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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Aug 22. 2019

아빠의 선전포고

제2의 인생을 응원하는 딸의 메시지

지난 토요일 엄마는 나에게 아빠를 부탁했다. 혹시 약속이 있을까 봐 며칠 전부터 이야길 해왔다. 언니네 가족도 모두 외출한 주말에 나는 아빠의 저녁 식사를 책임지기로 했다. 갑자기 떠나 일주일간 제주도를 다녀온 직후라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양심 있음)

아빠와 둘이 토요일 저녁에 밥상을 차려 앉아 먹을 생각을 하니 조금 어색했다. 엄마가 아빠 편에 지불고기를 보낼 테니 제육볶음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빠에게 제육볶음에 어울릴 막걸리를 사 오라고 전화를 했다. 상추와 막걸리를 사 오라는 전화에 아빠가 뜸을 들이더니 알겠다고 했다. 아빠는 주차할 곳이 마땅하지 않으면 절대로 차를 멈추지 않는 운전자다. 퇴근하고 오는 길에 장을 봐야 하면 동네 마트에 엄마를 내려주고그냥 가버리기도 하는 아빠였다. 우리 집은 무척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는데도 말이다.(내가 직접 막걸리와 상추를 사 오지 않고 아빠에게 부탁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아빠가 청상추 한 봉지와 막걸리 두 통을 사 왔다.

기왕 먹는 거 같이 기분 좋게 먹자는 맘으로 갓 지은 밥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도착 시간에 맞춰 밥을 지었다. 엄마가 아빠에게 들려 보낸 돼지불고기에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더해 제육볶음으로 변신을 시켰다. 엄마가 분명 고춧가루 한 수저만 넣으면 된다고 했는데 색과 맛이 영 아니었다. 평생 우리 집 장금이를 담당했던 감으로 왠지 고추장일 거 같아 한 수저 떠서 넣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제육볶음 색이 되었고 그 맛이 났다.(신기) 작은 텃밭에서 따온 청양고추와 아빠가 사 온 청상추를 깨끗하게 씻고, 아빠 된장과 내 쌈장을 작은 종지에 덜어 담았다. 생양파, 김치, 왕멸치볶음, 김치볶음, 호박볶음을 꺼내고 먹다 남은 엽기떡볶이까지 데워 한 상을 차렸다.

투박하지만 나의 정성이 듬뿍 담긴 저녁상

밥도 잘되고 제육볶음도 맛있다며 아빠가 칭찬을 했다. 왼손으로 상추에 밥, 고기, 청양고추, 쌈장 등을 얹어 쌈을 싸고 오른손으로 막걸리 잔을 짠하며 식사를 했다. 덕분에 아빠와 단둘이 먹는 저녁이었는데도 어색하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에 집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내가 오늘 아빠를 책임지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 것이 고마웠는지 아빠는 TV 채널 선택권을 나에게 주었다. 리모컨을 살며시 내 쪽으로 두는 행동을 통해 나는 알아차렸다. 아빠와 내가 보면서 적당히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법한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틀어두고 밥을 먹었다.

지난 여름 휴가에서 아빠는 가족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어쩌면 올해까지만 일을 하고 접어야 할 수도 있겠다고. 평생 해온 사업을 그만둔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을 알기에 가족 모두는 그 의견을 존중했다. 그리고 아빠는 만약 올해까지 한다면 추석 전에는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었다. 저녁을 먹다 아빠는 갑자기 "아무래도 진짜 올해까지만 해야겠어"라고 이야길 했다. 우리는 '아빠의 일'에 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오늘 같이 밥을 먹어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오늘 내가 아빠를 혼자 두고 밖에 나갔으면 아빠는 이 결정을 이야기할 타이밍을 잡기 위해 남모를 고민을 했을지도 모르니까.

아빠에게 왜 막걸리를 두 통 밖에 사 오지 않았냐고 핀잔을 주며 저녁상을 치웠다. 그리곤 방으로 쏙 들어가기가 그래서 거실에 이불을 펴달라고 했다. 각자 이불 하나씩을 차지하고 누워 TV 채널을 돌렸다. 나는 맥주 한 캔과 함께 아빠는 '찰떡쿠키'와 함께. 볼만한 프로그램이 마땅치 않아 IPTV로 '말모이'를 봤다. 나는 전에 봤던 것이어도 재밌게 영화를 보는데 옆에서 아빠가 자꾸 졸았다. 평소 일찍 잠을 자기도 하고 게다가 막걸리도 마셨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 속 유해진이 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감옥수에 여러 번 드나들며 중학생 아들과 어린 딸을 혼자서 키운다. 아빠도 젊은 나이에 혼자 서울에 올라와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그렇게 나를 키웠을 것이다. 물론 처음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그래 가장은 가족을 위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구나', '아빠도 그랬겠구나'라는 생각을 종종 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아빠가 평생 하던 일을 그만둔다니. 음이 복잡했다.


몇 년 전부터 아빠는 공들인 만큼의 수익이 나지 않아 골머리를 앓았다. 일요일 하루를 빼고 주 6일을 일해도 예전만큼의 수익이 나지 않았다. 공장 월세, 각종 공과금, 직원들 월급 등을 빼고 난 아빠 몫으로 돌아오는 돈이 점점 줄어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아껴보겠다는 마음으로 아빠가 직접 짐을 나르는 일까지 겸하면서 체력도 많이 달리던 상황이었다. 그러다 작년 가을에 큰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아빠는 운전 공포증(?)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직접 운전을 해서 물건을 납품해야 하니 얼마나 곤욕스러웠을까.


아빠가 올해까지만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나는 겁이 났다. 어떠한 수입도 없이 작가를 해보고 싶다고 꿈꾸고 있는 내가 당장 아빠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매일매일 지쳐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일을 그만두라는 말은 가족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아빠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 평생 일궈 온 일을 아빠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게 되어 안심이 된다.


평생 사장만 하던 아빠가 환갑이 넘어 다른 일을 한다면 그 또한 쉽지 않겠지만 아빠는 그래도 맘은 더 편할 것 같다고 했다. 그거면 되지 않을까? 하루하루 맘 편히 사는 것이 제일이지 뭐. 지난 주말 아빠는 나와의 식사 시간을 빌어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제는 아빠도 내려놓고 싶다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힘든 일이 있으면 집에서는 절대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술을 진탕 먹고 들어와 자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술김에 "아니 이런저런 삐리리 같은 상황 때문에 아주 진짜 속상해 죽겠다고!"라고 말하며 으앙 울어버린 적이 있다. 그때 엄마, 아빠는 무척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살다 보면 그 보다 더 한 일도 있고 그런 거니까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말아"라며 덤덤한 조언을 해줬다. 그리고 나는 그것만으로 평정심을 되찾았다.


아빠가 제2의 인생을 위한 새로운 출발을 하다 힘든 일이 있으면 집에 와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 지난 주말 낯설지만 본인의 힘든 점을 나에게 마구 털어놓던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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