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나는 누군가의 가르침을 갈망하였다. 어느 지혜로운 자가 삶에 대해 알려주며, 옳은 길을 어느 것인지 인도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였다.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나,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뜬금없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질문들은 나를 헤매게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지혜로워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고, 부족한 만큼 열심히 배우려고 애썼다.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 때엔, 티베트의 불교 전통과 오래된 계보가 주는 소속감을 우러러보았다. 구전 전승하는 문화에서 자랐으면 나는 조금 더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까, 덜 헤매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더 채찍질했으며, 노력하지만 더 헤매는 악순환에 빠진 것 같아 힘들어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만의 방식으로 답을 구하는 과정에 모멘텀이 붙어 힘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꾸준한 명상과 요가 수련, 운동, 글쓰기가 암흑기를 지나 이제야 빛을 발하는 것처럼, 그토록 바라였던 나의 "중심"이 세워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브런치 문우인 @알레작가님의 "자네가 바로 내가 찾던 기인일세" 글에서 이런 문구가 있다. "나조차 모르고 있던 빛나는 나 자신을... 답을 하기 위해 글을 쓰고 책을 읽기 시작한 뒤로 더 이상 편안했던 삶이 편치 않았다." 나 역시 이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습관들이 하나둘씩 더 이상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그 빈틈에 서서히 내가 선택한 방식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근래에 들어서는 하나둘 변화들 셋넷이 되며 내면의 성장이 더욱더 뚜렷해졌다. 예전에는 애인이 힘들어하면 나는 침대에서 나올 수 없을 만큼 상심하며 힘들어하였는데, 이제는 나의 가슴과 배에서 나오는 근력이 나를 심적으로 지탱해 주기 시작하였다. 사소한 선택의 상황에서 큰 방황을 겪었던 이전에 비해, 지금은 나의 마음에서 파동 되는 미세한 떨림과 움직임에 반응하기 시작하였다.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만의 중심을 신체적으로, 심적으로, 영적으로 키우는 과정이며, 선택의 순간에 내 마음의 미세한 떨림을 타인의 목소리보다 집중한다는 뜻이고, 삶의 책임을 남이 짊어지지 않도록 회피하지 않는 동시에, 나만의 방식으로 그 무게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