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줌마는 나쁜 아줌마야

우리 엄마 욕했단 말이야!

by 이가령

“가령아, 아이스크림 사러 중앙슈퍼 가자.”

“나 중앙슈퍼는 안 가.”

“왜? 바로 앞이잖아.”


초등학교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의 물음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마음에서는 차마 내놓을 수 없는 대답이 울컥거렸다.


‘거기 아줌마가 우리 엄마 욕했단 말이야!’




우리 집은 꽤나 유명했다. 좋은 일로 유명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가난한 동네에서 좋은 일로 유명해지는 집은 없다.


우리 집이 유명했던 것은, 언젠가부터 엄마와 별거하기 시작한 아빠가 주기적으로 부린 난동 때문이었다. 아빠는 평상시엔 죽은 사람처럼 소식이 없다가, 만취한 날이면 불쑥불쑥 집에 나타나 잠긴 현관문을 발로 뻥뻥 찼다. 그러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인터넷에 적기 민망한 욕설)!”

“(인터넷에 적기 민망한 또 다른 욕설!)”


경찰이 가정폭력에 개입하지 않던 야만의 시대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아빠와 맞담배를 피우며 웃는 것을 창문으로 지켜본 엄마는, 그때부터 신고를 포기하고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다가 온 동네 사람이 다 깨어날 때쯤 되면 버티지 못하고 문을 열어주곤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서 30초면 갈 수 있는 중앙슈퍼에 들어갔는데, 늘 카운터를 지키는 아줌마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있는 일이었기에 나는 안쪽으로 들어가서 과자를 골랐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

“뭐가 있긴 있으니까 가령이네 아빠가 그렇게 난리를 치는 거 아니야.”


어른들 소리였다. 중앙슈퍼 아줌마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다른 것보다도 가령이, 하고 들린 내 이름이 귀에 꽂혔다. 나는 오징어땅콩을 든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학원 강사라고 맨날 늦게 들어오고. 누구 만나고 오는지 어떻게 알아?”

“애들은 집에 둘만 달랑 놓고서는.”

“1동 살 때는 무슨 소문 있었는지 알아?”


알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이상 듣다가 나가면 서로 너무나 민망해질 것 같았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게는 우리 집에 대한 소문을 찧고 빻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보단 그런 게 다 중요했다.


나는 오징어땅콩을 들고 카운터로 나갔다. 중앙슈퍼 아줌마와 눈이 딱 마주쳤다. 다 큰 어른이 나를 보고 그런 표정, 그러니까 당황하고 놀라고 민망한 표정을 지은 건 처음이었다.


“가령이 있는 줄 몰랐네!”

“네. 안녕히 계세요.”


나는 계산을 마치고 인사까지 깍듯하게 하고 나왔다. 기분 나쁜 티를 내면 우리 집을 더 욕할 것 같았다. 마음 가득 가시가 섰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 아줌마는 나쁜 아줌마야.’


이렇게 중앙슈퍼 아줌마는 내 마음에서 나쁜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절대 중앙슈퍼에 가지 않았고, 엄마가 심부름을 시켜도 10분 이상 걸어갔다 와야 하는 다른 가게에 갔다. 등하교할 때 중앙슈퍼 앞을 지나쳐야 했는데, 그때도 아줌마와 실수로라도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장난기 많던 남동생이 사고를 쳤다. 가파른 오르막 위로 네발자전거를 끌고 올라가 롤러코스터처럼 타고 내려오다가,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곡예 선수처럼 데굴데굴 구르며 넘어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남동생은 곡예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스팔트 바닥에 두 무릎이 모두 갈려 뼈가 드러날 만큼 다쳤다.


엄마가 몇 번이나 하지 말라고 했던 위험한 놀이라 나도 조마조마 지켜보던 차였다. 남동생이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바닥에 엎어져 으앙 울음을 놓았을 때, 나는 너무 놀라서 도리어 꼼짝하지 못했다.


“아이고, 강준아!”


가장 먼저 뛰어나온 사람은 중앙슈퍼 아줌마였다. 남동생이 넘어진 자리가 중앙슈퍼 바로 앞이었기 때문이다. 아줌마는 엉엉 우는 남동생을 일으켜 세워서 바닥에 앉혔다. 그러면서 나한테, 빨리 가서 가게 전화로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했다.


다음 일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가 학원 수업을 멈추고 달려왔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후부터 나는 중앙슈퍼를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줌마는 여전히 우리 엄마를 욕한 나쁜 사람이었다. 카운터에서 다른 아줌마들이랑 같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고, 가령이 아빠가 그러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하면서 웃었다. 그렇지만 남동생이 다쳤을 때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마음속 간극을 어쩌지 못했고, 아줌마와 마주칠 때마다 혼란스러워졌다.


지금은 아줌마를 이해한다. 아줌마 역시 힘들었을 것이다. 아줌마에게는 내 또래 애들이 둘 있었고, 남편은 어디서 뭘 하는지 동네 사람들 중 누구도 몰랐다. 그러니까 혼자 슈퍼를 하며 생계를 꾸리던 중에, 잠시 짬이 나서 남 얘기를 시시콜콜 늘어놓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겠지….


그때 내가 미워해야 할지 이해해야 할지 몰랐던 중앙슈퍼 아줌마는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궁금하다. 잘 살고 계시기를.


덧붙여… 나는 아줌마가 내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어린 나이에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중앙슈퍼에 가지 않은 뒤에도 아줌마는 종종 가게 앞을 쓸다가 하교하는 내게 말을 붙이곤 했다. 그때는 적당히 웅얼거리고 지나가면서 ‘저래놓고 우리 엄마 욕할 거잖아!’라고 가시를 세웠지만, 만약 지금 다시 길거리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본다면, 반갑게 인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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