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리 여성스럽지가 못할까?

by 이가령

“우리 가령이는 왜 이렇게 여성스럽지가 못할까?”


흑석동의 가파른 경사로였다. 그곳에서 남동생과 신나게 오르락내리락 뜀박질하던 내 걸음이 우뚝 멈췄다. 엄마를 돌아봤지만, 엄마는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뭐지…. 나 지금 혼난 건가?


지금이었다면 “뭐래?”하고 마저 뛰놀았을 것이다. 아니면 엄마한테, ‘여성스럽다는 게 대체 뭔데?’하고 되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여덟 살이었고, 엄마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는 착한 딸이어서, 엄마 옆에 나란히 서서 발끝으로 사뿐사뿐 발끝으로 길을 내려갔다. 애꿎은 남동생만 놀이 상대를 뺏겼다.


넘쳐오르는 에너지를 억누른 채 엄마 옆에서 보조를 맞춰, ‘여자답게’ 걸으려고 사뿐대는 내 발끝을 낯설게 바라보던 그날.


앞뒤 모르는 채 억울했다. 무엇인지 모를 것에 배신당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건 이상해. 나는 걸으면서 생각했지만, 엄마가 힘들어할까 봐 다시 뛰지는 않았다.


나는 아직도 흑석동의 가파른 경사를, 그리고 그곳에서 뛰는 대신 예쁘장하게 걸어야 했던 내 두 발을 기억한다.



엄마는 딸, 아들을 가려 기르는 편이 아니었다. 없는 형편에도 모든 음식은 나와 남동생의 입에 정확히 똑같은 개수로 들어갔다. 내게 뭘 하나 사 주면 동생에게도 하나 사 줬고,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행동에는 분명 의도가 있었다. 딸과 아들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여자와 남자가 유별하다고 하는 사회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도. 엄마는 평상시에도 그런 말을 종종 했고, 나는 별 의식 없이 그런 말들을 들어 왔었다.


그런 엄마가 그날은 왜 내게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했을까?


엄마에게 물은 적은 없다. 아주 사소하게 지나간 순간이기에 엄마가 기억은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답을 들을 수 없기에 혼자서 실타래처럼 엉킨 의문을 들었다 놨다 했다.


함께 사는 애인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곧바로 엄마 말을 들은 어린 날 신기해했다. 애인은 물었다.


“왜 엄마 말대로 예쁘게 걸었어? 그냥 계속 뛰어도 됐을 텐데.”

“그러면 엄마가 힘들 거 아니야.”


아하, 이거다! 대답과 동시에 머릿속에 느낌표가 떴다.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말을 한 엄마를 돌아봤을 때, 어린 내 눈에도 엄마는 힘들어 보였다.


말 끝에 한숨이 섞여 있었고, 학원 교재가 가득 든 가방은 한쪽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낮은 굽이 있는 구두는 흑석동의 가혹한 오르막 내리막을 다니기엔 너무나 부실해서, 엄마의 걸음은 늘 약간 기우뚱거렸다.


아마 그날 엄마는 피곤했을 것이다. 여덟 살, 여섯 살 남매가 알 수 없는 어떤 힘듦이 있었겠지. 조용히 가고 싶었는데 나와 동생이 장난을 치며 주위를 정신사납게 뛰어다니니, 나라도 가만히 있어 줬으면 하는 마음에 손쉬운 핑계를 댄 거 아닐까.


‘여성스럽지가 못하다’고.


그 말은 ‘지금 엄마 피곤하니까 조용히 가자.’의 왜곡된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렸고, 기운이 넘쳤다. 무거운 짐을 들었을 때가 아니면 오르막이 힘들 것도 없었다. 어떨 때는 체력을 시험한답시고 오르막을 얼마나 뛰어 올라갈 수 있는지 자체적으로 실험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애를 둘이나 낳고, 나이 먹어 가며, 출산 후유증으로 골반이 뒤틀려 한쪽 다리가 짧아지기까지 한 엄마에게 오르막은 놀이터가 아니었을 것이다. 힘들었을 테고, 어려웠을 테다.


그렇게 나는 흑석동의 오르막을 떠올리며 내 모습을 잠시 지우고, 그 자리에 젊고 지친 엄마의 모습을 놓아본다. 기억 속으로 들어가 기우뚱거리며 오르막을 오르는 엄마 곁에서 말하고 싶다.


“엄마. 그날 엄마가 피곤해서 그랬다는 거 알아.

그리고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말이 나한테 너무 영향을 미쳤을까 봐 걱정하지 마.

난 여성스럽지도, 남성스럽지도 않은 그냥 나로서 잘 살고 있어.”


그런 다음, 전혀 ‘여성스럽지’ 않은 힘으로 엄마의 등을 힘 있게 밀어 줄 것이다.

keyword
이전 03화그때 그 오빠를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