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컵떡볶이 가게

by 이가령

“너 컵떡볶이 먹어 봤어?”

초등학교 1학년, 친구가 나를 신세계로 이끌었다. 학교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 골목으로 살짝 들어가면 보이는 컵떡볶이 가게를 소개한 것이다.

가게는 아주 작았고 천장도 낮았다. 먹고 갈 수 있는 테이블은 딱 하나뿐이었고, 그마저도 아주머니 사장님의 짐을 놓는 자리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떡볶이판 앞에 서자마자 콧등을 치는 고추장 냄새가 너무나 달짝지근했다.

사장님은 떡볶이 판을 휘휘 저으며 물었다.

“뭐 줘?”
“컵떡볶이 두 개요! 튀김은 김말이로 할게요.”

사장님이 묻기도 전에 튀김까지 척척 주문하는 친구가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친구는 ‘특별히 사 줄게’라면서 내 몫의 컵떡볶이를 계산해 주기까지 했다. (고맙다, 현지야!)

사장님은 먼저 종이컵 두 개를 꺼내고 김말이를 하나씩 담았다. 가위로 김말이를 썩뚝 자른 뒤, 그 위에 국자로 떡볶이를 듬뿍 퍼담아 줬다. 우리는 두 손으로 컵떡볶이를 받았다.

떡볶이는 전혀 맵지 않고 달달했다. 무엇보다도 500원짜리 컵떡볶이에 포함된 튀김 하나가 아주 사치스럽고 맛났다.

맛있게 먹는 날 보고 친구가 또 멋지게 설명했다.

“야, 거기 떡꼬치도 맛있어. 그건 300원이야. 용돈 부족하면 떡꼬치 사 먹으면 돼.”
“진짜? 나중에 먹어 봐야지.“

그날 나는 김말이에서 터져나온 당면 하나까지 싹싹 긁어 먹으며 집으로 향했다. 학교 끝나면 늘 집으로 바로 돌아가는 바른생활 어린이였던 이가령의 삶에, 한 컵의 달짝지근함이 생겨난 것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나는 그 떡볶이 가게의 단골로 지냈다. 용돈이 좀 남으면 500원짜리 컵떡볶이를 사 먹고, 돈이 모자라면 300원짜리 떡꼬치를 먹으면서. 컵떡볶이 튀김은 항상 김말이였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뜸해졌다. 내가 떡볶이 가게를 다시 찾아간 건 고등학생 때였다.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그리워서…는 당연히 아니고, 그냥 집이 그 근처로 다시 이사를 한 덕분이었다.

’와, 여기 아직도 있네.‘

등교하기 위해 집을 나서다가, 셔터를 반쯤 내리고 청소 중인 사장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장님은 나를 까맣게 잊으셨겠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반짝였다. 그러다 문득 시간이 의식됐다.

’지금 새벽 아니야?‘

당시 나는 집에서 먼 고등학교를 다녔기에 6시 20분이면 버스를 타러 나가야 했다. 그러니까 사장님은 그 시간에 가게에 나와서, 물을 쫘악쫘악 뿌려 가며 바닥을 청소하고, 싸악싸악 수세미질 소리가 나도록 떡볶이 판을 닦고 있는 거였다.

’오늘만 그런 건가?‘

처음엔 그렇게 지나쳤지만, 그날만이 아니었다. 내가 등교할 때면 떡볶이집도 항상 불을 밝히고 있었다. 어차피 하교하는 학생들이 주 고객일 텐데 왜 그렇게 일찍부터 청소를 시작하시는 건지 의아하면서도, 누군가의 성실하고 깨끗한 아침을 지나 등교하는 길이 참 좋았다.



초등학생 때는 맛있다고만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는 ‘어떻게 매일 저러시지, 대단하다.’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서른이 넘은 지금 그 새벽의 풍경을 돌아보면 새삼 존경스럽다.

10년 넘게 제자리를 지키면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여섯 시면 바닥에 물을 뿌리고 떡볶이판을 수세미질하며 아침을 시작하다니….


하기 싫은 날, 힘들어서 도저히 못하겠는 날도 많았을 텐데 그분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흑석동이 재개발되면서 그 떡볶이 가게도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새벽마다 셔터를 반쯤 올리고 청소를 시작하던 떡볶이 가게가 불을 밝히고 있다. 매일의 삶이 귀찮고 지루할 때, 그 앞에 서서 청소하는 소리를 듣고는 한다.

쫘악쫘악.
싸악싸악.
하는, 그 소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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