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Q137.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을 펼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적어 줘.
새로 올라온 질문에 답하기 위해 침대 맡에 놓인 책을 잡아 아무렇게나 펼쳤다. 그 페이지에 있는 글을 소리 내어 읽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즘 아빠들은
아빠가 아닌 사람이 아빠이거나,
아빠는 아빠인데 다른 집에 살거나,
아빠가 있기는 하지만 어디 사는지 모르거나,
시험관 아빠라 누가 우리 아빠인지 모르거나,
시험관 아빠가 누구인지 알지만, 엄마의 남편을 아빠라고 불러야 해서 시험관 아빠를 아빠라고 부를 수 없다거나,
시험관 아빠가 엄마의 남편은 아니지만 시험관 아빠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거나,
아빠가 누구고 어디 사는지 알지만 찾아가면 안 된다거나,
아빠가 남자를 좋아해서 졸지에 아빠만 둘이라거나,
엄마가 레즈비언이라서 여자 아빠만 둘인 경우이다.
다들 자기 아빠는 어디에 속하는지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나는 책 표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호수가 빌려 준 책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책에 나와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려고 누웠지만 눈만 말똥말똥해질 뿐 하나도 졸리지 않았다. 나는 내친김에 호수가 준 책을 읽기로 했다. 폴레케, 엄마는 담임선생님과 사랑에 빠지고 아빠는 마약에 중독된 아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의 이야기이지만 나는 그 아이의 마음을 왠지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책을 읽고 있으면 가슴 한편이 묵직하게 아픈 느낌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위이잉- 위이이잉-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여보세요?”
“자고 있었어?”
호수였다.
“응. 너는?”
“미안.”
“아냐, 괜찮아.”
“지금 좀 나올 수 있어?”
나는 눈을 비비고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두 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응.”
“그래, 우주다방에서 기다릴게.”
나는 서둘러 점퍼를 입었다. 우산을 써도 소용없을 만큼 세찬 비가 내리 꽂히는 밤이었다. 나는 쉬지 않고 달려 이랑 해변으로 향했다. 이랑 해변은 어두컴컴했다. 비와 어둠이 바다를 삼켜 버린 것 같은 밤이었다. 슈퍼마켓도 문이 잠긴 채 불이 꺼져 있었다. 나는 우주다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참에 섰다. 한 계단씩 천천히 걸어내려 갔다. 우주다방 문에 채워져 있던 커다란 자물쇠가 보이지 않았다.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문틈으로 푸른 연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우주다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행자는 어디에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그 문장이었다. 푸른 연기 속에 네온 등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도하와 밍밍이 나를 발견하고 놀란 눈을 했다.
“제가 불렀어요.”
호수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뭐 하고 있어?”
“쉿.”
도하가 나를 툭 치며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나는 엄숙한 분위기에 입을 다물었다.
“오늘이 그날이래.”
밍밍이 내게 속삭였다.
* 『엄청나게 시끄러운 폴레케 이야기』(휘스 카이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