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선이는 공부를 잘했다. 머리는 자를 대고 자른 것 같은 단정한 단발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데도 키가 크고 늘씬했다. 어른처럼 말을 조용조용 차분하게 했다.
그렇듯 희선이는 어느 모로 보나 모범생이었다. 얼마나 모범생이었냐면,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 내 머리채를 뜯을 때도 한마디도 없이 물러나 바닥만 보고 있었다.
“야, 너 그때 왜 째려봤냐?”
별로 친하지 않았던, 같은 반 친구의 질문에서 시작된 다툼이었다. 그 친구는 수업이 끝난 후 학교 뒤 자연학습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도 알아주는 모범생이었지만, 자존심도 하늘을 찔렀다. 절대 내빼지 않겠다고 작심한 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아 젠장, 자존심 챙길 게 아니었다. 나는 혼자고 그들은 다섯 명이었다. 희선이도 다섯 명 중 한 명 자리를 차지하고 바닥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이 일에 끼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때 왜 째려봤냐고. 너 우리한테 불만 있냐?”
그 뒤로 무슨 유치한 말싸움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확히 기억하는 건, 무리의 대장 격인 친구가 학습장 책상 위로 뛰어 올라가 날 내려다보며 따져 물었다는 것이다. 자존심 빼면 시체였던 나도 지지 않고 맞은편 책상으로 뛰어올라 기세를 올렸다.
“야 됐고.”
말싸움이 지지부진 길어지자, 누군가 중재를 시도했다.
“깔끔하게 머리카락 잡고 끝내자.”
정정당당한 친구들이었다. 나와 대장, 1대 1 싸움을 붙여 줬다. 서로 머리채를 잡고, 셋을 세면 시작하라고 했다.
‘이게 뭐야.’
난 어안이 벙벙했다. 드라마 같은 거 보면 불시에 시작하지 않나?
그럭저럭 머리채를 잡아 놓고도 진짜 잡아당겨도 되는 건지 아닌지 감이 안 왔다. 내 등을 밀어준 것은, ‘셋’을 세자마자 공격을 시작한 상대방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웃기지만 그땐 둘 다 이판사판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애들끼리 웬 스포츠 경기하듯이 머리채 싸움을 하다니. 난 절대 울거나 지지 않을 작정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야, 야, 됐어. 그만해.”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자 지켜보던 애들이 심판처럼 상황을 중지시켰다. 나는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며 적군 모두를 차례차례 노려봤다.
반에서 내 이미지는 조용한 모범생이었다. 애들은 내가 울음이라도 터뜨릴 줄 알았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 내가 기세를 꺾지 않자, 예상 시나리오와 다른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희선이는 그때도 날 보지 않았다.
“다음엔 째려보지 마라.”
경고를 남긴 애들이 우르르 자리를 떴다. 뭐야, 이 허무한 결말은…? “한 판 더 할래?”라고 물어야 하나 고민 중이었던 난 허탈해졌다.
아무렇지 않았던 건 절대 아니었다. 애들이 사라지자마자, 다리에 힘이 쫙 풀려서 의자에 주저앉았다. 한 10분 정도를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런 것에 비하면 쥐어뜯긴 머리는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영원히 앉아 있을 순 없었다. 가방을 챙기고 터덜터덜 교문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교문 앞에서 뜻밖의 누군가를 만났다.
“어어, 가령아.”
모르는 할머니였다.
“…누구세요?”
“너 가령이지. 우리 희선이랑 같은 반. 반장이잖어.”
할머니는 학부모 참여 수업에 왔다가 날 보셨다고 했다. 늘씬하고 예쁜 희선이와는 달리, 할머니는 나보다도 키가 작으셨다. 방금까지 희선이가 속한 무리와 머리채 싸움을 벌이고 온 나는, 도대체 무슨 표정으로 희선이네 할머니 얼굴을 봐야 할지 몰랐다.
“희선이 봤나? 집에를 안 와서 내가 걱정이 되어 놔갖고.”
“…모르겠, 어요.”
목소리가 떨렸다. 애들과 말다툼을 할 때도, 머리채를 뜯길 때도, 혼자 남았을 때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갑자기 흐르려고 했다. 우리 엄마 앞도 아닌 희선이네 할머니 앞에서.
내가 갑자기 울자 할머니 표정이 변했다. 할머니는 내 팔을 잡고서는 곧바로 이렇게 물으셨다.
“희선이랑 싸웠나? 희선이가 니 괴롭히드나.”
지금도 놀랍다. 대체 어떻게 아신 거지? 희선이 이름은 꺼내지도 않고, 그냥 모르겠다고 하면서 울기만 했는데.
완전히 당황한 나는 그냥 울기만 했다. 그러자 희선이네 할머니가 어쩔 줄 모르면서 내 팔을 쓰다듬었다.
“미안해. 미안해. 희선이가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랑 살아서 그런다.”
우리 엄마도 그렇고 희선이네 할머니도 그렇고, 대체 당시의 어른들은 왜 그렇게 엄마 없고 아빠 없는 것에 집착했을까…. 그런 말을 듣는 나도 아빠 없이 엄마랑만 사는 애였다.
그래도 위로해 주시려는 마음만은 전해졌다. 나는 눈물을 닦으면서 고개를 젓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날 다시 붙잡았다.
“우리 희선이 너무 미워하지 마라. 응?”
네, 네, 울음에 먹힌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나는 학교 근처를 벗어났다. 그러고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울었다.
애들하고 싸워서가 아니라 희선이네 할머니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희선이를 대신해 변명해 준 것이나, 내게 희선이를 미워하지 말라고 부탁한 게, 이유도 모르는 채로 너무너무 슬펐다.
지금 돌아보면 유치하고 웃긴 싸움이었다. 그런데 그때 만났던 희선이네 할머니 모습은, 그분이 내게 하신 말씀은, 지금 돌아봐도 유치하지도 웃기지도 않다.
엄마 아빠 없어서 저런단 말을 들으면 어쩌나, 염려하면서 손녀를 돌보셨을까. 손녀 귀가가 늦어지면 학교까지 오실 만큼 애지중지하면서 기르셨을까. 그런 할머니를 위해서 희선이는 착한 모범생으로 지냈던 것일까.
흑석동은 정말 사연 많은 동네였다. 많이 어렸는데도 나는 그 사연들이 하나하나 슬펐다. 다 내 것 같아서, 또 어떤 면에서는 실제로 나와 비슷하기도 해서. 머리채를 쥐어뜯긴 날조차 그랬다.
어느새 추석 연휴다. 희선이가 할머니와 잘 살고 있기를 빈다. 송편 많이 먹고 할머니랑 같이 달도 보기를. 난 워낙 머리숱이 많아서 한 번 쥐어뜯긴 것 가지곤 아무렇지도 않았고, 집에 돌아가서 동생한테 “나 오늘 5대 1로 이겼다.”고 허풍도 제법 떨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