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집앞에는 두 개의 작은 슈퍼가 있었는데, 각각 은혜상회와 현대상회였다. 두 상회는 서로 열 걸음도 떨어져 있지 않았고,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마주보는 위치였다.
나와 동생은 은혜상회 할머니와 훨씬 더 친했다. 계기는 단순했다.
"저 평상에 앉아서 아이스크림 먹다 가."
무더운 여름날, 은혜상회 할머니가 그렇게 말해 주셨기 때문이다. 해가 너무 쨍쨍해서 '집까지 가는 동안 아이스크림이 다 녹으면 어쩌지' 걱정하던 남매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제안이었다.
우리는 그날 노란 평상에 앉아, 햇볕에 다 탄 새까만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할머니는 우리 옆에 앉아 이런저런 말을 붙였다.
"맛있어?"
"네."
"이 안 시렵고?"
"네."
수줍음 많던 나는 웅얼웅얼 얼버무렸는데도, 할머니는 뭐 때문인지 우리 남매가 기특하다고 했다.
"뭐 안 사도 되니까 힘들면 평상에 앉아서 쉬고 가다가 그래."
"네."
이렇듯 '평상 무료 이용권(?)'을 받았지만, 그날 밤 우리 얘기를 들은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과자라도 하나 산 다음에 앉아서 먹어. 알겠지? 할머니 힘들게 사시는 분이야."
아이고, 사연 많은 동네 흑석동이여. 어쨌든 엄마 말대로 우리 남매는 늘 과자라도, 하다못해 풍선껌이라도 하나 사서 평상에 앉아 있곤 했다.
학원 강사로 일하느라 늦게 귀가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장소도 자연스럽게 은혜상회 평상으로 고정되었다. 집과 가깝고, 앉을 곳 있고, 등 뒤에는 불빛이 있었으니까.
우리 남매는 늘 과자 하나를 사서 둘 사이에 놓고 하나하나 집어 먹었다. 엄마가 늦어지는 날이면 과자는 금세 동났다. 어느 날에는 할머니가 슬그머니 나오셔서 바나나킥을 내미셨다.
"이거 먹어."
"안 샀는데…."
"할머니가 주는 거니까 먹어도 돼."
아직도 그 바나나킥의, 질소로 빵빵하게 부푼 영롱한 자태가 떠오른다. 아시는가, 고작 여덟 살인 어린이도 어른의 배려를 충분히 느끼고, 감동한다는 것을…. 특히 늦게 오는 엄마를 어둠 속에서 기다리는 애라면 더더욱.
엄마가 돌아왔을 때, 우리는 이미 다 먹은 바나나킥을 가리키면서 할머니가 그냥 주셨다고 말했다. 엄마는 바로 은혜상회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너무 감사해요."
"뭐얼. 애들이 기특해서 그러지."
"이거 과자값 드릴게요."
"아 그냥 준 건데 왜 이래?"
할머니는 거의 화를 내다시피 하며 돈을 받지 않았다. 나는 봉지 안에 남은 가루를 침 묻힌 손가락으로 찍어먹으면서 그 대화를 엿들었다.
그렇게 은혜상회 할머니와 우리의 '우정'이 쌓여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로 옆에 있는 현대상회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 현대상회 사장님이 나쁜 분이라서는 절대 아니고, 그냥 어린애 나름의 의리였다. 풍선껌 값 300원이나마 은혜상회 할머니한테 주자는, 자그마한 의리.
하지만 의리는 꼭 시험에 드는 법이다. 어느 날, 풍선껌을 사러 나갔는데 은혜상회 셔터가 내려가 있었다. 어린 나는 100원짜리 동전 세 개를 쥔 손에 땀이 차도록 고민해야 했다.
'현대상회 가서 살까? 아니야. 은혜상회 할머니가 섭섭하시면 어떡해.'
돌이켜보면 우습고 귀엽지만, 그때는 그만한 고민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던지.
결국 나는 풍선껌 먹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의리'를 택한 것이다.
흑석동을 떠나고, 그곳이 재개발되면서 당연히 은혜상회도 사라졌다. 할머니가 어디로 가셨는지, 지금 뭘 하고 계시는지는 전혀 모른다.
나에게 친구보다도 먼저 의리에 대해 알려준 할머니. 열 시 넘어서까지 엄마를 기다리는 우리를 위해 내내 가게 불을 켜 놓았던 할머니. 그렇게 불빛으로, 바나나킥으로 우리와 함께해 줬던 할머니.
다시 만난다면 바나나킥 한 봉지… 아니, 백 봉지쯤 사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