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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Aug 22. 2022

제6화; 어머니는 외계인

본격 탐사 판타지 <지구인들> 제 1부 ; 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          


제6화; 어머니는 외계인    


 왜 병원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갔는지 모르겠다.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돌렸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시간이 필요했다고 해야 할까?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아버지를 어떻게 봐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무리 원수처럼 지낸 사이라고 해도 죽으면 끝인 게 세상 관습이다. 나란 인간이 세상법도를 무시하고 살긴 했으나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약간의 예열이 필요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신고가 들어왔어요.”

“뭐가 안 돼? 내 집에 내가 들어가겠다는데, 뭐가 문젠데?”     


집에 갔으나 아줌마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뭐야? 아무도? 내가 아무도야?”     


나는 이 때다 싶어 미친개마냥 짖어대며 소란을 피웠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제지했지만 나는 더욱 소리를 높였다. 

아버지가 없는 지금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오직 한 사람, 어머니를 제외하면.     


“아무래도 갖다 버려야겠어.”

“내가 키울게.”

“뭐 하러? 귀찮기만 하지.”

“우리 애잖아. 내가 키울게.”

“또 낳아줄게. 이번엔 진짜로. 얘는 버려.”

“언니는 신경 안 써도 돼. 내가 알아서 할게. 어라? 이 녀석이 웃네?”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오래된 장면이 바로 이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은 떠오르지 않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던 대화만 또렷이 남아있다. 어머니는 예의 쾌활한 말투로 나를 버리겠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자기가 키우겠다며 만류했다.     


아마도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의 일 아닐까? 이 장면은 어머니가 나를 대하는 기본적 입장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어머니는 나를 낳은 생물학적 어머니일 뿐 이후 한 순간도 내게 어머니였던 적이 없다.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는 네게 털끝만큼의 관심도 가져보지 않았다. 어릴 적 나는 그런 어머니가 무서웠고, 커서도 감히 어머니에게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온갖 수단을 다해서 아버지를 괴롭혔을 뿐.    

 

이 장면을 처음부터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8년 전 나는 한동안 격투기에 빠져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 어느 순간 이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아주 깨끗한 밤하늘에 둥글게 달이 떠오르는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이 솟아 올라왔다.     


격투기는 힘든 운동이다. 아니, 운동이라는 말도 맞지 않는다. 내가 그런 건전한 취지로 격투기를 했던 것은 아니니까. 

건강을 위해 체력을 단련한다거나 심신을 단련하는 따위의 것에 나는 관심이 없다. 어디선가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는 구호를 본 적이 있는데, 내가 격투기에 빠졌던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때리고 조이고 비틀자!’ 거친 주먹에 맞고 강력한 힘으로 조임을 당하고 절묘한 각도로 뼈와 살이 조여지는 고통...      

나는 그 고통이 좋았다. 맞으면 맞을수록, 조여지면 조여질수록, 비틀리면 비틀릴수록 내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고통이 심할수록 정신은 오히려 맑아지고, 방황을 끝내고 돌아온 소년처럼 온순해졌다.   

  

격투기 기술 중에 ‘리어 네이키드 초크’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 목조르기 기술인데, 상대의 숨을 못 쉬게 함으로써 탭을 받아내는 것이다. 

대부분 견디기 힘든 마지막 순간에 항복의 탭을 치게 마련인데, 나는 절대 탭을 치지 않는다. 발악을 하고 반칙을 해서라도 벗어나거나 그것도 안 되면 그냥 기절하고 만다.     


숨이 막혀서 기절하기 직전의 그 안락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몸에 산소가 소멸되면서 정신도 같이 소멸되어 간다. 머릿속을 들끓던 만 가지 번뇌도 사라지고, 부글부글 솟구치던 욕망과 분노도 씻기듯 물러간다.      

그리고 잠깐 찾아오는 안식과 평화의 순간... ‘아! 이제야 죽는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내 의식이 끊어진다.


그 짧은 안도의 순간에 갑자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아버지와의 대화가 이어졌다.      

추측컨대 한두 살 때의 일로 보이는데, 왜 갑자기 그 순간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어두운 의식 속에서 장면은 없이 말소리만 들렸는데, 아버지의 웃음소리와 함께 내 의식도 돌아왔다.     


