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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Aug 26. 2022

제8화; 본거지에 가다

본격 탐사 판타지 <지구인들> 제 1부 ; 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


제8화; 본거지에 가다


논현동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썼다. 

설렜느냐고? 천만에! 무서웠다. 


짐작으로는 아버지 역할을 하는 그 남자가 어머니에게 자수 전화를 한 것 같았다. 내 방문을 없던 일로 하고 둘만의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었는데, 아마 겁이 났던 모양이다. 

나는 그의 배신 내지는 밀고가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라도 밝혀지게 되면 그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자수하고 용서를 바라는 게 좋은 선택이다.


오해는 말라. 어머니는 좋은 사람이다. 특히 집 밖으로 나서면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교양 있고 자애로운 여자가 된다. 

다만 어머니의 외출은 극히 드문 경우다. 일 년에 한두 번, 어쩌면 몇 년에 한번 정도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두 여동생 부경과 부진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아마 평생을 그렇게 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인간은 죽음과 성행위 앞에서 당황하는 동물’이라고 했다는데, 나는 아니다. 

나는 오직 어머니 앞에서만 당황한다. 더군다나 생전 처음으로 전화를 걸어서 ‘아가’라고 부르며 만나자고 하면 나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아가... 

이 말은 어머니가 동생들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부경이 어릴 때부터 쓰기 시작하더니 부진이도 똑같이 아가라고 불렀다. 어릴 때뿐만 아니라 다 큰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동생들을 아가라고 부른다. 

물론 나는 한 번도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나를 뭐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힐끗, 가구 보듯이 쳐다본 적은 있어도, 마음 들여서 쳐다본 적도 없다. 어머니에게 나는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해서 아가라고 불렀다. 도대체 뭘 어쩌자는 것일까? 아버지도 없는 이 상황에 어머니는 나를 아가라고 부르며 보자고 한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그동안 겪었던 온갖 일들이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어머니의 호출이, 아가라는 부름이 잔잔하던 나의 잠재의식을 휘저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한때, 정말 간절하게 바랐던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눈길, 어머니의 부름, 아가라는 호칭을 애타게 기다리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지나갔고, 나는 망가졌다. 망가진 나를 살펴주던 아버지도 없다. 


그런데 어쩌자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하나? 나의 손을 잡고 같이 지내자고 하면 나는 그걸 뿌리칠 수 있을까? 

아버지 얘기를 하며 울먹이기라도 할 경우, 나는 원래의 나 그대로 냉소적인 태도로 무시할 수 있을까? 

어머니 말을 듣고 있으면 안 된다, 나는 아버지의 존재를 추궁해야 한다, 단 하나 중요한 것은 아버지뿐이다... 

나는 잡동사니 생각의 폭풍 속에 나를 맡겨 버렸다. 폭풍이 심할 때는 그냥 견디는 수밖에 없다. 


“아가. 이걸 어떡한다니?”


내 인생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지만, 막상 어머니와의 맞대면은 흔한 일상처럼 밋밋했다. 

어머니는 늘 보는 아들 대하듯 편안했고, 나는 새로 산 명품 옷을 입은 것처럼 낯설고 어색했다.


“정말 몰랐다. 네 아버지가 널 두고 이렇게 가버릴 줄은. 고얀...” 


어머니는 감정이 없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말투도 로봇처럼 기복 없이 덤덤해서 때론 정말 로봇이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다. 

물론 밖에서 일반 사람들을 만나면 정상적인 어조로 대화하지만, 집에서는 그런 연기를 하지 않는다. 

그렇게 중립적인 어조로 말을 하면, 듣는 입장에서는 말의 내용이 더 증폭되는 느낌을 받는다. 재미있는 내용이면 더 우습게 들리고, 슬프거나 화나는 내용이면 그 느낌이 더 강조된다.


“제가 아니라 어머니겠죠. 아버진 어머니가 전부였잖아요.”

“너한테 뭐라도 남긴 거 없니? 편지라던가.”

“나한테 물을 게 아니라 설명을 해야 하는 거 아녜요? 이 상황을... 

저기, 병원에 있는 사람은 뭐죠?”


어머니의 물음에 나는 최민 변호사를 떠올렸으나 얼른 지워버렸다. 나는 고분고분 묻는 대로 대답하는 모범생이 아니다.


“아가.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아가라고 부르긴, 너무 늙지 않았나요?”


어머니와 한두 마디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평소의 상태로 돌아갔다. 

어머니를 만난다는 설렘이나 ‘아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감격 같은 감정이 사라지고, 오히려 전에 없던 삐딱한 기분이 솟아 올라왔다. 

아버지가 쓰러진 것에 대해 어머니는 책임을 져야 한다.


“세상에 늦은 때란 없어. 그러고 보니, 이게 네 아버지 뜻인지도 모르겠다. 

너한테 잘 해주라고 몇 번 얘기했었거든.”


어머니가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결론처럼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교양 있는 사람이다. 

