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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May 17. 2022

딸에게 쓰는 편지 74; 불량한 <닥터 스트레인지2>

 

예습까지 하고 보게 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2; 대혼돈의 멀티버스>...

결과는 실망. 예습했던 <완다비전>이 좋았기 때문에 더욱더 실망.     


“이제껏 본 모든 영화중에서 최악이야.”     


엄마의 감상평이었지. ‘그 정도까지는...’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엄마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어. 설득이 된 거지.     


엄마의 가장 큰 불만은 영화 속에서 취급된 완다의 역할에서 비롯돼. 완다를 지극한 모성애의 화신으로 보여주면서 구식의 여성상을 내세웠다는 거야.     


세계를 구하려고 갖은 고난을 무릅쓰며 멀티버스를 종횡무진 하는 닥터 스트레인지(이성적, 이타적, 남성).

그리고 편협한 가족애에 매몰되어 세상의 안녕은 괘념치 않는 마녀 완다(감성적, 이기적, 여성).     


기본적인 구도만으로도 제작진의 잠재적 의식을 확연히 느낄 수 있지 않니?

‘여성은 가정적이고 작은 것에 집착한다’는 그릇된 성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거지. 옛날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가족을 남겨두고 비장하게 떠나는 독립투사 남성과 울며 붙잡는 여성의 대비와 똑같지.


(그런 점에서 요즘 인기 있는 애플tv 플러스의 <파친코>도 볼만해. <파친코>의 여자들도 남아서 가족을 지켜야 하는 건 똑같지만, 시선의 중심이 바로 그 ‘남아있는 여성’에게 있지. ‘집 밖의 남성’이 중심이 아니라, ‘집을 이루고 살아가는 여성’이 중심에 있는 드라마.)     


“<완다비전>도 똑같애.”     


내가 그래도 <완다비전>은 괜찮았다고 말하자 엄마가 단호하게 반대했어. 같은 가치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단 얘기지. ‘모성’이라는 굴레로 여성을 가둬버리는 남성 중심 세계의 덫.     

그 얘기를 처음 듣고, 솔직히 나는 살짝 당황했어. <닥터 스트레인지2>에 대해서는 100% 동의하지만, 적어도 <완다비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거든.


<완다비전>의 완다가 가족이라는 것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이 되어있지. 한 순간에 날아가버린 가정의 평화가 어린 완다에게 깊은 절망과 갈망을 동시에 심어주었으니까.


그리고 <완다비전>의 마지막에서, 완다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세계를 되돌려 놓잖아. 그리고 반성하면서 더욱 성숙된 모습으로 떠나는 게 마지막이라, ‘아! 이제 개인적 세계를 넘어서 보편화된 세계로 나가는 구나.’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막상 <닥터 스트레인지2>에서 완다는 오히려 더 퇴행적인 모습으로 나타났어.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이 안 되는...)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근래 마블의 영화들을 흥미롭게 보면서 마블의 세계관에 공감하고 있던 나로서는 형편없이 망가진 <닥터 스트레인지2>에 당황스러워. 예습으로 본 <완다비전>이 좋았고, 지난번 마블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이 정말 좋았기 때문에 더 그런 듯.(얘기앴지? <스파이더 맨;노웨이 홈>은 그동안 마블영화 랭킹 1위였던 <어벤저스;인피니티 워>를 밀어내고 나의 1위에 올랐다고.)     


한마디로 하자면 감독을 잘못 골랐다고 밖에.

알다시피 감독 샘 레이미는 유명한 공포영화 감독이야. <이블 데드>라는 좀비영화로 데뷔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재능 있는 감독이지.      


문제는 샘 레이미가 B급 영화에 최적화된 감독이라는 거야. B급이란, A급보다 격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냐. A(제도권. 정형화, 모범적)와 대비되는 B(비제도권. 탈정형, 비판적)라는 뜻이지.     


맥락 없는 잔혹, 돌출적인 개그, 허를 찌르는 코미디는 B급 영화의 전매특허지만, 그것들이 A급의 세계에 들어오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야. 특히 마블의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세계관이 확고해진 영화에서는 더욱 그렇지.      


‘허를 찌르는 코미디’라고 했는데, B급 영화에서는 허를 찌르면 전체가 영향을 받아. 순간이 전체를 흔들고, 사소한 것이 중요한 것에 타격을 주는, 그게 B급 영화의 재미지.      

그런데 블록버스터 영화는 체제가 워낙 견고하게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부분이 전체를, 사소함이 중요한 것을 흔들지 못해. 다시 말해 조크가, 뒤집기가 불가능한 거지.     

그런데다가 감독은 정작 멀티버스 세계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어 보여. 그저 필요한대로 시공간을 왔다 갔다 한다고 멀티버스는 아니잖아?


(갑자기 <스파이더 맨;노웨이 홈>이 생각난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한 시공간에 함께하던 그 순간의 감동이.

5년 전의 나와, 10년 후의 내가 한 공간에서 만났다면, 그리고 역경을 함께하면서 서로의 연대를 확인한다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하나라는 걸 구체적으로 깨닫게 된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말로는 이해가 돼도, 영화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실감하고 감동적이진 않았을 것 같아. 초기 스파이더맨을 연기한 토비 맥과이어의 나이든 얼굴과 현재의 스파이더맨인 톰 홀랜드가 한 화면에서 보일 때의 그 느낌은 설명이 힘들어.     

만약에, 30년 후의 네가 네 앞에 나타나서 “잘하고 있어. 힘내!” 라고 말하며 안아준다면 기분이 어떻겠니?)     

멀티버스의 기분은 전혀 살리지 못하고, 무작정 좀비 스트레인지를 보여주면 뭐하냐고?

정작 감독인 샘 레이미는 “나는 블록버스터도 내 식으로 만드는 사람이야.”라고 하면서 낄낄거리고 있을 지도 모르지. 그게 B급 정신이니까.     


어쨌든!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2> 영화보기를 통해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영화 자체가 아니라)영화를 보는 엄마의 시각이야.

<완다비전>이 그래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 작품은 주류 남성중심의 시각이 바닥에 깔린 편향적인 드라마’라고 알려줬어.


젊을 때라면 그건 아레리칸 드림에 대한 풍자이고 조롱’이라고 반박을 했겠지만, 아빠는 바로 수긍을 했어. 엄마가 맞아. 엄마는 여자니까.     


“입장의 동일함이 중요합니다.”     


앞뒤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구절이야. 아빠는 남자이고, 수십 년을 남자라는 기득권 문화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여성의 서사나 정서에 약할 수밖에 없어.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서있는 자리가 다르다는 거지.     


우리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입장에서 열심히 재미있게 살아보자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함께 같은 유니버스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깨닫게 되겠지.     


그 때까지 파이팅!!

                ---딸이 항상 즐거운 멀티버스를 살아가기 바라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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