‘왜 그랬느냐고! 그 때 나를 죽게 놔뒀어야지.’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일까? 어떻게 보면 내 평생은 아버지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기억대로라면 나를 버리려고 한 것은 어머니이고 살리려고 한 것은 아버지이다. 당연히 나는 어머니를 미워하고 아버지에게 고마워해야 하는데, 왜 나는 아버지를 괴롭혀왔던 것일까?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미움의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한 어머니는 내게 한 끼의 식사도 차려준 적 없고, 한 벌의 옷도 사준 적이 없다.      

20년을 한 집에서 살았지만 어머니와 나는 서로에게 ‘없는’ 존재였다. 어머니는 내게 한 번도 어머니였던 적이 없다!     


내게 어머니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을 갈구할 필요도 없고, 나는 그저 악행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구걸했을 따름이다.      

어머니가 두 동생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2층으로 올라가 아버지를 괴롭혔다. 아버지가 집에 없으면 밖에 나가서 사고를 쳤다. 

파출소나 경찰서에 붙잡혀 있으면 아버지가 나를 구하러 왔고, 나는 아버지가 건네주는 초콜릿을 먹으며 잠시의 평안을 즐기곤 했다.  

   

한심하고 지루한 이런 옛날 얘기는 그만 하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옛날부터, 어쩌면 처음부터 어머니를 외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어머니를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하다고 해야 했다.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부잣집 사람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아! 돌이켜 보면 이상한 광경을 본 적이 있긴 하다. 아버지와 어머니 둘 사이에 하얗게 빛나는 광선이 연결된 걸 봤는데 당시에는 그게 뭔지 몰랐다. 한 번은 거실에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부경 부진이 모두 소파에 앉아있는 걸 보았다.      


잠든 듯 보였는데, 그들의 머리에서 빛 줄기가 솟아나와 서로 연결되어 전류가 흐르듯 파동치고 있었다. 어릴 때이고 잠결이라 ‘뭐지?’ 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그게 그들 태양인의 본 모습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살아가는 태양인이었던 것이다.  

   

내가 어머니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이라는 것이 서로 눈이 마주치면 뭔가 교감이 이루어지게 마련인데, 어머니에겐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도 느낄 수 없다. 마치 깊고 컴컴한 하늘을 쳐다보는 느낌이랄까?     

그러므로, 내가 한껏 소란을 일으켜도 어머니가 전혀 반응을 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집을 찾아간 것 역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는 아니었으니까. 나는 단지 아버지의 공간에 습관적으로 스며들어간 것뿐이었다.     

나는 출동한 경찰에게 끌려 파출소에 갔고, 핸드폰 연락을 받은 최민이 달려와 꺼내주었다. 


망할 놈의 아버지... 이딴 후줄근한 듣보잡 놈에게 나를 맡기고 죽어간다고?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이 찌질한 변호사는 묵묵히 내 뒤를 따라왔다. 뭔가 할 얘기가 있는 눈치였으나 나는 전혀 틈을 주지 않았다. 나이 40쯤 된 전문직 남자가 아직도 남의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다면 그건 별 볼일 없는 인생이라고 봐야 한다.      


나는 별 볼일 없는 인간들을 증오한다. 나를 포함하여. 쓰러진 망할 놈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그러므로 고맙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미안한 표정 같은 것도 보이지 않겠다. 당연한 서비스를 받듯이 시크하게 사라지리라.      


나는 다가온 택시에 올라 병원으로 갔다. 최민은 멀어지는 나를 바라보며 한심해 했겠지만 상관없다. 나는 존재조차 없는 사람이다.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내가 어떤 행동을 하건 그것 역시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 세상과는 아무 상관없다. 내가 존재하는 유일한 순간은 아버지가 있을 때뿐이다. 아버지만이 나를 존재로 인정해주었고, 나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 시시껄렁한 악행을 반복해 왔다.      

나는 나의 악행을 마치지 않았는데, 왜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를 무효화시킨 것일까? 이건 반칙이다. 약속 위반이다. 아버지는 내가 죽을 때까지 나를 책임져야 한다.   

  

“아버지, 당장 일어나! 이게 무슨 짓이야?”     


나는 아버지에게 언성을 높여 따질 생각이었다. 

오성병원에 도착한 나는 익숙한 코스로 VIP 병실에 올라갔다. 나는 그다지 아픈 적도 없고 병원에 입원 같은 것은 한 적도 없다. 그러나 오성병원 VIP 병실은 매우 익숙한데,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들이 정기적으로 입원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병실에 몇 번 갔었는데, 그곳은 일반 사람들의 접근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정확히 말하면 어머니의 가까운 사람들만 이용하는 특별한 병실이라는 느낌이다.      

