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라는 이름, 어떻게 생각하세요?

by 이가령

흑석동에는 ‘구멍가게’가 있었다.


계단을 한두 개쯤 내려가야 하는 반지하 정도의 위치에, 안을 밝히는 조명이라고는 작은 알전구 하나, 안쪽에는 사람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장판을 깐 방이 하나. 가게라기보다는 사장님의 아지트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동네 사람들은 그곳을 ‘구멍가게’라고 불렀다. 아저씨는 가게를 운영했고, 아주머니는 책을 배달해 주는 일을 했다. 우리 집에도 주마다 동화책을 배달해 주는 분이어서 안면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게는 나와 동생이 다니던 선교원 바로 앞에 있었다. 그런 만큼 꽤 자주 이용했다.


“우리 구멍가게 가서 껌 사자.”


그날도 선교원이 끝나고 동생과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카시아 향 풍선껌은 우리 남매의 값싼 기쁨이어서, 그날도 300원을 들고 구멍가게로 갔다. 그러다가 가게 앞에 나와 있던 사장님과 마주쳤다.


사장님은 우리를 보고 말했다.


“구멍가게 아니야. 쌍둥이 슈퍼야.”


그러면서 가게 간판 구석진 곳을 가리켰는데, 거기에는 작고 하얀 글씨로 ‘쌍둥이 슈퍼’라고 적혀 있었다. 아저씨에게 쌍둥이 자녀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지은 거구나, 쉽게 짐작이 갔다.


나는 구멍가게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보다, 그 말을 하는 아저씨의, 약간은 서글퍼 보이는 표정에 더 놀랐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구멍가게는 안 좋은 말이야?”

“글쎄, 보통 작은 가게를 그렇게 부르긴 하지. 왜?”

“오늘 이런 일이 있었는데….”


사정을 들은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쌍둥이 슈퍼라고 불러.”

“그럼 구멍가게는 안 좋은 말인 거야?”


내가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물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의 나는 내심 ‘구멍가게’라는 단어가 꽤 멋있다고 생각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공간과 위태롭게 흔들리는 알전구, 군데군데 뽀얗게 먼지가 쌓인 나무 선반은 멋있지 않았다. 하지만 ‘구멍가게’라는 단어는 어딘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 굴을 연상시켰다.


은근히 좋아해 왔던 단어가 가게 주인아저씨를 속상하게 할 수도 있는 안 좋은 단어였다니…. ‘달동네’가 일종의 멸칭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만큼이나 아쉬웠다.


어른들의 언어 감각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달동네란 말은 ‘달’이란 단어가 들어가서 예쁘고, ‘구멍가게’는 토끼 굴 같아서 멋있는데, 둘 다 안 좋은 말이라니 나 참!


그렇지만 쌍둥이 슈퍼 아저씨가 순간 지어 보인 서운하고 서글픈 표정을 다시 보고 싶진 않아서, 그 뒤부터는 구멍가게라는 말을 쓰지 않았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구멍가게라는 말이 좋다. 아저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과는 별개로 그렇다.


구멍가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은 귀엽고도 동화적인 이름이지 않나? 나중에 내가 작은 가게를 열게 되면 상호명을 구멍가게라고 짓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소개하는 거다.


내 안의 깊은 구멍 속으로 쏙 들어오세요. 크진 않지만 마음껏 구경하세요. 눈에 띄는 물건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면, 오래된 거 아니냐고 불평하지 마시고 조금 싼 값에 사 가세요. 여기는 구멍가게니까요.


서운하지도 서글프지도 않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사장님이 되면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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