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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고양이 요양원

시니어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며


친밀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존재들

우리 집에는 18세와 17세 고양이 두 마리가 함께 산다. 둘 다 고령(高齡)이다. 고양이의 나이는 무조건 고령?? 아내가 막내 초등학교 1학년때 유기된 길냥이 새끼를 데려왔다.

얼마 후 또 한 마리를 그리고 다른 녀석을 데려와서 한 때 세 마리가 되었다. 그중 맨 나중에 온 한 마리는 처제에게 분양했는데 지난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페로는 수놈, 지쿠는 암놈이다. 우리 집에 입양된 피가 섞이지 않은 오누이이다.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 봐 별로 친하지 않다. 이름은 둘 다 내가 작명했다. 페로라는 이름은 당시 내가 잠시 다녔던 회사 이름에서 앞부분 두 글자를 따왔다. 지쿠는 딸이 어렸을 때 딸기공주라는 만화영화를 좋아했는데 공주의 친구인 치쿠타쿠봉의 앞 글자를 따서 부르고 있다.


아내가 급식과 화장실 청소는 물론 손톱과 목욕시키기 등을 도맡아 한다. 아내는 단지 주변의 길냥이 일곱 마리를 돌보는 캣맘이기도 하다. 페로는 나이 탓에 활동량이 부쩍 줄었다. 사람으로 보면 거의 90살이다. 이 녀석은 하루 종일 주로 침대 이불 아래에서 가만히 앉아있다가 배가 고프다든지 용변을 볼 때든지 심심하든지 하면 기어 나온다.


며칠 전아내가 열흘간 아들 2호가 워홀하고 있는 호주 시드니로 여행을 떠나면서 이들을 돌보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급식과 물갈아주기 그리고 화장실 청소다.이들은 그냥 하면 되는 단순작업이다. 비대면은 문제없는데 대면이 문제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데 녀석들은 나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가급적 서로 안 부딪히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도 그들이 내게 신체접촉을 허용하는 것은 입맞춤이다. 녀석들이 긴장을 풀고있을때 입을 디밀고 미간사이를 부비부비할 수 있는 것이 녀석들이 내게 주는 유일한 호사이다. 잘은 몰라도 코털과 냄새로 상대의 유전자와 상태를 체크하는 본성이 있는 것 같다.


치쿠는 겁쟁이다. 내가 보이면 도망가기 바쁘다. 가끔 음식을 먹고 토하는 것 외에는 얌전한 녀석이다. 전형적인 I 형이다. 하지만 자기도 남자라고 공격적이고 고집쟁이인 페로는 강제급수를 해야 해서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강제급수란 이 녀석에게 강제적으로 물을 먹이는 것인데 녀석이 소변을 볼 때마다 통증을 호소하기에 내려진 비상조치이다. 페로는 물을 안 먹이면 밤에 잠도 못 자고 고통을 호소하기에 강제로 입을 벌리고 튜브가 달린 물병의 튜브로 물을 먹여야 한다. 위험을 동반한 극한작업이다.


강제급수는 하루에 두 세 차례 시행하는데 긴장감이 감돈다. 먼저 만약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장갑을 낀다. 녀석이 침대의 이불속에 있는지 확인하고는 “페로야 물먹자”다정한 목소리로 부른다. 벌써 낌새를 채고 이불속에서 양양거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이불을 걷고 녀석의 턱주걱을 왼손으로 잡고는 입을 벌린다. 녀석이 하이소프라노의 목소리를 내며 온몸으로 거부한다. 목소리가 더 커지면서 앞발로 공격모드를 취한다. 격렬한 저항은 위험천만이다. 나는 오른손으로 잡고 있는 튜브를 빠른 동작으로 서너 번 펌핑해서 물을 먹이고 얼른 이불을 덮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쉰다.


녀석들과는 18년을 한 집에 살아도 친하지 않다. 녀석을 한번 안아보는 것이 로망이지만 언감생심이다. 녀석과의 스킨십은 아내 품에 있을 때 옆에서 몰래 목과 귀를 잠깐 동안 쓰다듬는 것이다. 내가 하는지 눈치채기라도 하면 이내 양양거리며 긴장모드로 바뀐다.


치크는 그런 일이 없지만 페로가 내게 먼저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내가 자려고 누웠을 때 머리맡에 와서 내 머리냄새를 맡으면서 자기 머리로 내 머리를 부비부비하는 것이다. 누운 것을 무장해제로 해석하는 것 같다. 아무튼 상남자 마초요 목석인 페로도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로맨스냥으로 변신하는 시간이다.

오늘 밤에도 내가 침대에 누우면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내 머리에 자기 머리를 비벼댈 것이다.

정말 기분이 묘하다. 그래서 묘(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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