뭔가 특별한 치료가 이루어지는 듯하지만 나는 굳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 가족 중에서 나만 소외되었으나 그 역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항상 그들끼리는 즐겁게 웃으며 얘기를 나누다가도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정색을 하고 말을 멈추었다.    

  

나는 우리 집의 미운 오리 새끼였다.


****


복도는 어둡고 비어 있었다. 나는 당연히 경호인이 지키고 있으리라 예상했는데, 그런 일종의 우리 집 관례였다.      

어머니는 한 번도 경호 없이 세상 속으로 나간 적이 없다. 보호해야 할 무엇이 있는지, 아니면 무서워하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단순한 돈 자랑인지도 모른다. 재벌가 집안이나 기타 명문가와 나름 어깨를 겨룰만한 집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      


별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어머니는 실제로 엄청난 부자이고, 누구나 알만한 저명인사들이 수시로 우리 집에 드나드는 것을 보고 자랐다. 막후 실세라고나 할까. 

그러나 아버지는...     


“아버지...?”     


병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마침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나는 놀라 아버지를 부르며 안쪽을 살펴봤다. 

경호원으로 생각되는 사람이 소파에 누워 자고 있었고, 그 밖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 이런!”     


아버지가 나를 보고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이건 뭐지? 나는 당황하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니 우리 집의 가족 모두는, 나를 제외하고, 당황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평안하고 언제나 쾌활하고 언제나 당당했다.     

 

그런데 내 앞의 아버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정지해 있다. 나는 당연히 누워있어야 할 아버지가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것보다,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믿어지지 않았다. 

이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다!     


“당신... 누구야?”     


나는 흔들리는 아버지의 눈동자를 보며 물었다. 

아버지는 나를 피해 급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른 원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듯 응접실을 지나 병실로 들어갔다. 경호원이 낯선 기운을 느끼고 몸을 뒤척였으나 깨어나지는 않았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들어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누구야, 당신?”     


묻는 내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조금 전까지의 혼란스럽던 마음 역시 차분히 가라앉았다. 마치 침몰하려는 배에서 발버둥 치다가 막상 가라앉는 것을 인정했을 때 느껴지는 안온함이 나를 감쌌다. 

뭔가, 희망이 보이는 듯도 하다. 어쩌면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네가 여길 왜 와? 넌 여기 오면 안 되지.”     


병상에 누우려던 아버지가 돌아서며 말했다. 책망하는 말투였지만 뭔가 낙심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버지 어딨어? ...우리 아버지 쓰러진 거 맞아?

“명근아! 얼른 돌아가. 여긴 못 본 거로 해라.”

“아버지 어딨냐고? 당신 누구야? 왜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지?”

“명근아, 너 그만 돌아가. 이젠 널 돌봐줄 수가 없어. 끝났다고.”    

 

명근아... 

그가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나는 잠시 그를 아버지라고 착각하고 말았다. 

그만큼 그는 아버지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외모, 말투, 약간 어색하게 걷는 걸음걸이까지 아버지 그 자체였다.      

만약 내가 화장실 앞에서 그를 보지 않았다면, 그가 당황해서 내가 전혀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나는 당연히 그를 아버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 본 그 때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버렸다. 그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다.    

 

“아직 늦지 않았어. 밖에 깨어나기 전에 얼른 빠져 나가라. 어서!”     


그가 힐끗 경호원 쪽을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그의 말과 표정에서 진심을 느꼈다. 그가 아버지와 똑같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정말로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마터면 그의 말을 들을 뻔했다.     


“아냐. 당신, 아니잖아... 우리 아버지 어떻게 된 거야?”

“명근아. 난 입이 없어. 말하면 안 돼. 

지금 이것도 안 되는 거야. 얼른 나가.”

“조오까!”     


나의 실수였다. 그의 말을 듣고, 내 입에서는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나의 말에 당황한 것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피식- 그가 웃었다. 그가 웃는 것을 본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버지... 이 사람은 나의 아버지인가? 분명히 아버지가 아닌데, 또 아버지인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어디까지, 얼마만큼이나 나의 아버지인가?   

  

이 상황을 부연설명하면 이렇다. 

