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2024년 4월 통권 297호 게재
장성희(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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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전에 은수가 준 목도리를 버리고 다시 건네 받은 은수의 일기장을 버렸다. 인간적인 도의 때문인지 대부분의 대학 동아리의 동기들은 은수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진혁의 결혼식장에는 오지 않았다. 간혹 전화를 하거나 축의금을 별도로 보내는 동기들이 있었다. ‘사랑 따위가 뭐라고.’ 진혁은 속으로 차갑게 뱉었다. 조건이 부서져서 사랑이 부서지는 경우도 현실에서는 흔하다. 그런데 은수는 순진한 얼굴로 살이 찌면 자신을 떠날 건지 묻는다. 혜진이 부잣집 딸이 아니었으면 은수를 떠나 결혼했겠느냐고 묻는다면, 진혁은 큰 고민 없이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의 영혼이 아닌 조건을 사랑하는 것은 선택이다.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결혼 서약서의 어느 오래된 구절처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상대방의 곁을 지키는 지고지순한 사랑은 꿈꾸는 이의 이상일 뿐 현실이 아니다. 그것이 반듯이 옳다고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야.’ 진혁은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감기였다. 매일 꾸는 악몽에 지쳐갈 때 즈음 온몸이 욱신거렸다. 진혁은 회사에 연차를 내고 쉬기로 했다. 침대를 오가다 잠이 들면 다시 같은 꿈이 반복되었다. 그 꿈은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보이기도 했다. 먹었던 스테이크의 굽기가 레어였다거나 아메리카노는 에티오피아였다던가 하는 식이었다. 거울에 귀신처럼 비친 은수의 얼굴이 슬퍼보이다가 공포스러워보이기도 했다. 바다 앞 낭떠러지는 달빛을 끌어안고 한없이 창백했다. 겨울바람의 찬기는 서슬이 퍼랬다. 정적에 휩싸인 겨울바다는 별빛 속에 은회색 거울을 닮았다. 낙하할 때의 속도가 은수의 전신을 휘감았다. 지나온 모든 시간들이 아득히 멀어져 갔다. 사랑했던 순간들 속에 꽃처럼 피어나다 배신감에 사로잡혀 죽어가는 감정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죽음의 순간, 눈을 떴다. 때로는 아침이었고 때로는 밤이었다. 눈을 뜨면 냉장고 앞으로 가서 무언가를 꺼내 먹었다. 퇴근한 혜진이 깨우면 그때 또 식사를 함께 했다. “미안해.” “뭐가?” “아파서.” “쓸데 없는 소리!” 혜진은 진혁의 죄책감이 그를 옭아매고 있다고 생각했다.
교통사고가 있었다. 진혁은 감기라는 사실도 잊고 병원으로 향했다. 유산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 같다. 하지만 어떠한 소리도 진혁에게는 유의미하게 들리지 않았다. 아직 뛰고 있는 아내 혜진의 심장소리만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아내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알고도 이해해준 그녀였다. 한없이 이기적이지만 자신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모든 것을 문제삼지 않았다. 혜진은 언제나 진혁의 편이었다. 혜진의 가족이 다녀갔다. 진혁의 가족도 찾아왔다. 진혁의 어머니는 은수를 원망했다. “그냥 다른 남자 만나 잘 살면 되지 어쩌면 그렇게 애가 독하다니.” “그만 하세요.” 어른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나쁜 일은 다른 나쁜 일과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식에게 관대하다. 며칠 동안 혜진은 혼수상태였다. 진혁은 그녀에게 더 이상 은수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이 싫었다.
