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느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던 아름다운 밤이었다. 새로운 삶에 두려움과 걱정을 달래러 친구들과 새로 오픈한 마을 주점에 들렸다. 서로를 위로며 담소를 나누고 집에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친구 중 한 명이 갑자기 밝은 주황빛을 뿜어내는 가로등을 향에 뛰어갔다. 그 밑에는 아기 염소가 조용히 앉아있었다.


"우리 집으로 데려가자." 동물을 좋아하는 그녀는 여기에 묶인 아기 염소를 불쌍해하면서 말하였다.


순간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우리 집 마당에서 키울 수 있을까? 나중에 농장을 사면 그때 데려가면 되지 않을까?


우리는 반쯤 불가능하다 생각하고 서서히 집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발자국 가지 못하여 멈추어 서서 내가 말했다. "우리가 데려가자." 다들 그러자고 하였고 나는 아기 염소로 뛰어갔다.


전 염소 주인집 가족들은 다 서운한 눈치였다. 처음에는 그럼 팔지 말았어야지라고 상황을 무화시키려 했지만, 생각할수록 우리가 가족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닌가 미안해졌다. 하지만, 이미 한화 3만 원에 아기 염소 페페는 우리 품에 안겨졌다.


페페는 우리 삶에 많은 행복과 웃음을 가져왔다. 아기 염소 페페의 보드라운 털과 맑은 눈은 나의 걱정과 불안감을 위로해주었다. 심지어 냄새도 향긋한 페페는 마당에 있는 온갖 것들을 씹어보았으며 혼자 있으면 아기처럼 울어댔다. 페페가 고집을 부릴 때에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밤이 되어 찾아가면 나의 무릎을 핥으며 힘들어하는 나의 마음에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페페가 온 지 10일도 되지 않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찾아왔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도 내 삶과 연관이 있을 때야만 우리는 깨우치곤 한다. 이곳 산마을의 땅 매매는 어두운 역사로 얽힌 원주민 토지소유권, 자연 보전, 정부 개입 등으로 상당히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이다. 거의 닿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우리의 농장 매매도 자연스럽게 지연되었고, 페페를 제대로 키울 큰 농장도 훨씬 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결국에는 페페에게 더 자유로운 삶을 주기 위해 그를 마을에 들린 원주민들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힘든 시기에 기쁨이 된 페페와의 작별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생애 처음으로 동물 때문에 눈물이 났다. 희한하지만 우리는 자기 생각만 하는 사이에도 다른 생명들과 정이 참 쉽게 든다. 어린 동물 하고는 더더욱.


선물처럼 우리 삶에 찾아온 아기 염소 페페. 페페를 보내주어야 하니 페페가 더 사랑스러워졌다. 잃어야만 감사하는 우리의 삶은 모순투성이다. 심지어 잃어버려야 더 감사할 것을 알기에 일부로 내가 가진 것들을 잃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든다. 천국을 감사하려 잠시 지옥 갔다 올래 라는 심리다. 이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모순도 알아차리면, 짜증스러웠던 더위도, 미웠던 자신도, 조금 더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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