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이, 정석이 형제는 우연찮게도 나와 내 동생과 나이가 똑같았다. 정민이는 나와 동갑이었고, 정석이는 남동생과 동갑이었단 뜻이다.
형제와 남매. 우리 넷은 같은 선교원에 다녔고, 초등학생 때는 몇 번인가 같은 반도 되어서, 자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쏘다녔다.
“우리 강아지 기른다!”
하루는 정민이가 학교에서 날 보자마자 냅다 자랑했다. 언제나 강아지를 사랑했던 나는 질투심에 화르르 불타올랐다. 강아지 기르는 걸 엄마 아빠가 허락해 줬다니….
그러다가 떠올랐다. 참, 정민이네는 할머니랑 살지. 당시 흑석동에서 그런 사연은 사연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별 느낌 없이 생각을 정정했다. 강아지 기르는 걸 할머니가 허락해 줬다니 부럽다고.
어쨌거나 나랑 남동생은 강아지를 보러 정민이, 정석이네 집에 갔다. 어른이 없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강아지가 뛰어왔다.
“헉!”
정민이가 자랑한 강아지는 무려 시베리안 허스키였다. 솔직히 ‘강아지’라기엔 너무 컸다. 그 강아지가 꼬리를 치며 뒷다리로 번쩍 일어났을 때, 앞발이 내 양 어깨에 턱 올라왔으니 말이다.
큰이모네 집에서 보곤 했던 재그(믹스견)나 뽀미(치와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에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웃으며 헥헥거리는 시베리안 허스키의 이빨이 너무 날카로워 보였다. 아니 강아지라며. 귀여운 강아지라며…!
무서워하는 티가 났던 모양이다. 다가온 정민이가 팔을 쑥 뻗어서 강아지를 살짝 밀었다. 그러고선 나와 강아지 사이에 서서, 제법 묵직한 척하는 목소리로 단호하게 명령했다.
“하지 마.”
똑똑한 강아지는 꼬리를 치며 앉았다. 정민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강아지를 앉혔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말로 표현하지 않은 두려움을 알아채고 행동해 줬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니 강아지가 별로 무섭지 않았다. 정민이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영영 기르는 게 아니라 누가 잠깐 맡겨서 그 동안에만 봐 주는 거라고 했다. 강아지의 남다른 사이즈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던 난, 걔를 오래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냥 아쉬웠다.
시간이 흐르고, 강아지는 떠나가고, 나와 정민이 정석이 형제도 멀어졌다. 반이 갈라지기도 했고, 나도 여자인 친구들과 더 재밌게 어울리기 시작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길에서 싸우는 정민이 정석이 형제를 목격했다.
“이 XX놈아!”
정민이가 크게 외치면서, 도대체 어디서 난 건지 모를 쇠막대를 휘둘렀다. ‘쇠막대’라고 하니까 위험하게 들리지만 그냥 울며불며 하는 어설픈 칼싸움에 가까웠다.
“왜, 이 XX놈아!”
형제는 소리치는 건지 통곡하는 건지 분간할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쇠막대를 챙챙 부딪쳤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무래도 인사할 타이밍은 아니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엄마와 나란히 누워서 잠을 청하다가 문득 아까 본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야광별이 총총 뜬 천장을 보면서 별 생각 없이 떠들었다.
“엄마, 나 아까 저 앞에서 정민이랑 정석이가 싸우는 거 봤다?”
“그랬어?”
“응. 막 쇠파이프 같은 거 들고 싸우고 있었어.”
“에휴.”
…‘에휴.’라니. 무슨 뜻이지?
“정민이랑 정석이가 참 착한데 애들이 조금 거칠어.”
“그런가?”
“엄마 사랑을 받았으면 달랐을 텐데….”
나는 엄마랑 같이 깔깔 웃으면서 붙였던 별들을 빤히 보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가? 정민이랑 정석이한테 엄마가 없어서 그렇게 싸운 거라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목소리가 강하게 대답했다.
‘아니야! 그래서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정민이와 정석이 형제를 대신해 무작정 억울해했다. 속으로나마 항변도 했다.
‘걔네한테 엄마가 없어서, 엄마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런 게 아니야. 그냥 길에서 싸웠는데 우연찮게 옆에 쇠막대가 있었을 뿐이야. 걔네는 그걸로 서로를 때리지도 않았어. 걔네는 착한 애들이야. 정민이는 내가 강아지 무서워하는 걸 알아차리고 강아지를 밀어내 주기도 했단 말이야!’
나는 그날 본 장면을 엄마에게 말한 걸 후회했다. 엄마는 좋은 사람이었고, 이웃들에게 친절했고, 정민이랑 정석이 형제에게 언제나 잘해줬다. 그러나 동시에 (아마 우리 집도 별거 혹은 이혼 가정이라 그랬겠지만) 형제의 행동을 자주 ‘부모의 부재’와 엮어 해석했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그게 막연히 억울하고 서운했었다.
사람들은 한 사람의 성품과 가정환경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연관 짓는다. 그리고 그런 인식은, 소위 ‘정상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꼬리표가 된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알기에, 나는 남의 가정환경이나 성장 배경을 운운하는 말들을 듣기조차 꺼린다.
정민이, 정석이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는 모르겠다. 바라건대, 어린 날처럼 타인의 무서움을 눈치 채고 선뜻 도와주는 멋진 형제들로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인생의 우연이 허락한다면 우리는 또 한 번 만나서 삶의 모습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을 기다리면서 나도 어릴 적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멋진 모습으로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