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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Aug 20. 2022

제5화; 요원의 등장

본격 탐사 판타지 <지구인들> 제 1부 ; 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       


제5화; 요원의 등장 

  

‘어라? 지하였어?’   

  

복도를 돌아 계단을 올라가려던 태민은 걸음을 멈췄다. 약속장소인 카페가 지하인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망설이던 태민이 다시 돌아서 건물을 빠져나왔다.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전개되거나 뭔가 미심쩍은 게 있다 싶은 경우에, ‘일단 물러선다.는 것이 태민의 원칙이다. 

다시 상황 파악을 하고 마음의 정리를 한 다음에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분명히 북쪽에서 길한 손님이 오는 괘였는데?’     


태민은 만나기로 한 백성원을 떠올렸다. 백성원은 최근 몇 년간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요리전문가이자 사업가로서, 태민과는 벌써 수십년간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사이였다.      

반가운 마음에 별 생각 없이 약속을 해버렸는데 현장에 도착해서야 지하 카페인 걸 알게된 것이다. 장소를 바꾸려고 전화를 했으나 통화중이었다.     


‘어쩐다?’     


태민은 지하를 싫어한다.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상이라고 해도 창문 등이 없이 막힌 공간은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부득이하게 가게 되면 반드시 비상 출구 등을 점검해 둔다.     


‘이 사람, 바쁘다더니 정신이 없군.’     


사려 깊지 못한 백성원을 탓해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태민은 백성원의 전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날씨는 맑았고 바람도 잔잔했다. 건물이 북향인 것 말고는 딱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없었다.     


“유사부!”     


태민이 다시 전화를 걸려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백성원이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왜 안 들어가시고?”

“아, 백선생. 잘됐네... 지하야! 나 지하 무서워서 못 들어가잖아.”

“아 참! 그렇지. 깜박했네요. 죄송합니다. 그럼... 다른 데로 가죠 뭐.

“그러자고.”

“잠깐 들어갔다가... 짐을 놓고 나왔어요.”     


백성원이 같이 들어가기를 권하며 앞장선다.    

 

“아니! 난 여기 있을게요. 다녀오셔.”

“아... 그러실래요?”     


잠시 백성원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 눈빛을 보고 태민의 몸에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뭔가 평상시와 다른 기운이 느껴진 때문이다.    

 

“그럼... 금방 나옵니다.”     


백성원이 초점을 흐리며 고개를 돌리더니 갑자기 뛰어 내려간다. 그 순간, 태민은 7할의 공력을 끌어올려 도약을 했다.      

훌쩍, 태민의 몸이 솟구쳐 올라 건물의 벽을 타더니 순식간에 10미터 쯤 떨어진 곳에 낙하했다. 마치 중력을 거슬러 허공의 줄을 타고 이동하는 듯 부드러웠다. 그와 동시에 두 명의 남자가 태민이 있던 자리로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태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것을 알고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태민이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뭐지?’     


태민은 멀찌감치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중 하나가 환하게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역시 솜씨가 좋으시네. 유 선생! 잠깐 같이 가시죠. 소란 피우지 맙시다.”

“누구신가...?”

“쿠팡 안전국 직원입니다. 배송 의뢰 받아서요.”     


대화를 나누자고 말을 건 것이 아니었다. 태민은 도망칠 적절한 타이밍을 찾고 있었던 것이고, 마침 지나가는 트럭이 보이자 태민은 재빨리 몸을 날려 트럭에 올라탔다.      

두 남자가 열심히 따라왔으나 빠르게 달리는 트럭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하마터면!’     


버스터미널에 주차시킨 차를 운전하며 태민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경계심을 풀고 지하 카페에 들어갔더라면 어쩔 뻔 했나? 저들은 왜 태민을 잡으러 왔던 것일까?      

무엇보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백성원이었다. 정황상 백성원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한데, 왜 백성원이 저들의 앞잡이가 된 것일까?     


‘그럴 사람이 아닌데...’    

 

백성원은 좋은 사람이었다. 알고 지낸 것도 벌써 30년 가까이 된다. 

태민이 대학병원 응급실 의사로 정신없이 지내던 시절에 처음 만났는데, 백성원은 사업 실패로 힘들어 방황하던 때였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기공무예 수련 동기’였다. 

