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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면 좋은 친구 같은 채널

by ri

꽤나 길었던 지난 설 연휴, 딱히 어딜 가거나 누굴 만나지도 않았는데 지루할 새 없이 시간이 흘렀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오랜만에 취향에 맞는 유튜브 채널을 발견해서였다.


물론 평소에도 챙겨보는 채널이 있고 새 영상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몇 분 전, 몇 시간 전에 영상이 올라오면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자리를 잡곤 한다. 그렇지만 약 4년간 꾸준히 업로드된 채널의 거의 모든 영상을 단 며칠 만에 본 건 개인적으로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집중해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스스로를 인지했을 때는 영상의 3분의 1 정도를 본 상태였다.


꼭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를 처음 접하고는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우고 모든 게임을 마스터했던 것 같이 말 그대로 도파민이 흘러넘쳤다. 그 이후 청소년기에 음악과 영화에 비슷하게 심취했던 때가 있었지만 성인이 된 후로는 뭔가에 푹 빠져있었던 날이 마땅히 떠오르지도 않는데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배고픔으로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고는 밥을 세팅한 뒤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내가 몇 주간 눈을 떼지 못하고 빠졌던 채널은 예능과 드라마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문상훈 님을 필두로 하는 빠더너스팀의 채널이다. 빠더너스 채널은 다양한 콘셉트로 기획된 영상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고 추천하는 건 극사실주의 오피스 코미디 장르의 원조격인 <홈비디오>와 이를 계승한 <해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홈비디오>와 <해인칭 관찰자 시점>은 오피스 물답게 빠더너스팀의 일터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주제는 주로 그들의 일터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나 타 브랜드와 함께하는 협업 프로젝트, 협찬받은 상품의 광고로 이루어진다.


각기 다른 개성과 성격을 가진 팀원들과 묵직한 존재감의 문상훈 님이 서로를 믿고 보완하며, 만들어 내는 케미가 돋보인다. 그것은 별 거 아닌 것에 왁자지껄 떠들다가 하루에 몇 번이고 무슨 일에든 가위, 바위, 보로 승패를 겨루다 아이들처럼 웃음을 터뜨리고는 비슷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어떤 끈끈한 유대감으로 묶인 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케미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언젠가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아무런 조건 없이 긍정적인 감정을 공유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순수하고 마냥 즐거웠던 한 때, 뭣도 모르는 아이일 때는 쉬웠으나 머리가 다 큰 어른이 되고 나서는 다시 느껴보기 어려운 한 때를 말이다.


영상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모먼트는 상대가 비협조적으로 나오거나 다소 무례한 개그를 던질 때 상훈 님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약간 경직된 채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새침하게 해인 pd나 다른 멤버를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려가는 부분이다. 이 장면은 야구에서 갑자기 투수와 감독이 경기를 중단하고 작전을 나누는 진지한 모습을 연상케 해서 더 웃기다.


한편 불려 나온 멤버는 그런 일이 이제 익숙한 듯 그의 뒤를 따라가 속사정을 들어주고 상한 마음을 풀어주려고 한다. 이때 멤버는 보통 상훈님에게 그럴듯한 위로와 해결방법을 말해주지만 가끔 콘셉트에 몰입해서 한 발 더 나가 뇌절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또 그 나름대로 유쾌하다. 또 그 타이밍이 워낙 절묘하고 멤버들의 연기력도 상훈님 못지않게 다들 선수들이 되어서 영상의 흐름을 끊지 않는다. 혹시 앞으로 보실 분들은 이 부분의 매력을 느껴주시길 바란다.


뭐니 뭐니 해도 이 팀의 주축은 문상훈 님이다. 그는 뛰어난 순발력과 창의력으로 어떤 상황도 재치 있게 모면한다. 게다가 남다른 감성으로 청춘의 채워지지 않는 몽글몽글한 낭만을 좇는 모습은 지난날 뭐 하나 손에 쥔 건 없었더라도 단지 꿈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뜨겁고 아련했던 청춘을 다시금 불러온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가 하는 말의 기저에는 불쾌함 없이 기분 좋은, 산뜻한 예의를 갖춘 유머가 깔려있어서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코미디를 즐길 수 있다. 코미디는 개인의 취향을 많이 탈 수밖에 없지만 미드 <더 오피스>를 좋아한다면 취향 저격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홈비디오>와 <해인칭 관찰자 시점> 모두 오피스물에 속하기도 하고 문상훈 님도 좋아하는 시리즈라고 해서 그런지 <더 오피스>와 겹치는 무드가 종종 있다.


그는 출중한 언변은 당연한 데다 음악에도 꽤나 조예가 깊어서 시시각각 바뀌는 그의 기분에 따라 다양한 음악을 소개해줘서 새로운 음악을 알아갈 수 있고 더불어 귀도 즐겁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그의 비주얼도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요새 말로는 너드남 스타일의 옷들을 입는 편이다. 깔끔하면서 포인트가 귀여운 캐주얼을 잘 입고, 그중에서도 보색 계열의 줄무늬 옷은 약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처럼 자주 입고 또 잘 소화해 낸다.


워낙 본인의 취향도 잘 알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어서 매번 달라지는 옷과 아이템을 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그런 자신의 장점과 팀원들의 미적 센스를 활용한 빠더너스팀의 의류 굿즈는 질이 좋고 디자인이 예뻐서 빠둥이(빠더너스 구독자 애칭)들 사이에 입소문이 자자하다. 그리고 팀원들도 영상에 굿즈로 제작한 옷을 자주 입고 등장해서 핏이나 코디를 참고할 수 있어 좋다.


나는 아직 빠더너스 굿즈를 구매해 본 적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른 굿즈들보다도 옷을 사 볼 생각이다. 꼭 '비디오 키즈'가 찍힌 걸로.(그게 제일 멋있음) 원하는 걸 사려면 피켓팅에 버금가는 경쟁을 거쳐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유는 없지만 왠지 그 옷을 입고 일하면 빠더너스팀처럼 좀 더 즐겁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거 같다. 거기다 회사의 이사님과 동료들을 꼬셔서 가위, 바위, 보로 커피 내기까지 하면 옷을 부적 삼아 적어도 꼴찌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도 있다.


유튜브 몇 편으로 시작해 이렇게 자연스럽게 일상에까지 스며들 수 있다니 사뭇 상훈님과 빠더너스팀의 감성과 재능에 놀라면서 앞으로도 좋아하는 거 재밌게 해 주시길 바라고 건강하고 긍정적인 에너지 뿜뿜 해주시길 바라본다. 그리고 아직 빠둥이가 아니신 분들에게는 부담 없이 웃을 수 있는 밥친구로 추천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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