눈을 뜬 혜진은 며칠을 울었다. 처음에는 아이를 잃어서 우는 듯 했다. 뱃속의 아기와 하나처럼 지내다가 잃고 나니 밀려드는 외로움 같았다. 서러워 보였다. 울고 있는 그녀를 끌어안고 며칠을 지내고 나니 혜진은 그제서야 곁에 있는 진혁을 바라보았다. 또 다른 눈물은 진혁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혜진에게 아이는 진혁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았다. 그 선물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이는 또 나으면 되.” 진혁은 혜진의 아버지처럼 똑같이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냉정한 의미를 지닌 것인지 진혁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은수로 인해 진혁이 그러했듯 혜진이 유산된 아이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살게 할 순 없었다. 그러한 악몽이 본질적으로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최악이 될 수 있음을 진혁은 알고 있었다. 시작은 조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관계는 상대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를 잃어도 돈을 잃어도 혜진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혜진이 진혁을 사랑하고 있음을 그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악몽 속에서 옛사랑의 그림자 속에서 진혁은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 거울은 진혁을 향해 스스로 누군인지를 도출하게 했다. 진혁은 자신의 이기심에 솔직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다. 완전한 것에 대한 사랑은 어쩌면 사랑이 아닐지 모른다. 그것은 존재한다고 믿고 싶은 환상일 것이다. 은수가 사랑한 것은 진혁이 아니라 진혁에 대한 은수의 환상일 것이다. 그 환상이 부서진 것은 진혁의 잘못이 컸지만, 세상에 완전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혜진의 조건이 매력적이었지만, 이제 진혁은 그녀가 하는 사랑을 보고 이끌린다. 혜진은 완전하지 않은 진혁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완전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진혁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은수가 했던 상대를 위한 사랑을 이제 진혁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이를 잃는 시련 가운데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닿게 된 것이다. “미안해.” 진혁은 자기도 모르게 또 사과를 하고 있었다. “왜?” 혜진이 물었다. “나 때문에 안 겪어도 될 일을 겪는 것 같아.” “당신 때문에 좋은 일도 많았는 걸. 나도 내가 나빴던 것 알아. 그래서 아이를 잃었나봐.” “바보, 네 탓이 아니야.” 진혁은 혜진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거울 속의 은수는 자신을 향해 말했다. ‘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너에게 고백하지 않았을 거야.’ 거울 밖의 은수가 거울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 사랑은 너를 망가뜨렸어.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어야 해.” 거울 속의 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수는 식탁에 앉아 해산물 파스타를 먹는다. 매콤한 토마토 소스와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흘렀다. 따뜻한 방 안으로 창 밖의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어왔다. 베란다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본다. 구름이 끼어선지 온통 까만 잿빛이다. 오히려 단지를 밝힌 가로등이 아름답게 거리를 비춘다. ‘그 불빛 아래 어딘가로 떨어진다면 이 그리움도 끝이 날까. 나는 너를 더 이상 찾지 않을까.’ 사랑이 집착이 되는 것은 감정이 변질되기 때문이다. 은수는 이 꿈 밖으로 나가기 위해 떨어져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 추락은 또 다른 꿈으로 이어진다. 죽음에서 또 죽음으로 꿈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진다.
다시 차가운 겨울바다 위 낭떠러지이다. 은수는 절벽에 서서 고요에 휩싸인 바다를 내려다본다. 맑은 달빛 아래 은회색 물결은 거울처럼 빛난다. 하지만 바다의 심연은 하늘처럼 아름답지 않다. 그 아래 차가운 물결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다. 싸늘한 겨울 바람이 뺨을 스친다. 두터운 외투도 목도리도 한기를 막을 수 없다. 은수는 목도리를 매만진다. 몇 년도 더 된 오래된 목도리이다. 눈처럼 하얀 목도리를 뜨고 싶었다. 그에 어울리는 남색 목도리는 바다를 닮았으면 했다. 짙은 바다의 심연은 진혁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원하는 것에 진심을 다했다. 그로 인한 고통도 잘 견뎌냈다. 상자 안에 담긴 채 그대로 보관된 목도리를 바라보다 은수는 진혁에게 자신이 목적지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은수의 바람은 진혁에게 닿지 못한다. 그런데 그는 왜 그때 은수에게 고백했을까. 은수는 문득 진혁을 사랑한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스쳐지나 가기에 그녀는 그에게 너무나 진지했던 것이다.
떨어지는 속도는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반짝이는 가로등 아래 차가운 바닥이든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부는 절벽 아래 바닷속이든 하강은 삶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그 끝에는 더 이상 질문이 없다. 그리움이나 후회도 없다. 끝이 오는 순간까지 순환은 반복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심장이 아파오는 이유를 은수는 알 것도 같았다. 그 고통이 죽음으로서 끝이 날 것도 알 수 있었다. “진혁 씨, 눈을 떠요.” 먼 곳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은수는 자신이 혼자임을 안다. 진혁은 이제 그녀 곁에 없다. 이 꿈이 끝나면 그리움도 끝난다. 사랑이란 반짝임을 붙잡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의 빛과 그림자를 끌어안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의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말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결국 깨어질 꿈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고통이 온전히 나의 것으로 체화되는 순간, 너는 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