     

물론 이후 두 사람의 길은 완전히 달랐다. 태민은 본격적으로 단학 수련에 빠져들었고, 백성원은 음식 사업에 성공하며 유명인의 길을 갔다. 

그러나 백성원은 소탈하고 겸손한 사람이어서 만나면 항상 즐거웠다.     


“바쁠 텐데, 이런 시골까지 뭐 하러 와?”

“무슨 소리여. 쉬러 왔넌디. 나는 형 만나는 게 쉬는 거여.”      


더군다나 백성원은 태민의 실제 정체도 모르지 않는가?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태민은 그저 평범한 시골 의사에 불과했다. 

친하다고는 하나 백성원 역시 태민에 대해 그 정도 밖에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백성원이 협박을 받아 태민을 유인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태민은 어두운 도로 한쪽에 차를 세웠다.      

그렇다면 이건 비상상황이다. 누군가 태민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고, 그건 태민이 속한 조직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중대한 신호다. 

이제부터는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당분간, 상황 파악이 될 때까지 모두 은신해야 할지도 모른다.   

  

밤이 깊어갔으나 태민은 움직이지 않았다. 핸드폰의 전원을 끄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봤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하나로 모아졌다.      

이런 식으로 노골적인 공격을 해올 수 있는 것은 ‘그들’밖에 없다.

태민 일당이 ‘그들’이라 부르고 그들 스스로는 ‘우리’라고 부르는 집단...    

  

그들은 자신들이 태양계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이고 지구라는 행성을 지금껏 가꿔왔으며 따라서 마땅히, 당연히 자신들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주장한다. 

스스로 자신들의 존재를 공식화한 적은 없으나 지구인들, 즉 호모 사피엔스 측에서도 어느 정도 그들의 존재와 지분을 인정하고 있다. 

비공식 언급으로는 ‘태양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종족이라는 뜻이다.    

  

‘무슨 신호일까? 합의를 깨겠다는 건데, 설마 전면전을?’   

  

태민 일당과 그들 간의 싸움은 역사가 깊다. 적어도 지구인의 자각이 본격화한 이후인 철기시대부터는 인류 역사 자체가 두 세력 간 싸움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러나 1945년 원자폭탄의 사용 이후 싸움을 자제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었고,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계기로 완전한 휴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길고 이야기의 진행을 방해할 수 있으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다.     

‘일단 미완법사를 만나야겠군. 그 사람이면 뭐 좀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고 보면 이상한 조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 한 달 사이 두 명의 동지가 사고를 당했다. 한 명은 현장에서 죽었고, 한 명은 원인 모를 심신미약 상태에 빠졌다. 

드문 일이어서 의아해하기는 했으나 구체적으로 살피지 않고 그냥 넘겼다. 실수였다. 


마음을 정리한 태민은 집으로 차를 몰았다. 집에 가서 모두 조심하도록 비상을 걸어야 한다.      

만약에 대비하여 차는 병원에 두고 가기로 했다. 읍내의 병원에서 집까지 제법 먼 거리였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 지혜를 떠올리면서, 태민은 ‘어쩌면 거처를 옮겨야겠군.’ 하고 중얼거렸다. 지혜에게 이것저것 가르쳐놓기는 했지만 초보 수준이고,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에 불과하다.     

그러니 상상해 보라. 지혜를 그렇게 어린아이 취급하는 태민이 집에 도착하여 얼마나 놀랐을 지를.      

현관문을 들어서자 지혜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이어 남자의 목소리가 태민의 귀를 자극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다시 한 번 해 봐. 그게 왜 안 되지? 쉬운 건데?”     


거실에 들어선 태민은 남자를 보고 숨을 멈췄다. 

지혜 옆에서 요리를 가르치던 남자 백성원이 얼어붙은 태민을 보고 소리쳤다. 


“늦으셨네? 얘가 요리에 소질이 없어. 차라리 형님 가르치는 게 낫겠는데?”

“아빠 포기했다면서요.”

“그렇지. 그래도 너보단 나아.”     


저렇게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 인상 좋은 남자가 그들 편이라니. 

백성원은 아까 있었던 일은 까마득히 잊은 사람처럼 태민을 보며 웃었다.     


“행사 왔다가 들렀어. 전화 했는데, 핸드폰이 꺼져 있더라고?”

“지혜야! 이리 와!”     


