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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고양이다

맛동산 도장 : 스키를 넘어서 도장까지

작고 하찮은 회색 털뭉치 고양이

by 이라하

마루에 갈색 흔적이 있었다. 이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뭐지?"


그 수상쩍은 흔적은 고양이 응가와 대단히 유사한 냄새가 났다.


우리 집 고양이 두 마리는 응가 냄새가 다르다. 첫째 응가는 퀘퀘한 벽돌향을(응가로 만들어 구운 벽돌이랄까), 둘째는 인분을 농축한 것처럼 짙고 풍부한 향기를 풍긴다. 이것은 첫째 응가같기도 하고 둘째 응가같기도 했다.


고양이 두 마리를 추적해 엉덩이를 확인해 보았는데 확신할 수가 없었다.


첫째의 엉덩이 아래 분홍 둔덕에도 검은 점이 다닥다닥, 둘째의 분홍빛 그곳에는 황토색 얼룩이 듬뿍 묻어 있었다. 결국 두 마리를 데리고 Y와 함께 동물 병원을 향했다.


원래 매일 봐주시는 선생님이 있었는데 진료 중이라, 옆의 진료실로 안내받았다.

두 번째 보는 나이든 수의사가 쾌활하게 말했다.


"항문낭 때문에 그럴 수 있어요. 항문낭을 짜드릴게요."

"저희가 저번 주에 유튜브 보고 항문낭 짜기를 해 봤는데 소용이 없었어요."

"어디 보죠."


먼저 둘째 제르부터 시작했다. 수의사는 고양이를 붙잡고 엉덩이 주변을 꾹 눌렀다.

고양이는 내숭이라곤 전부 떨쳐버린 고양이스러운 비명을 끼야아아아아아아옹 질러댔다.


"...제르가 이렇게 울 수도 있네요?"


첫째 나미는 냐옹거리며 울지만 (우리가 흔히 듣는 그 고양이 소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제르는 그렇게 울지 않았다. 마치 자기가 고양이가 아닌 것처럼 평소 삐루삐루 하고 희한하게 울었다. 모르고 들으면 새소리처럼 들린다. 평소 제르의 내숭어린 소리만 들어왔던 Y가 놀라워했다.


"얘 정말 놀라거나 당황하면 고양이처럼 울어. 어디서 뭘 배웠는지 모르겠는데 삐루삐루 울면 인간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나봐."

"이 조그만 머리통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도통 모르겠네."


두 마리 고양이 모두 항문낭 짜기를 매우 싫어했다. 하지만 항문낭을 짠 이후


"이제 똥스키 타는 일이 없어질 거예요."

"똥스키요?"

"고양이들이 대변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단단한 대변이 항문낭을 눌러 줘서 안의 내액이 분비되어야 해요. 그런데 제르는 변이 무르니까, 그걸 눌러 주질 못한 거지. 항문낭 안에 있는게 답답하니까 엉덩이로 바닥을 문지르고 하다가 남은 대변이 묻고 하는 걸 똥스키라고 합니다. 보호자님이 이번에 겪으신 게 똥스키예요."

"아하."


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장염, 설사 등 각종 질환을 염려했던 나는 걱정을 한숨 덜고 안심했다.


병원 다녀온 덕에 맛있는 것을 먹은 두 고양이는 자유롭게 방을 돌아다녔다. 안심한 듯 꼬리를 한껏 치켜올리고 도도하게 걷는 모습이 귀여웠다.




하지만 두 시간 후.


촤악. 촤악. 촤아악.


열심히 모래를 덮는 소리가 들렸다. 두부모래는 고양이가 볼일을 보고 덮을 때마다 파도치는 것처럼 유쾌한 소리가 난다. 두 마리 중 누가 볼일을 보았나 싶어 궁금해 나가 보았다.


빈대떡처럼 넓적한 맛동산을 푸지게 생산한 제르는 폴짝 하고 화장실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바닥에 엉덩이를 댔다. 콕! 하고 궁디로 바닥을 찍고서 바로 일어났다.


바닥에는 동그란 응가 자욱이 도장처럼 남았고,
범묘는 유유히 작은 방으로 사라졌다.


"...이제 스키를 타는게 아니라 도장을 찍는데?"

너무 당황스럽고 웃겼다. 내가 배를 잡고 웃고 있는데 옆에서 Y가 크게 외쳤다.

"아, 저 엉덩이 좀 닦읍시다! 잡아요, 언니!"


Y와 함께 고양이 엉덩이를 물티슈로 닦아내고, 바닥을 소독하고 나서야 집안은 다시 평화로워졌다.


맘껏 응가 도장을 찍어도 좋으니 건강하기만 하렴.


이라하는 저스툰에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를 연재하는 만화가입니다. 5월 31일 단행본 1권이 발매되었습니다.

고양이다! 매거진은 이라하, 세모입, 최은경 세 명이 함께 하는 고양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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