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나는 그렇다.
아침은 목이 까슬거려서 잘 먹지 않는다. 불편하게 밥을 먹거나 예민한 상태에서 밥을 먹으면 거의 100프로 체한다. 라면에도 찬 밥보다는 따뜻한 밥이 좋다. 국은 먹기 직전에 팔팔 끓여 뜨겁게. 볶음은 국물이 자작하게. 술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한다. 무언가를 결정할 땐 상의하기보단 통보한다. 아침잠이 많다. 늦은 저녁 술에 취해 들어와 라면을 끓여 먹어 엄마에게 혼이 난다.
아빠와 나는 그렇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 초등학교 저학년 아래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부분 그럴 수도 있지만 유독 그런 편이다.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는 기억이 있는데. 무언가 내가 잘못을 저질러 혼이 났다.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는데 거실에 있던 아빠가 말로 안 되겠다며 무서운 목소리로 날 불렀다. 울먹이며 아빠 앞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빠는 노랑색 도끼빗을 들고 나의 작은 양손 끝을 한 손으로 잡아 두드리듯 세 번 치면서 나에게 눈짓을 했다. 나도 눈짓을 했다.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 때 대대적인 커닝 소동이 일어났고 나도 동참했다. 커닝한 시험은 0점이 처리가 됐고 부반장 자격을 박탈당했다. 하필이면 학생지도부 선생님의 전화를 아빠가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려움에 떨며 집으로 향했다. 소파에 앉은 아빠는 낮은 목소리로 상황을 물었고 나는 고백했다. 대한민국을 한자로 쓰는 주관식 문제에 '한'이 기억이 나지 않아 앞자리 친구에게 물었다고. 아빠는 엄마에게 비밀로 할 테니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고 주의를 줬다. 그렇게 사건이 마무리가 되는 듯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 반장을 뽑는데 후보로 추천을 받았다. 새로 오신 담임 선생님은 작년에 벌어진 커닝 사건을 모르셨고 학부모 상담 날 엄마에게 반장선거 출마 포기 사실을 전했다. 그 날 저녁 엄마는 나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빠는 당황한 내게 눈짓을 보냈다. 나는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이제 반장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마치 전교 1등이 할 법한 대답을 했다. 이 사건은 어느 날 가족 모임에서 신이 난 내가 엄마에게 고백하기 전까지 아빠와 나만의 비밀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집에서 버스로 3~4 정거장 떨어진 학교를 다녔다. 아빠는 매일 차로 데려다주었다. 자영업을 하는 아빠였기에 가능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기억한다. 전 날 과음을 하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나를 데려다주던 아빠의 모습을. 3년을 차 타고 다니면서도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차에서 내릴 때 나는 "갔다 올게" 했고, 아빠는 "어 그래" 했다. 그나마 대화를 하는 날은 내가 아빠 차에 있는 동전을 털 때. 차에 타면 동전 박스의 버튼을 눌러 500원짜리 동전을 찾았다. "어? 4개나 있네? 가져간다?"라고 했고, 아빠는 "그냥 둬"라고 했지만 한 번도 뺏어 간 적은 없다.
지금도 종종 아빠는 말한다. "너는 내가 3년 내내 학교 데려다줬는데 나한테 잘해야 해~"라고. 도대체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냐고 톡 쏘아 말대답을 하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임은 분명하다.
자신을 꼭 닮아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막내딸. 그게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