내가 빈정대며 ‘늙지 않았냐’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짐짓 ‘늦지 않았다’고 돌려받는다. 

그러나 나는 체질적으로 착한 척하는 사람을 못 본다. 인간은 본래 악하다.


“아... 그래서 지금 저한테 잘 해주고 있는 건가요? 

마흔 살 먹은 아들한테 아가라고 불러 주시고. 눈물 나네요.”

“네가... 아버지를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어. 가자.”


그리고는 불쑥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나와 대화를 계속할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렀지. 이제 나의 시간이 왔군.’ 나는 본격적으로 싸움에 돌입할 자세로 목소리를 낮췄다.


“이대론 못 가죠. 아버지 보기 전에는 난 안 나가.”

“여기 없어. 그리고 우리 사이에, 지킬 건 지켰으면 좋겠구나.”

“우리요? 언제 내가 어머니한테 의미 있던 적이 있기는 했나요? 

지킬 게 있기라도 했으면 좋겠네요.”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너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너에게로 가서 나도 너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어머니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김춘수의 시 <꽃>을 읊조렸다. 특유의 감정 없는 어조로 또박또박 내 귀에 꽂아 넣었다. 

이건 뭐지? 왜 갑자기 시를?


“나는 인간을 믿지 않지만, 가끔, 아주 가끔 믿고 싶은 순간들이 있어. 

지금 내가 너를 불렀잖니, 아가. 제발 너도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나도 너의 꽃이 되고 싶다...”


어머니의 이해되지 않는 대꾸에 나는 당황해서 할 말을 잊었다. 

나의 꽃이 되고 싶다고? 팽개쳐뒀던 엄마의 자리를 찾겠다는 말인가? 아버지도 없는데, 이제 와서? 

나는 마음에 중심을 잃고 멀뚱멀뚱 어머니를 쳐다봤다. 마땅히 대처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착하다. 가자 아가. 네 아버지한테 데려다 줄게.”


나는 최면에 걸린 사람마냥 어머니를 따라 일어섰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이런 대응방식은 그들이 우리 인간들을 상대하며 즐겨 사용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들은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처럼 감정에 휩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필요하면 인간의 감정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뭔가 맥락을 벗어난 뜻밖의 반응이 나오면 일단 조심해야 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는 모두 각각의 의도가 있다. 말하자면 나는 어머니의 술수에 간단히 제압당해버린 셈이 된 것이다.


그 때 어머니는 왜 나를 데리고 들어갔을까? 

나는 한 번도 어머니의 침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집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침실에 창문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침실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도 그 날 처음 알았다. 


더군다나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지하에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져 있으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


지하에 내려가는 동안 어머니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수십 년은 된 듯 낡은 엘리베이터의 흔들리는 기계소리가 나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벌써 아버지를 땅 속에 묻어버렸나?’      


만약 아버지를 매장한 상태라면 나는 한바탕 행패를 부릴 생각을 해뒀다. 내 눈으로 직접 아버지를 보기 전에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 

아버지는 내 허락 없이는 죽어서도 안 된다.    

 

옷장 문을 열고 들어가면 새로운 환상세계가 펼쳐지는 SF 영화처럼, 낡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상상도 하지 못한 최첨단 공간이 눈앞에 나타났다. 

잠실 운동장 정도 되는 크기의 타원형 공간이 눈에 들어오고, 그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피라미드가 솟아 있었다. 

그 옆에는 달걀 모양의 물체 몇 개가 놓여 있었는데, 나는 보자마자 ‘우주선 아냐?’라는 생각을 했다.     


“빨리.”    

 

타원형 공간의 가장자리로 트랙이 있고, 우리가 트랙에 올라서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빨리’라고 말하자 트랙은 빠른 속도로 움직여서 금새 우리를 반대편 공간에 옮겨다 놓았다.      

트랙이 갑자기 속도를 높이는 바람에 나는 꼼꼼히 살펴볼 수가 없었는데, 무엇보다 서울 시내 한복판의 지하에 이런 거대한 공간이 숨겨져 있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  

    

대충 설명하면 서울 강남의 학동 공원 아래쯤일 것이다. 논현동의 수많은 집들 지하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남산 어디에서 지하 벙커가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본 적 있는데, 이건 벙커 정도의 규모가 아니었다. 최신식 비밀 군사기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대체 어머니는 이 공간과 어떤 관계란 말인가? 아버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놀랄 틈도 없었다. 우리가 들어간 방에는 두 여동생, 부경과 부진이 있었다. 

침대에 아버지가 누워있었고, 여러 의료 장치들이 갖춰져 있었지만 아버지의 몸에는 간단히 링거 하나만 연결되어 있었다.   

  

“어? 데려 왔어?”    

 

부경이 나를 보고 의외라는 듯 말했다. 부진이 까르르 웃었다.   

  

“그냥 놔두지. 백구도 없는데 어쩌라고?”     


부진은 항상 웃는다. 어머니가 시종일관 같은 어조인 것과 반대로, 부진은 감정의 고저가 분명하다.     


