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신부 (1)

-『한국소설』 2025년 4월 통권 309호

by 이란

눈의 신부


장성희 (이란)


눈의 순수는 파괴에 닿아 있는 아름다움이다. 백색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동시에 어느 곳으로든 추락하여 부서질 수 있는 내재성을 지니고 있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축복은 벚꽃의 낙화처럼 추락을 향해 눈부시게 흩날린다. 소복이 쌓인 눈이 온세상을 덮을 때, 세상은 순수의 세계로 보이지만, 그 이면의 바닥은 눈을 집어삼키고 타락시킨다. 그것은 고요한 전쟁이다. 보석처럼 빛나는 눈의 입자가 흙탕물로 바뀌는 순간까지 치열한 부딪힘이 이어진다. 눈이 내리는 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새하얀 눈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그것은 분명 낙화를 닮아 있다. 손을 뻗으면 하얀 보석이 차갑게 녹아 내린다. 가만히 길을 걸으면 흩날리는 눈의 입자가 전신을 휘감는다. 부서지기보다는 상대를 부서뜨리려는 듯. 눈의 밑바닥에서 눈을 보고 있으면, 곧 사그라질 불꽃을 보는 듯 하다.



A는 커튼을 닫았다. 만 18세가 되는 12월 25일에 부모님은 그의 곁에 없었다. 아버지는 해외 출장 중이고 어머니는 따뜻한 나라로 여행 중이었다. 그래도 아들의 생일을 기억했던 부모님은 생일 날에 맞춰 차를 선물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면 어디든 달릴 수 있다. A는 따뜻한 얼그레이를 마시며 책상 앞에 앉았다. 풀다 만 수학문제를 마주했다. 입시를 마친 고등학생에게 크리스마스란 수험생활 끝의 자유이다. 하지만 A는 여전히 공부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이러한 생활에 크게 불만은 없었다. 만약 불만이 있었다면 다른 아이들처럼 집 밖에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남들과 똑같이 살면 남들과 같은 결과만을 손에 넣을 수 있을 뿐이야.”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 귓가를 스쳤다. 남과 다르게 살아서 얻은 그 결과물로 무엇을 할지 A는 고민한 적이 없다. 다만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수학책을 내려 놓은 A는 플라톤의 <국가>를 집어 들고 거실로 향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이는 거실에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소파에 누워 플라톤의 <국가>를 읽기 시작했다. 제7권에서,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의 대화는 동굴에 관한 비유에 닿아 있었다. 교육을 통해 진리에 닿은 자는 혼이 위를 향한다. 하지만 그들은 필연적으로 아래로 내려와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배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에는 책상 앞에 있어야 해. 그것이 책에 대한 예의야.” 어디에선가 아버지의 말씀이 들리는 듯 했다. 하지만 A는 소파에서 철학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일종의 휴식이었다. 크리스마스에 그 정도의 여지는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의 시선도 없는 지금 이곳에서. 거실 창 밖으로 새까만 밤을 뚫고 하얀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였다.



‘완벽한 인간이 존재하는가?’ A는 플라톤의 견해에 의문이 생겼다.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이라는 허구의 두 인물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플라톤은 세상을 이끌 이상적인 인간상을 보이고자 한다. 플라톤에게 교육은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이상적인 인간을 키우는 도구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인간을 걸러내는 필터링 시스템으로서의 교육이다. 무지라는 동굴의 어둠 속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위로 올라가 진리를 아는 사람이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그의 견해도 피상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진리라는 것이 과연 닿을 수 있는 가치인가? 어떠한 사람이 진리를 눈으로 확인했을까?’ A는 플라톤을 향해 묻고 싶었다. 플라톤이 제시하는 인간상이 단지 이상향이라면, 그러한 인간은 애초에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현실에 구현될 수 없는 가치를 이야기 하는 것의 의미는 상당히 이론적이다. 즉, 실용성이 없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



만 19세가 되는 12월 25일에 A는 파리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국제공항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예과 1학년의 끝을 지나치면 자유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에 편승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대학생활 첫 해의 끝자락에서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누구도 찾지 않을 아름다운 도피처로서 파리는 적당했다. “의대 졸업할 때까지 여자는 안돼.” 아버지는 까다롭고 엄격했다. 하지만 자신이 정해준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자유로웠다. 그 틀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A는 페라리의 속도를 좀 더 올렸다. 흩날리는 눈이 차 창 밖으로 부딪혔다. 와이퍼는 쌓이는 눈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속도로 움직였다. 눈은 와이퍼의 속도와 상관 없이 닿아서 쌓였다가 창가로 밀려났다. 부모님은 하와이로 가신다고 했다. 어머니는 추운 계절을 싫어했다. 그토록 싫어하는 겨울에 아이를 낳기 위해 한국에 머물렀지만, 그후 매해 겨울 어머니는 따뜻한 나라로 떠났다.



주차장으로 향하던 A는 흩날리는 눈 속에서 그녀를 놓쳤다. 브레이크를 밟고 차 밖으로 나왔을 때 그녀 주변에는 가방에서 쏟아져 흩어진 소지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제 잘못이에요.” 그녀는 자기 탓으로 돌렸다.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면세점 직원으로 보였다. “딴 생각을 하느라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그럴 수도 있다. 대개의 사람들이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기 때문이다. ”눈 때문이에요. 시야가 흐려져서.” A는 그녀를 향해 다독이듯 말했다. 핸드폰, 지갑, 립스틱, 그리고 책. A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집어 들었다. 책장이 눈에 젖어 들고 있었다. 그녀는 책을 받아 다시 가방 안에 넣었다. 얇고 가벼운 책은 베이지색 숄더백 안에 그대로 들어갔다. “철학책을 읽어요?”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으셨나요?” A는 그녀를, 그녀는 A를 보았다. 누가 누구의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할까. “여행은 취소되었어요.” 정적을 깨뜨리듯 A가 먼저 말했다.