‘조오까!’라는 말은 내가 아버지에게 투정할 때 쓰는 일종의 관용구 같은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썼다고 생각되는데, 아마 아버지가 처음 내 말을 듣고 웃어준 것이 계기가 되어 습관적으로 사용해오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내가 성인이 된 후로는 웃어주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조오까!’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      

이 상황에서 내가 ‘조오까!’라고 했다는 것은 무의식중에 그를 아버지라고 생각했다는 것이고, 그가 당황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도 분명히 나를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어쩌면 실제로 그가 여러 번 나의 ‘조오까!’를 겪었을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그는 몇 번이나 나의 아버지 노릇을 했던 것일까?    

 

“그래. 아버지는 너를 사랑해. 알지?”     


아킬레스건처럼, 아무리 단단하게 자신을 감춰도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그런 여린 살들은 진실이라는 화살을 만나면 스스로 빛나면서 구멍을 열어 자신을 보여준다.      

‘정곡을 찔렸다’는 말이 그런 뜻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곡을 찔리면 마치 정수기의 버튼을 누른 것처럼 눈물이 쏟아진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는 그의 말에 갑자기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왔다.    

 

“조오까...”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걸 숨기기 위해 습관적으로 욕을 내뱉었지만 분명히 나는 그를 아버지처럼 대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눈물은 안도의 눈물이 확실했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안도감. (진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내 앞에 예전처럼 나타나자 나는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하자. 지금 제일 먼저 할 일은 여기를 나가는 거야. 

만약 사모님... 네 엄마가 알면 네가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어.”    

 

그는 ‘사모님’이라고 했다가 잠깐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셈이니까.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라고 생각을 했겠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일 아닌가?     

“상관없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알기 전에는 못 가지.”

“난 입이 없어. 아무 것도 말 못해. 얼른 나가. 

이게 내가 너한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야.”

“아버지 어딨어요? 아직 죽은 건 아니잖아요?”

“...”     


그는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잠시 나를 보더니 천천히 병상으로 올라갔다. 짧은 한숨소리가 들였다.     


“잘 살아라. 넌 이제 어린 애가 아니잖니.”     


유언처럼 말을 남기고 그는 자리에 누웠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상대가 명확하게 정리해 주면 그 다음에는 내가 할 일만 남는다. 더 이상 떼쓸 때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위험한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애가 아니고, 잘 살아야 한다.   

  

균열... 때로 인생의 어느 순간 균열을 경험하게 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그 짧은 균열을 통해 솟아오른다. 

그 균열을 부르는 이름은 많다. 어떤 때는 기적으로, 어떤 때는 오류로, 또 어떤 때는 돌연변이나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뭐라 부르건 중요한 것은, 그 균열의 틈으로 우리는 슬쩍 삶의 진면목을 구경하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균열이 발생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작은 균열인가 싶었던 것이 나중에 보면 거대한 지각변동이었던 것처럼, 이때의 균열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지각변동으로 대륙이 갈라졌듯이 내 인생도 완전히 새로운 길로 급선회하게 되었다.      

때가 되어 아버지가 사라지면, 아이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나이 40에 나는 그렇게 어른의 길로 접어들었다.     

“인제 나이도 먹었잖아. 자긴 어린 애가 아니라고.”

“잘 살아라. 넌 이제 어린 애가 아니잖니.”    

 

병원을 빠져나와 어둡고 침울한 도로에 노출된 순간, 왜 두 사람의 말이 동시에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헤어진 모르는 여자와 아버지 노릇을 하던 그는 똑같은 말을 작별인사로 건네주었다. 나는 애가 아니라고?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털썩, 나는 보도블록에 주저앉았다. 한 무더기의 청년들이 시끌벅적 소란을 떨며 지나갔다. 시작되는 봄날의 흥겨움에 취해서, 젊음의 열기에 들떠서 즐거운 웃음이 흘러넘쳤다.      


‘그래, 실컷 웃고 즐겨라. 그게 죽음의 파티인 걸 알 때까지.’  

    

나는 핸드폰 벨소리가 다시 울려주기를 바랐으나 오지 않았다. 정적이 지속되고 한기가 밀려왔다. 일어나야 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일어나면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어야 한다. 아버지가 없는 게 확인된 이상 철부지 어린애 코스프레는 끝났다. 나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다. 이제 나의 길을 가야 한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모르 파티> 노래가 들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     


“네.”

“아가. 집으로 와. 얘기 좀 하자.”    

 

어머니... 

나는 이제껏 한 번도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 전화는커녕, 한 집에 살면서도 어머니는 내게 한 번도 말을 건넨 적이 없다. 

그런 어머니가 내게 전화를 했다. (제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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