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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May 12. 2022

딸에게 쓰는 편지 73; 완다라는 이름의 욕망

 

“예습해야 되는 영화 있어?”     


엄마가 너에게 물었지. 새로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 대 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기로 했는데, 미리 봐야하는 영화가 있는지.

너는 <완다 비전>이라는 마블의 드라마를 추천했고, 아빠는 정작 영화 일을 할 때도 한 적이 없는 ‘예습’을 하게 됐어. 그 결과...     


먼저 총평을 하자면 예상보다 훨씬 좋았어!

요즘 영화들이 말이 안 되거나 재미가 없거나(아빠에겐!) 둘 중 하난데, <완다 비전>은 설정이나 맥락도 말이 되고 재미도 있었으니까. 드라마를 보면서, ‘마블 유니버스는 정말 야심만만하구나! <반지의 제왕>을 뛰어넘는 최고의 판타지가 되겠는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     


행복한 가정을 꿈꾸던 완다는 웨스트뷰라는 마을에 자신의 이상향을 구현하게 돼. 자신의 초능력으로 외부와 단절된 세계를 영위하지만 점점 외부세계의 간섭을 받게 되고 결국 완다의 이상향은 파괴되고 말아.     


내가 제일 인상적으로 본 장면은, (8화인지 마지막 9화인지 모르겠는데), 완다가 웨스트뷰를 자신만의 세계로 만드는 과정이었어.


비전을 잃고 혼자 비전이 남겨준 웨스트뷰의 땅으로 온 완다는 갑자기 내면의 에너지를 분출시켜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버리지. 내가 그 장면을 재미있어한 이유는, 그 과정이 우주의 빅뱅 과정과 흡사하고,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한 과정과도 유사하기 때문이야.


빅뱅으로 우주가 태어났듯이, 하나님의 뜻으로 이 세계가 창조되었듯이, 완다의 깊은 꿈이 순식간에 현실화되어 나타났잖아.

다른 점이 있다면, 빅뱅의 우주나 하나님의 세계는 그 자체로 완전한 반면, 완다의 세계는 불완전하고 웨스트뷰라는 작은 마을에 국한되어 있다는 거지.     


문제는 그 완다의 세계가, 완다의 꿈이 무너져버렸다는 거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한 마을을 송두리째 자신의 뜻대로 만들어버리는 초능력을 가진 완다의 작은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As you like it!"

“좋을 대로.”“마음대로 하세요.”

“네 뜻대로.”     


지난 두 번의 편지에서 해왔던 말들인데, 그냥 구분 없이 같은 의미로 사용했지. 이 식으로 하면 완다가 웨스트뷰에 만들었던 세계는 분명 문제가 없어야 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듯,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만들어냈으니까.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라. 하나님은 당신의 ‘뜻’으로 세계를 만드셨고, 완다는 자신의 ‘욕망’으로 웨스트뷰를 만들었거든.     


뜻의 세계와 욕망의 세계...

그 차이는 뭘까?     


빅뱅으로 우주가 만들어진 이후, 세계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지? 나름의 물질계 원리에 의해서, 때로는 돌연한 변이가 생기기도 하면서, 스스로 발전되어 왔어.(원리의 세계)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아담과 이브를 만드셨는데, 두 사람은 하나님이 말을 듣지 않고 선악과를 따먹었지.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모든 것의 주재자시니까 아담과 이브가 당신의 말을 듣도록 강제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에덴동산에서 추방하긴 했지만 더 이상의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으셨지.(뜻의 세계)     


완다는 자신의 꿈대로 웨스트뷰를 만들고, 그 안의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조종했지. 뜻을 정하고 그냥 그대로, 되어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놔둔 것이 아니라 통제하고 차단했어.(욕망의 세계)  

   

그렇게 만들어진 욕망의 세계는 또 다른 욕망을 부르기 마련이고, 결국 물리적 힘과 힘의 대결이 될 수밖에 없어. 우리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듯, 그 끝은 파멸인 거고.   


      

(전략)

...몸의 영역과 욕망의 영역과 감정의 영역과 생각의 영역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우리가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예쁘다’ “갖고 싶다‘ ’좋다‘는 등의 작용은 마음의 작은, 순간적인 부분현상에 불과해. 그 자체는 마음과 전혀 상관이 없단 말이지. 마음은 ’그런 작용들이 일어나는 바탕에 있는 그 무엇‘이니까.          

우리 삶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이처럼 부분현상을 임의적으로(습관적으로) 연결시키기 때문이야.     

배고픈 것과 먹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어.

죽이고 싶다는 생각과 실제 행위는 전혀 다른 영역이야.

성적 욕망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걸 해소하기 위해 꼭 뭔가를 해야 할 필요는 없어.

다만 우리가 그렇게 길이 들어있을 뿐이지.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육체적 욕망, 감정, 생각 등 모든 요소들의 작용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야. 10명의 사람이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자유를 주듯이, 나의 모든 부분들에게 자유를 주는 거지. 

그리고 거기에서 도출되는 결과들 받아들이는 것, 그게 마음대로 하는 거야.     

자율과 자유, 그것의 아름다운 조화가 마음대로 한다는 뜻이야.  

    ---(‘딸에게 쓰는 편지72; 내 맘대로 산다니, 그게 가능해?’ 중에서   


  

그러므로, 내 맘대로 산다는 것은 내가 상대를 어떻게 하려고 하지 않는 거야. 머리카락 하나도 건드리지 말고, 나는 그저 나의 최선을 다하는 가야.

나의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나의 욕망과 감정과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들을 이용하지 않고, 내가 대상을 존중하며 그냥 놔두고 보듯이 봐주는 거야.

그리고 뜻을 세워 뜻대로 행동하는 거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윤동주의 <서시> 중에서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내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남아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밤 숲가에 서서> 중에서     



뜻의 세계를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다

이렇게 시를 통해 보여주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이 마음,

이 아름다운 순간이 바로 뜻대로 사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굿 럭~!     

    ---딸이 아름다운 뜻의 세계를 살아가기 바라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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