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제이 이모와 레카 이모, 비오 삼촌은 집들이 선물이라며 휴지며 세제를 잔뜩 들고 왔다.
“안녕하세요!”
“하루야, 잘 있었어?”
세 사람은 나를 부둥켜안으며 반가워했다. 곧이어 눈시울이 촉촉해진 건 말할 것도 없다. 밍밍과 도하의 오래된 친구들인 세 사람은 내가 태어나고, 걸음마를 하고, 말을 하고, 학교에 다니고, 키가 커지고 자라는 모습을 다 같이 지켜봐 준 어른들이기도 했다. 나는 컴퓨터라면 질색하는 밍밍과 도하가 이모랑 삼촌 들을 인터넷 모임에서 만났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또 그런다. 왜 너희는 하루만 보면 그렇게 눈물바람이냐?”
밍밍이 핀잔을 주자 제이 이모가 눈물을 찍어내며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몰라. 하루만 보면 눈물이 나. 그 핏덩어리 같던 그 꼬맹이가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밍밍이랑 도하가 애 키울 줄도 모르고 쩔쩔 매고 있을 때 내가 얼마나 많이 도와줬니? 하루 얘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똥을 만져도 냄새도 안 나더라니까, 글쎄?”
“이모, 쫌!”
열다섯 살이나 먹고 갓난아기 때 쌌던 똥에 대해 듣는 일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누가 들으면 네가 하루 다 키워 준 줄 알겠다. 얘 얼굴 빨개졌다. 그만 좀 해!”
레카 이모가 막아준 덕분에 벌게졌던 내 얼굴이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밍밍과 도하는 아침 일찍 항구 어시장에서 사 온 꽃게를 찌고 회를 내놓았다. 내가 쌀을 씻고 밥을 안치는 걸 보며 비오 삼촌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오, 제법인데? 그렇지. 쌀뜨물은 버리지 말고 매운탕에 조금 넣자.”
비오 삼촌은 내가 좋아하는 마카롱도 잔뜩 챙겨 왔다.
“여긴 마카롱 파는 데 없지? 냉동실에 넣어 놓고 아껴 먹어.”
“비오는 그걸 또 사 왔어? 어우, 난 너무 달아서 별로더라.”
밍밍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도 한참 없었다.
“전에도 내가 아껴 둔 거 밍밍이 홀랑 먹었잖아. 이건 비오 삼촌이 나 준 거니까 한 개도 먹으면 안 돼!”
나는 마카롱 상자를 품에 안고 밍밍을 흘겨보았다.
“나는? 나 마카롱 좋아하는데.”
도하가 실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도하는 한 개 줄게. 딱 하나만 골라.”
“어머, 얘 좀 봐? 너 나랑 도하랑 차별하는 거야? 얘가 이런다니까? 나 지금 차별받는 거 맞지? 서럽다, 서러워!”
밍밍이 과장되게 말하는 통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우리 건배하자, 건배!”
매운탕까지 먹고 난 다음 어른들은 맥주를, 나는 사이다를 따라 잔을 채웠다.
“만난 지 이십 년이 넘도록 눈에서 콩깍지가 안 떨어지는 밍밍과 도하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존재만으로도 기적인 우리 하루를 위하여! 아, 그리고 또 뭐가 있냐. 암튼 모든 걸 위하여! 몽땅 위하여!”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제이 이모의 건배사가 이어졌다.
“위하여!”
모처럼 화기애애한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괜찮아.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난 괜찮아.”
그날밤 취한 밍밍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래전 인디 밴드를 하던 시절에 만들었다는 노래였다. 음반으로 나온 적도 없는 이름 없는 노래. 도하도 낮은음으로 따라 불렀다. 밍밍의 1호 팬이 그 노래를 잊을 리 없었다. 두 사람의 하모니는 오랜만에 들어도 제법 잘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