“갑자기 생각이 났어. 백구도 좋아할 거야.”

“잡아 놓을까? 이 아이 보고 싶어서 오려나?”

“참으시게. 얌전한 아이도 아니고.”

“재워놓지 뭐. 지 아버지하고 나란히.”   

  

나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흘려들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조금 이상한 대화였는데 그 때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눈앞에 아버지가 보이자 나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동생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살았나?’      


나는 아버지가 죽은 게 아닌 것 같은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슬쩍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기운이 전해왔다. 그 기운이 내 팔을 타고 올라와 빠르게 누선을 자극했다.      

울면 안 된다. 동생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자... 나는 솟아올라오는 눈물을 억지로 쑤셔 넣었다. 

올라오던 눈물은 심장으로 흘러들어가 나의 가슴을 덥혔다. 따뜻한 기운이 심장에서 온 몸으로 전해졌다.

 ‘살았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사랑스러워졌다. 고마웠다. 가볍게 한숨이 나왔으나 이번에는 숨기지 않았다. 다행이다. 아버지가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살아 있었네요?”    

 

나는 기분이 좋아서 그들을 돌아보며 소리 질렀다. 

그들이 나누던 말의 내용을 살폈더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당시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쨌든 어머니와 동생들이고, 당연히 나처럼 아버지의 무사를 좋아할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네 눈에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니?”    

 

부진이 여전히 깔깔거리며 내게 물었다. 

뭐라고? 너라고?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부진에게 되물었다. 

    

“다행이다. 너희들 덕분인가?”

“바보야. 껍데기만 있는데 뭐가 다행이야?”

“뭐?”     


나는 부진의 말에 비로소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다. 

아까 그들이 나누던 대화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지금 부경과 부진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예전과 다름을 깨달았다.      


사실 어머니나 부경과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지만, 부진과는 가끔 말을 섞기도 하는 사이였다. 집에서 나는 늘 혼자였지만, 가끔 부진이 다가와서 말을 건네곤 했던 것이다. 

부경과는 2살, 부진과는 5살 차이였고,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 독립해 나왔으니 부진이 15살쯤까지 함께 지낸 사이였다. 

그 때는 나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다정하게 굴던 부진이였는데, 지금의 태도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 지금...”

“백구가 사고를 쳐서 지금 난리거덩?”

“사라져 버렸다고, 네 아버지가.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니, 아가?”    

  

아... 미쳤구나!

부경이 나를 아가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처음 든 생각이다. 

나는 그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갑자기 그 상황이 무서워졌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직감적으로 그들을 외계인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아버지는 무사했고, 당장 중요한 것은 나의 안전이었다. 이들을 피해 달아나야 한다.  

   

“정신이 없잖니. 이깟 비게 덩어리가 무슨 소용이야? 

그렇지 않니 아가?”

“돌아오겠지. 곧 정신을 차리실 거야. 기다려 보자고.”

“쯔쯧, 아가야. 신은 술 취한 남자가 아냐. 술 깨면 돌아오는 그런 게 아니라고.”   

   

그때 익숙한 얼굴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투철! 여기 웬일이야?”     


들어온 남자는 나의 호들갑에 힐끗 쳐다볼 뿐 별 반응이 없었다. 그는 내가 잘 알고 있는 인기 절정이 래퍼 투철이었다.      

물론 그는 나를 모른다. 내가 심리적으로 힘든 시절, 나는 그의 노래를 듣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의 랩이 특별한 내용을 전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그의 노래는 우리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원래 그는 본명이 ‘이철’이고 ‘철2’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래퍼였는데, 한동안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재작년 ‘투철’이라고 개명을 한 후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돌아왔다. 

그리고 승승장구, 발표하는 노래마다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워낙 반가운 마음에 나는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처럼 그를 부른 것이다.     


“아들?”    

 

투철은 어머니를 보고 짧게 물었다.     


“응.”

“본부에서 연락이 왔네? 기다려봤다가, 시간이 되면 엔드게임으로 간다고.”

“휴우, 결국 그렇게 되네.”

“좀 앞당겨지는 것뿐이야.”

“얼마나?”

“108일.”

“백구 아니랄까봐.”     


부경이 약간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완전히 무시당한 나는 이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투철은 이들과 어떤 사이인가? 

갑자기 어머니가 뻘쭘하게 쳐다보고 있는 내게 시선을 돌렸다.     


“들었지? 네 아버지한테 전해라.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엔드게임으로 간다고.”

“엔드 게임?”

“혹시 너를 찾을지도 모르지. 백구는 너를 특별하게 생각했어.”     


백구... 나는 그게 아버지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백구가 숫자 109이고, 아버지의 고유번호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됐다. 

그들에게 육체가 의미 없는 것처럼, 이름 또한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숫자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날 그렇게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드러났고, 어쩔 수 없이 나는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만 했다. 엔드 게임을 막기 위한 그들과의 싸움을. (제 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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