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문제가 나라니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것 자체에 기뻤다.

by 이랑

대학교 2학년 나를 탐구하는 교양 수업을 들었다. 세 가지 질문을 가지고 한 학기 동안 고민하는 수업이었다. 보고서를 총장님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수업의 마무리였다. 2~30명의 학생 중 나만 발표를 하다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랬을까?



이런 원본도 있었다. 잘 버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큰 착각이었다.


어떤 사람이 바람직한 사람인지 ?

자기 삶을 이끌어 가는 데 있어서 자신만의 뜻을 세우고 그 뜻에 맞는 큰 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주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세상의 문제가 무엇인지 ?

세상의 문제는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의 말을 잘 들으면 착한 아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이 문제인 이유는 자신의 뜻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여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란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으로 부모님에게 조언을 얻으며 점차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도 결정하기 어렵다.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해 볼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책임감 없는 어른이 될 수도 있다. 비약적일 수 있지만 어느 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으면 삶에 회의를 느끼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애쓰다가 누구든 대학에 가버린다. 이는 큰 경제적 손실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없이 학교에 와 강의를 듣는다. 수강신청을 할 때는 아침 시간 과목은 피하고 점수를 따기 쉬운 과목 위주로 선정한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모여 놀고 밤늦게 들어간다. 그게 아니면 TV나 컴퓨터로 시간을 보낸다. 다음날도 비슷하다. 과제가 있지 않으면 공부는 하지 않고 휴대폰 일정에는 놀 계획만 가득찼다. 매 학기 초 진정한 대학생의 생활이 아니라고 자책한다. 이런 모습에 싫증을 느끼면서도 무언가 실행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내가 바로 '자기 뜻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상과 나는 많이 다르다. 나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의 본질이 채워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나의 삶의 여러 부분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고치고 싶다.



세상의 문제가 나라니. 많이 혼란스러웠나 보다. 그런 자신을 고백하려니 창피하고도 속상해 눈물이 날 법도 하다. 당시엔 그저 눈물을 흘린 것이 쪽팔리다고만 생각했는데. 기특하다. 아픈 마음속 생각을 파고드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대학 입시를 실패하고부터 나는 어떠한 것도 원하지 않았다. 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안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 직업 선호도 검사를 해 나온 몇 가지 중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아나운서, 기자, 작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눈여겨보는 것에 그쳤다.


이 수업을 통해 잠시 내려놓았던 나의 삶을 다시 챙기기 시작했고, 전공 수업을 들으며 어렵게 원하는 직업을 찾았다. 컨벤션 기획론.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것 자체에 기뻤다.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해 하루하루 답답하게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그 후로 나는 PCO(Professional Convention Organizer)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알아봤고 무급 실습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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