태민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지혜에게 말했다. 이상한 기색을 눈치 챈 지혜가 얼른 태민 쪽으로 달려왔다. 

웃던 백성원이 약간 어색한 표정이 되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요?”

“차는...”

“아... 차 보냈어요. 오늘 자고 갈라고.”

“아까는 어떻게 된 거야? 그 사람들...”     


태민은 언제든 선제공격을 할 태세를 갖추고 백성원에게 말을 걸었다. 그가 와 있다는 것은 놈들 역시 근처에 있다는 뜻 아닌가? 

지혜가 있으니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태민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까? 나 행사 끝나고 바로 온 거라니까? 그 사람들은 또 뭐고?”

“우리 만났잖아. 아침에 나한테 전화 안했어?”

“안 했다니까.”

“분명히 백사장이었는데.”

“에? 나 안했는데... 아 참! 나 핸폰 바꿨어요. 잃어버렸어. 번호도 바꾸고.”     


이후 두 사람은 길게 대화를 나눴는데, 그걸 세세히 옮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백성원은 자세하게 해명을 했고, 태민은 끝내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낮에 본 백성원의 정체에 대해서 의구심이 가시지 않은 것이다.      

그 사람이 정말 백성원이 아니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고 복잡해진다. 그들이 클론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말일까? 아니면 계획된 ‘가게무샤’일까?    

 

“미안한데, 오늘은 그냥 가는 게 좋겠어. 문제가 좀 생겼어.”

“알었슈. 담에 또 오면 되지 뭐.”     


백성원의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떠나갔다. 

급히 호출 받은 운전기사가 음주를 해서 백성원이 직접 운전대를 잡았는데, 그에게 화를 내지 않은 것으로 보아 기분이 상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빠. 재림이 깨어난 얘기 해줄게. 걔, 너무 불쌍해.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애.”     


지혜는 눈치가 빠른 아이다.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다. 백성원에 관해서 궁금한 게 많을 텐데도 지혜는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태민이 씻고 나오자 지혜는 바싹 붙어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태민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것이다.     


“그래? 미치는 거 쉬운 거 아닌데?”

“정말이야. 나한테 뭐라는지 알아? 님아... 

맨날 누나 누나 하면서 귀찮게 굴던 애가 잔뜩 무게 잡고 님아 그러잖아. 

미치지 않고 어떻게 그래?”

“님아?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미친 거지! 아줌마한테도 그랬대.”

“저런...”     


웃으려던 태민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졌다. 지혜가 더욱 피치를 올려 호들갑을 떤다.     


“아빠가 왔었어야 되는데. 저녁 먹을 때는 또 한 마디도 안 하더라고. 그래갖고...”     


태민이 살며시 손을 들어 지혜를 제지한다. 

지혜가 하던 말을 멈추고 쳐다보자, 태민이 집중하며 주위를 살핀다.     


“왜...?”     


태민이 손으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한다. 수화로 지혜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태민. 

두 사람은 장애인을 자주 접촉하기 때문에 수화에 능숙하다.    

 

‘아까부터 누군가 아빠를 노리고 있어. 낮에는 피했는데, 여기까지 쫓아온 것 같아.’

‘백성원 아저씨가 관련돼 있나?’

‘아니래. 어쨌든 싸움이 일어나면 너는 무조건 도망쳐야 돼.’

‘싸워야지! 우리 둘이면 다 이길 수 있어.’

‘실전은 위험해. 집을 나가면 일단 산 속으로 들어가. 되도록 깊이.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 싶으면 재림이네 집으로 가라. 아줌마가 돌봐줄 거야.’

‘아빠는?’

‘나도 재림이네로 갈게. 걱정 말고 편하게 있어.’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아빠가 없는데.’

‘금방 간다니까. 네가 있으면 아빠가 맘껏 행동을 못해. 도망가는 거, 잘하지?’

‘당연하지! 그건 아빠보다 잘해.’

‘좋아. 아빠가 하나 둘 셋 하면 너는...’    

 

태민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꽝!’ 하는 굉음과 함께 창틀이 부서지고 유리가 깨졌다. 

태민은 재빠르게 지혜의 앞을 막아섰는데, 막상 지혜는 태민보다 더 빠른 동작으로 현관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 창문을 통해 들어온 두 남자 중의 하나가 푸슉! 그물을 쏘아냈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본 것과 똑같은 장면이었다. 

