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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Aug 29. 2019

오늘은 '주황의 나' 너로 정했다.

나만의 혼합색을 찾아서

자기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가진 한 친구가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통금 문제로 부모님과 잦은 다툼을 하던 때이다. 늦은 저녁 나도 친구도 부모님의 귀가 독촉 전화로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냥 배터리를 빼버리는 친구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배터리를 뺀다라는 개념이 이젠 아예 없지만..)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겸손한 친구였다. 자신이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 지 잘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의 행동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러던 친구가 언젠가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그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그 친구가 10년의 세월이 흘러 독립을 해 직접 요리를 해주었다. 스테이크, 야채 구이, 훈제연어 등 한 상에 와인잔 기울이며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친구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본래 모습대로 행동하지 않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색깔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다. 친구는 남들이 솔직하다고 하는 나보다 10배는 솔직한 투명한 아이였다. 내가 쓰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친구는 아이였는데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나다운 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뻔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대화를 하다 어쩌다 가지고 있던 와인 두 병을 모두 비워냈다.

세 병이었다. 기록의 힘은 위대하다.

비긴 어게인 시즌3가 시작했다.(시간이 꽤 지났다..) 새 시즌을 시작하며 그들은 삼성역에서 단체 버스킹을 했다. 박정현은 시즌 2에서 불러 폭발적 반응은 얻은 Adele의 'someone like you'를 부르겠다고 했다. 그리곤 인터뷰가 나왔는데 "나 스스로도 그 노래를 어색해하며 겪어보려고 하는 그 모습이 아무래도 좋게 비쳤던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평소 박정현 답지 않게 투박하게 노래를 불러낸 것이 참 좋았다.

그리고 그녀는 시즌2에서 즉흥적으로 했을 때와는 다르게 노래를 했다. 원래 그녀 스타일대로 불렀다. 사람들이 어떤 모습의 나를 좋아하는지 알지만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로 노래를 소화했다. 예술가로서 대중의 반응을 뛰어넘어 노래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철학(?)을 지켰던 것일까. 노래는 그때처럼 혹은 그때보다 더 좋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멋졌다.


내가 하는 무언가 들이 나의 색을 담지 못하면 힘들다. 나에게 다른 색을 입혀 행동하고 말하다 보면 그 불편함을 내 몸이 견뎌내지 못한다. 그런데 한 사람 안에는 다양한 색이 있다는 것이 종종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 색들의 비율과 조화를 적절히 이루어 낼 때 나만의 혼합색을 가지게 된다.

예민하고 까칠한 회색의 나, 다정하고 사교적인 주황의 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검정의 나 등 나는 여러 색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아직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의 색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어떤 색은 너무 짙어 옅게 만들 필요가 있고 또 어떤 색은 너무 흐려 짙게 만들 필요가 있다.

서른의 나와 친구는 나만의 혼합색을 만들기 위해 매일 끙끙 앓는다. 주황의 나와 회색의 나의 싸움에서 오늘은 누구의 편을 들어줄 것인지. 매번 고민하며 말이다. 고되지만 다가오는 수많은 일들에서 진정 '나다움'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씩 결정하다 보면 내 맘에 쏙 드는 나만의  혼합색이 만들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은 다정하고 사교적인 주황의 나의 편을 들어 친구와 함께 와인잔을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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