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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Sep 09. 2019

"내가 좀 재수가 없었나?"

나와의 화해

우연히 한 그림 작가의 글을 보게 되었다. 귀여운 그림체에 나이도 나와 같은 서른이었다. 한 편 두 편 보는데 대학 때 친했던 동기가 떠올랐다. '설마 OO인가?' 그런데 웬걸 조금 더 읽다 보니 지역도 같고 작가가 스스로 말하는 성격도 그 친구와 너무 비슷했다. 너무 반가웠다. 그래서 디엠을 보냈다.


"혹시 OO이야?? 우연히 봤는데 너인 거 같아서!! 반갑다!" 


아차 싶었다. 아니면 어쩌지? 그것도 반말로.. 다시 디엠을 보냈다.


"작가님 제가 흥분해서 혹시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그리곤 나머지 글들을 더 읽었는데 그 친구가 확실했다. 그러다 문득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처럼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고 지내다 갑자기 반갑다 연락을 해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내가 그 친구 입장이라면 좀 황당할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에 다시 디엠을 보냈다.(제발 그만 보내)


"내가 정신없이 보냈는데 연락 안 하고 지낸 지 너무 오래돼서 네가 이거 보고 황당할까 봐~ 그림체랑 너의 유머러스한 말투까지 너무 잘 어울리고 재밌다! 앞으로도 독자로 재미나게 볼게~ 잘 지내!"


그리고 나는 답장을 받지 못했다. 조금 기분이 상했다. 나는 아마도 그 디엠에 이런 답이 올 것으로 예상했나 보다.


"오! OO아! 반갑다! 너도 잘 지내지? 고마워!"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조카 둘을 보내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입구를 들어서는데 낯익은 사람과 마주했다.(사실은 스쳤다) 고등학교 동창 친구였다. 반가운 맘에 "어?" 하면서 눈짓을 하는데 친구가 고개를 획 돌려 지나갔다. 이럴 때 나는 내가 정말 소심하다고 느낀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 이어다. '못 봤나? 아닌데 눈 마주쳤는데.. 보긴 봤으나 인사는 굳이 안하고팠나? 아니 근데 왜? 동창끼리 오랜만에 보면 인사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 날 이후로 나는 수영장을 갈 때마다 그 친구를 마주칠까 봐 걱정(?)을 했다. 나는 이미 나 혼자 친구가 나를 피한 것으로 단정 지어버렸다. 친한 친구와 남자 친구에게 괜한 하소연도 했다.


"나는 둘 다 반가워서 그랬는데 그 친구들은 아니었나 봐. 아마도 뭐 내가 어릴 때 좀 재수가 없었보지 뭐.."


그들은 같은 말을 했다.


"디엠이 워낙 많이 와서 아예 안 봤을 수도 있지"


"모자 쓰고 있었다며 못 봤을 수도 있지~"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직감상 그런 게 아닌 거 같다고 단정 지으며 괜히 우울해했다.


오늘 아침도 조카 둘을 데려다주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저기 100m 앞에서 친구가 걸어왔다. 오늘은 모자도 쓰지 않았다. 정면으로 마주했다. 친구는 날보고 놀랐고 나는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완벽한 나의 오해였다. 밝고 깨끗한 웃음을 가진 친구였는데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웃으며 반가워했다. 신이 났다. 내가 재수탱이(?)가 아니라고 말해준 것 같았다. '그래 맞아 그럴 이유가 없지~ '라고 되뇌며 히죽거렸다.


나는 두 친구의 반응에 왜 내가 과거에 무언가를 잘못하거나 재수 없게 비칠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을까? 어릴 때의 나는 나의 의견을 명확하게 그래서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힘들어하며 곁을 떠난 친구들이 있다. '나를 오해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거야'라는 생각도 하지만 반대로 '나도 모르게 내가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소중했던 친구들을 떠나보내며 많이 아팠다. 그 과정에서 나 나름대로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를 '남에게 상처 주는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어제의 어느 날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비난한다면 그것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그저 미움받을 용기를 키워야 할 뿐.


그 시절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이라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약한 친구를 은근히 괴롭히는 친구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부당한 체벌을 하는 선생님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효리가 예전에 한 방송에서 나와서 정신과 검진을 받는 과정에서 깨달은 점을 이야길 했다.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과 화해를 한 것 같다'라고.

SBS '화신' 캡쳐 이미지

'이제는 뭐 신경 안 써~'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런 나'를 스스로 용서하지 못했다. '그런 나로 인해 관계가 망가진 것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은 앞으로도 꽤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래도 꼭 언젠가 '그런 나'를 따뜻하게 용서해주고 화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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