지혜는 문 앞에서 그물에 포획되었고, 남자가 재빨리 지혜를 제압했다.     


“당신들... 뭐야?”     


태민이 지혜 쪽으로 다가가려다가 멈췄다. 이미 진 게임이다. 괜히 상대를 자극했다가 지혜만 다치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태민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상대를 살피기 시작했다. 지혜를 잡고 있는 남자1은 잘 훈련된 맹견처럼 불필요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쿠팡 안전국 직원입니다. 배송 의뢰를 받아서요.”

“그 얘긴 아까 들었잖아? 재방송 말고, 뭘 누구한테 배송하는데?”     


시간을 끌면서 빈틈을 노려야 한다. 지혜가 완벽하게 제압되어 있는 상태여서 해결방법이 여의치 않았다. 

남자들의 무공이 상당해 보이는 터라 함부로 실력대결을 할 수도 없었다.    

 

“그 분이 상품의 신선도를 따지셔서 신경 쓰이네요. 살살 합시다, 상하지 않게.”

“이 아저씨들 웃기셔. 우리가 무슨 과일이야? 생선이야? 신선도가 뭐야 신선도가.”  

   

지혜가 발끈하고 소리 질렀다. 

겁에 질려서 주눅 들어 있지 않으니 태민은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위험을 초래하지만 않는다면 적당히 자극하는 건 좋은 일이다.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야 한다.    

 

“아가씬 잠자코 있으라. 우리 볼 일은 저쪽에 있어.”     


남자1이 나긋나긋한 말투로 지혜를 달랬다. 

태민은 그 말을 들으며 잠깐 ‘연변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당장의 상황타개가 급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이 북한에서 내려온 태양족 직속조직의 정예요원이라는 것을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태민이 그 사실을 안 것은 한참 이후의 일이다.     


“일단 물건이 있는지 다시 확인부터 하지.”

“그러자고.”     


남자1의 말에 남자2가 고글같이 생긴 안경을 쓰더니 태민 앞으로 다가왔다.     


“괜한 짓 맙시다. 허투루 굴다간 애는 끝이야.”

“가까이 오면, 너도 끝이야.”     


태민이 한 발 물러서며 최대한의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남자2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유심히 태민의 몸을 스캔하더니 고글을 벗으며 물러섰다.    

 

“살아있네! 삼시충은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 셋 다 싱싱해!”

“좋았어. 지난번 실수 만회하자고.”

“유 선생! 물건 상태가 아주 좋아요. 우리 고객이 기뻐할 것 같아. 조용히 갑시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태민은 약간 마음이 놓였다. 지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거래를 잘해야 한다.     


“가긴 어딜 가? 난 못 가.”

“그러지 마시고. 덫에 걸렸어. 못 빠져나가.”

“애는 풀어줘. 아니면 난 안 가.”

“그래요. 풀어드릴게. 어차피 우리 관심사는 유 선생이니까.”     


남자2가 흔쾌히 태민의 요구를 수용했다. 

밀린다 싶으면 더 압박을 해야 한다.    

 

“지금. 지금 당장.”

“에이! 그건 안 되지. 유 선생 배달 끝나고, 물건 확인되면 그때 풀어드릴게. 확실히.”

“닥쳐라 이놈! 누구를 호구로 알아?”  

   

버티기 위해서는 논리를 벗어나야 한다. 태민은 무작정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태민의 변화에 남자2가 약간 당황했다.  

   

“와 이래? 호구가 뭐야?”     


남자2가 남자1에게 물었다. 남자1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한다.     


“호구? 글쎄... 구미호 말인가?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

“아! 그러네. 근데, 그게 지금하고 무슨 상관인데?”

“그건 나도 모르지.”     


두 남자가 서로 눈을 마주친 것과 태민 부녀가 눈을 마주친 것은 동시의 일이다. 

아울러 두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과 태민 부녀가 모든 공력을 다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 역시 동시의 일이다.      


펑! 소리와 함께 태민은 남자2를 가격하고 남자1 쪽으로 달려갔다. 지혜가 그물을 벗어나 창문 밖으로 뛰는 것을 확인하고는 태민 역시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이제부터 할 일은 오직 달리는 것뿐이다. 그 밖의 일은 하늘의 뜻에 맡겨야 한다. (제 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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