A는 그녀를 데리고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그녀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A는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 앞에 그녀를 돌려 보낼 수 없었다. C. 29세. 병원의 접수 창구에서 그녀의 이름과 나이를 알게 되었다. “당신은 약속이 있었던 건 아닌가요?” A는 다소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남자친구와 약속이 있었어요. 그래서 면세점 일을 마치고, 그를 만나러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그만.” 오후 4시에서 5시를 향하던 시간에 A는 C를 만났다. 머뭇거리던 그녀는 핸드폰을 꺼냈다. “잠깐 전화를 할게요.” 그녀는 몸을 일으켜 코너로 향했다. 여행은 C 스스로 취소한 것이다. A는 C의 안위가 걱정된 것인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끌렸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환상은 단 한 단어로서 끝이 났다. 남자친구. C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A는 C에 관해 궁금했다. 병원에서 검진을 위해 대기하는 동안 A는 C의 연락처를 확인했다.



“토마토 파스타가 맛있어요. 이렇게 식사까지 사주시다니 너무나 감사해요. 제가 부주의해서 일어난 사고인데.” “눈 때문이에요. 특별한 문제가 없다니 다행이에요.” A는 마르게리타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아까 했던 질문에 답해주겠어요? 철학책을 읽나요?” “네. 제가 읽고 있는 책이에요.” 철학은 대개의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분야이다. 시각 이미지로 가득한 세상에서 책 자체가 그러하다. “<시학>은 모든 예술 분야를 아우르고 있어요. 예를 들어, 카타르시스는 예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줘요. 슬픈 영화를 보면서 울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힘을 얻을 수 있어요.“ “그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 질문은 제가 면세점 직원이기 때문에 하시는 건가요?” “아마도.” “사실 저는 소설가 지망생이에요.” “활자 예술은 사양길이에요.” “그러나 죽지 않을 거에요.” C는 처음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은 소설을 사랑하는군요.” A는 C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답을 회피한 채, C는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함박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종이의 질감을 아나요? 그 종이 위에 새겨진 활자의 감촉을 느껴본 적 있나요? 오직 책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감각이에요. 책장을 넘길 때, 하나의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소리. 그 소리를 따라 활자 속에서 하나의 세계가 펼쳐져요. 그 세계는 연극이나 영화처럼 표면화된 시각적 표현이 아니에요. 언어로서, 오직 독자의 감각에 번지는 이미지에요. 읽을 때마다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어요.” C의 눈은 확신으로 가득차 있었다. “당신은 예술의 존재 이유, 다시 말해 소설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고 있군요. 그렇죠?” A는 C의 이해를 바라는 듯 물었다. “그런지도 몰라요. 제 직감에 따른 확신을 다른 각도에서 재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굳이 종이책이 아니라도 소설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전자책, 오디오북이나 웹소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 소설을 옹호하고 있었다. 디너는 후식인 커피로 이어지고 있었다. 빛과 어둠 사이에 교차하듯 눈이 창문을 두드렸다.



“남자친구가 왔어요.” A는 C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결제를 마쳤다. 레스토랑 밖으로 나왔을 때,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다크 블루진에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프링팅된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에게서 가볍게 담배 냄새가 풍겼다. C는 A를 그에게 소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관심 없다는 듯이 그녀의 손을 잡아 끌어당겨 거리로 나섰다. ‘그는 화가에요.’ 남자친구와 문자를 하던 C에게 전해들은 말이었다. ‘철이 덜 든 남자와 사귀는군.’ A는 차갑게 웃었다. 레스토랑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검은색 쏘나타 안에는 다소 당황한 얼굴의 C가 A를 향해 미안한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차가 사라질 즈음, A의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고맙고 또 미안해요.’ ‘그녀 때문이 아니야. 저 남자 때문이야.’ A는 그날의 사고 원인을 그렇게 결론지었다. 분명 C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문자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A를 그리고 그의 차를 놓친 것이다. A는 밀려드는 확신에 손에 쥔 영수증을 구겼다.



A는 부산으로 향했다. 집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부산 어디든 숙소를 정하고 바다를 보고 싶었다. 깊은 밤은 두렵지 않았다. 엑셀을 밟을수록 속도는 올라가고 차체는 중력의 방향으로 수직 하강한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순간, 헤드라이트는 어둠을 뚫고 나아간다. 그 빛 속에서 눈은 부딪히고 사라졌다. 모든 것은 순간 속에 녹아들고 A는 그 순간의 점을 이은 선 위에서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속도가 더해질수록 엔진의 소리는 낮고 부드러워졌다. 목적지를 정하고 달리면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 갖고 싶은 사람도 그럴 수 있을까.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필요를 알아야 한다. 그녀는 무엇을 필요로 할까. 그는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가졌을까. 누군가의 손에 들린 물건을 소유하려 한다면 도둑으로 몰릴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 대해서 그런 원칙이 적용되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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