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하태평 Apr 26. 2021

딸에게 쓰는 편지 60; 아빠의 소원

.     

‘인생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사람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답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하려 한다.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해. 때론 무의식적으로 때론 선뜻 때론 엄청난 불안 속에서 선책하고 결정을 하지. 그렇게 이루어진 결과를 크게는 역사라 하고 작게는 인생이라고 불러.     

다시 말해서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바로 역사이고 인생이라는 말이지.

그렇게 따지면 인생? 별거 아니야. 내 선택에 달려 있으니까.     


컴퓨터는 매 순간 0과 1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고 들었어. 0과 1, 다시 말해 ‘아니오’와 ‘예’의 끊임없는 반복으로 경이로운 웹 세상을 만들어낸단 말이지. 웹 세상이 인간 세상보다 더 빠르고 다채롭게 변화 발전하는 이유는 그 질문과 대답이 우리 인간보다 엄청 빠르기 때문 아닐까?     


다시 말해서, 질문과 대답이 빠를수록 변화와 발전의 속도 역시 빠르다...     


***     


어제 저녁을 막으면서 엄마가 너에게 물었지.    

 

“감자전이 좋아, 녹두전이 좋아?”     


할머니 댁에서 가져온 녹두전을 잘 먹는 너를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한 말이야. 엄마는 네가 감자전 잘 먹는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1초, 2초, 3초... 4초, 5초...     


“아니, 도대체! 뭘 고민하는 거야?”     


블랙홀의 정체에 대한 질문이라도 받은 듯 생각에 잠긴 너를 보다가, 성질 급한 아빠가 소리를 질렀지. 정말 궁금했거든, 네 머릿속이.     


“얘기 좀 해봐. 뭐가 문제야? 답이 바로 안 나오는 이유가 뭐냐고.”     


사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

네가 대답을 늦게 하는 것에 대해서 아빠가 잔소리한 게 아마 5만 번 쯤 될 걸? 생각하지 말고 일단 답을 내놔라, 잘못 됐으면 그때 다시 정정하면 된다, 면접 때 3초 안에 대답 안하면 땡이다...     


아빠처럼 단순한 사람은 대체로 답도 빠르게 내놔. 간단하잖아? ‘예스’ 아니면 ‘노’니까. 그동안 답이 늦는 너를 보면서 아빠가 내린 결론은 이거야.    

 

“AB형의 특징이다!”     


AB형이기 때문에, A와 B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할 운명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거 말고는 마땅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더라고. 아니, 감자전하고 녹두전 중에 하나 고르는 게 그렇게 고민할 일이냐고!    

 

“감자전...”     


네가 답을 내놨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지.(솔직히 네가 감자전이라고 했는지 녹두전이라고 했는지도 기억이 확실치 않아. 관심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너에 대해서 한없이 자애로운 엄마도 힘없이 한마디 했지.     


“3초까진 기다릴 수 있어... 그러다 5초가 지나면 관심이 없어지지. 무슨 질문을 했는지도 몰라.”     


엄마가 네 편을 안 들고 아빠 편을 든 건데, 거의 없는 일 아니니? 다시 말해서 아무도(무조건 네 편인 할머니와 고모를 제외하고) 이번 일에 대해서 네 편이 없다는 얘기지.     


“박자가 안 맞아. 리듬이 끊어졌잖아.”     


모름지기 대화란, 커뮤니케이션이란 박자가 맞는 게 우선이야. 내용은 사실 별 상관없는 경우가 많지. 마음이란 말의 내용이 아니라 박자와 리듬을 타고 흐르는 거거든.     

그러니 제발!      


“박자를 맞춰다오.”    

 

네가 신중한 성격이어서 매사에 정확한 답을 내놓으려고 하는 것 이해해. 하지만, 누누이 얘기하듯이 정확한 답보다 박자가, 서로의 기분이 통하는 게 더 중요해.     


너는 공대생이니까 정답이 중요하가고 하겠지만, 사실 세상에 정답이란 없어. 지금 이 순간, 적당한 선택이 있을 뿐이지. 오늘의 정답이 내일 오답이 되고, 어제 오답이었던 것이 오늘 새로운 질문으로 떠오르곤 하잖아.     

세상은 움직이는 거고, 우리는 우리의 박자와 리듬으로 그 움직임을 타고가면 돼.    

 

잘 살려고 하지 마. 틀리지 않으려고 애쓰지 마. 그냥 너를 믿고 너를 사랑하고 너를 아끼면서 살아. 오죽하면 아빠가 너에게 쓴 편지를 모은 책 제목이 <너는 될 애>겠어? 너는 될 대로 된다. 애쓰지 마라...          



네 소원(所願)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大韓獨立)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自主獨立)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 일지> 중에서     


멋있지? 하지만 지금 아빠에게 소원을 묻는다면 아빠는 이렇게 말할 거야.     


“내 소원은 딸의 시원한 대답이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딸의 거침없는 대답이오.”

할 것이요,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딸이 아무 생각 없이 당당하게 내놓는 대답이오.”

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랑하는 딸!

아빠도 백범처럼 멋진 소원을 말하고 싶다. 그러니 제발,

아빠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더 나아가 인류와 우주 전체를 위해 소원할 수 있도록

대답 좀 빨리 해 다오...

    --- 하루빨리 딸의 즉문 즉답을 듣고 싶은 아빠가.     

매거진의 이전글 똑바로 살아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