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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퐁 Apr 10. 2023

우주가 많은 방

7.

밍밍과 도하는 부쩍 바빠졌다. 

그동안 쌓아 온 인테리어 실력으로 우주다방을 재정비하고, 같은 건물 일 층에는 ‘우주다반사’라는 이름의 인테리어 사무실도 차렸다. 나도 함께 나가 청소도 하고 가구도 옮기며 엄연한 일꾼 노릇을 했다. 호수도 모처럼 활기찬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며 일을 거들었다. 

알고 보니 호수는 나와 나이가 같았다. 이랑 마을에 유일하게 하나 있던 중학교에 다녔지만 폐교되면서 홈스쿨링으로 공부한다고 했다. 

“호수야, 우리 하루 좀 데리고 놀아 줄래?”

밍밍 말에 따르면 나는 돌봄이 필요한 취약한 심각한 학교부적응 청소년이라나.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호수가 웃음을 참느라 애쓰는 게 빤히 보였다.

“나랑 도서관 갈래?”

호수가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밍밍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나는 밍밍을 한 번 흘겨본 다음 호수와 함께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랑 마을에 있는 유일한 도서관은 언덕 위에 있었다.

“돌은 잘 있어?”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었는지 호수가 불쑥 물었다.

“아, 응.”

돌은 내 창가에 고이 놓여 있었다. 처음 만났던 날 돌에 대한 비밀이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던 호수가 떠올랐다. 

“궁금하지?”

나는 대답 대신 호수를 바라봤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돌아가지 않는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말하고 싶으면 말해도 좋고.”

아주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 했던 말을,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었던 말을 이제 호수에게 하고 있었다. 

나는 도리어 호수에게 물었다.

“너는 왜 안 물어봐?”

“뭘?”

“그냥. 우리 가족 말이야. 평범하진 않잖아.”

“…….”

입을 다문 채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호수가 천천히 말했다.

“하루야. 모든 가족이 너희 가족처럼 화목하지는 않아.”

호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럼 넌 내가 부러워?”

“글쎄. 그렇다기보단……. 남들이 보기에 평범해 보인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란 거야. 물론 너보다 못한 날 보며 위안을 얻으라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나는 늘 마음 한편에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을 간직해 왔던 것 같다. 남들처럼 평범한 가족을 갖지 못해서. 

“내가 좋아하는 웹툰에 그런 구절이 나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도 속은 곪아 있는 것보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서로 사랑하고 행복한 게 더 좋은 길일 거야’*라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언덕길로 접어들자 길이 부쩍 어두워졌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오르막길이라 자동차가 내려오면 한 줄로 걸어야 했다. 길 양옆으로는 울창한 나무가 자라고 있어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도서관은 휴관일이라 불이 꺼져 있었다. 

“쉬는 날이네.”

“쉬는 날이라 온 건데?”

호수 같은 아이는 처음 봤다. 이해하기 힘든데 그게 그냥 좋았다. 호수와 함께 있으면 삶이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졌다.

호수는 도서관 출입구 옆에 있는 반납함으로 다가갔다. 

“잘 봐.”

호수는 들고 있던 천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반납함 구멍에 책을 넣자 퉁 하고 책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너도 해 볼래?”

호수가 책 한 권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나는 책을 받아 들고 반납함 구멍에 넣었다. 퉁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이랑 마을엔 아주 오래전부터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가 존재했다고 정복순 할머니가 말해 줬어. 마을 몇 군데에 통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우주다방이고, 또 하나가 바로 이 반납함이라는 거야. 여기 있는 통로는 굉장히 좁아서 작고 가벼운 물건만 겨우 통과할 수 있지만 그래도 꽤 정확하게 오고 간다고.”

“통과한다니? 좀 전에 책 떨어지는 소리가 난 거 너도 들었잖아.”

호수는 책 한 권을 더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규칙이 있거든. 오직 세 번째에 보낸 물건만 통과할 수 있다. 자, 넣어 봐.”

나는 반납함 구멍으로 천천히 책을 넣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퉁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방금 내가 살던 우주에 소식을 전했어. 내게 소중한 사람이 아직 거기 있거든.”

호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 웹툰 <무능력자>(비둘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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