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동네도 나를 사랑해 주었네

by 이가령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들은 이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 집들이 모두 밀린 자리에는, ‘20억 밑으로는 내놓지도 않는다’는 고가의 ‘국민 평수’ 아파트가 우뚝 서 있다.


거대한 자본의 일이니 내가 뭘 어쩔 수는 없다. 게다가 헌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어다 파는 일은 대한민국을 오래도록 지탱해 온 ‘부동산 불패의 논리’ 아닌가.


그런데도 아주 가끔, 그 집들을 보러 갈 수 없다는 사실이 황당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이 브런치북, <가난한 동네 출신인데요>을 펴내고 기억 속에서라도 옛날의 흑석동을 차근차근 복원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열 편의 글이 쌓였다. 마지막 글을 쓰면서 나는 스스로를 향해 새삼 묻는다. 많고 많은 이야기 중 왜 하필 흑석동 이야기가 쓰고 싶었는지 말이다.


아마도 나는 그리웠던 것이리라, 사라져 버린 고향이.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 이웃하며 살았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사람은 언제 고향을 떠올릴까? 아마도 도망치고 싶을 때. 고달픈 현실을 벗어나, 다락방에서 모기를 쫓으며 만화책을 보던 유년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오늘 겪은 괴로운 일들이, 만화책을 보다 깜빡 낮잠 잔 어린 나의 꿈이었으면 싶을 때.


나 역시 현재가 외롭고 힘들 때 내 마음속 가난한 동네, 흑석동을 자주 떠올렸다.


가난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겨울마다 보일러가 터지고, 장마철이면 반지하 방으로 빗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가난은 조금도 낭만적이지 않았다. 옷 가게에서 갖고 싶은 옷을 손때 묻도록 만지작거리다가, 갖고 싶은 옷이 없다며 돌아서던 날의 부끄러움은 여전히 내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


그럼에도 내가 힘든 마음을 흑석동의 추억에 기대는 것은, 열 편의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인데, 그 동네에서 받은 많고 많은 사랑 때문이다.


혼자 낑낑거리며 오르막을 오르던 내 짐을 선뜻 들어 주던 옆집 오빠의 든든함.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온종일 동네를 쏘다니던 정민이, 정석이의 웃음소리.


바나나킥 하나 슬쩍 주고 가시던 은혜가게 할머니의 주름진 손등.


미처 글에 담지 못한 친구들, 이웃 어른들.


담장 너머의 목련 꽃잎들, 학교 가는 길에 그늘을 드리워 주던 플라타너스들, 엄마를 기다리다 올려다본 하늘에 가득하던 별님들.


많은 사람이, 또 사람 아닌 많은 것들이 흑석동에 있었고, 그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사랑을 내게 주었다. 그곳에서 받은 사랑은, 어쩌면 가난이 내 안에 남겼을지도 모르는 깊고 검은 구덩이를 채워 주거나 최소한 덮어 주었다.


이 책은 그들에게 보내는 열 통의 답장이다. 지금은 멀어지고 사라져 내 마음을 전할 수 없는 모두에게 돌려주고 싶은 사랑하는 마음이다.


흑석동에 살던 내 친구들, 이웃들, 나무 한 그루까지도 모두 함께 나를 길러 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내 가족의 장녀임과 동시에 이제는 사라져 버린 가난한 동네의 장녀(!)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사라진 땅의 장녀로서 말하자면, 나의 가난했던 고향은 그리 구석구석 남루하지만은 않았다. 세상이 나에게만 모진 것 같은 날, ‘에이, 왜 그래. 모질지만은 않았잖아.’라며 마음을 기대러 갈 만큼은 따뜻했었다.


그 따뜻함이 앞으로도 나를 지켜 주기를. 그리고 지금까지 이 글을 읽어 준 사람의 마음에도 작은 모닥불 같은 온기를 전해 주기를. 가난한 모닥불이라도, 따뜻하기는 충분히 따뜻하니까.


그러면 사랑했던 내 친구들아, 고마웠던 어른들,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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