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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퐁 Apr 09. 2023

우주가 많은 방

5.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대문이 굳게 잠겨 있고 집안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밍밍! 도하!”

나는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 높여 외쳤다. 아무리 두드려도 캄캄한 집은 그대로였다. 밍밍과 도하가 나만 홀로 남겨두고 어디론가 멀리 가 버린 것 같았다. 그 순간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루야!”

밍밍과 도하가 집 앞으로 걸어왔다.

“자고 있는 거 아니었어? 왜 여기 있어?”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터져 버렸다.

“하루야, 이리 와.”

도하가 나를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떠나 버린 줄 알았다고. 나만 두고.”

나는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너만 두고 가긴 어딜 가. 절대로 안 가니까 걱정하지 마.”

도하가 그렇게 말하자 어딘가 깊이 묻혀 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우주다방으로 향하는 계단. 나는 그곳을 그날 처음 본 게 아니었다. 아주 어릴 적에 도하의 품에 안겨 그 계단을 내려간 적이 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조차 어렵던 기억이 갑자기 생생해졌다.  

   

계단을 모두 내려가면 고풍스러운 나무 조각이 새겨진 육중한 문이 나타난다. 문이 열리자 신비로운 빛이 쏟아지듯 밀어닥친다. 나는 눈이 부셔 실눈을 뜬다.

내 시야에는 지금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도하의 얼굴이 가득 차 있다. 나는 도하 품에 안겨 있고, 밍밍은 도하 옆에 꼭 붙어 서 있다. 밍밍이 도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묻는다.

“얼마나 멀리서 왔는데?”

“까마득히 멀리서. 네가 있는 우주를 찾아오느라 그렇게 힘들었나 봐.”

도하 너머로 푸르스름한 연기처럼 아른거리는 둥그런 원이 보인다. 한쪽 발이 원을 통과해 불쑥 나타난다. 다른 한쪽 발도, 나머지 몸도, 누군가의 얼굴도 이어서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에 익숙해져 있다. 

그들은 다른 우주에서 온다는 걸.


“말해 줘. 우리 이 마을에 처음 온 게 아니지?”

밍밍과 도하의 눈이 마주쳤다. 둘 다 내가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게 틀림없었다. 밍밍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네가 세 살이 될 때까지 여기 살았어.”

말하자면, 이랑 마을은 내 고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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