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5일 중 3번 도시락을 싸고 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꿈도 못 꾸던 일이다. 회사는 통근 시간이 왕복으로 3시간 정도여서 도시락은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 회사 위치도 홍대라 눈을 돌리는 곳마다 식당이고 줄 서는 맛집이 즐비했으며, 매번 다양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과 하루 중 가장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는 점심시간이라는 이유를 들어 잠시 칼로리에 무관한 채로 말 그대로 마음 편히 외식을 즐겨왔다.
그런데 그것도 1년이 다 되어 가니 아무래도 일행이 있어서 어딜 가나 메뉴를 통일해야 했는데 나중에는 굳이 메뉴를 맞추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취급 메뉴가 많은 식당이나 분식집을 자주 가게 되었고, 거기서도 늘 먹는 음식만 반복해서 주문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나마 백반집이나 분식집은 비용 측면에서 부담이 없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웠지만 물끄러미 내 앞에 놓인 음식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여기에 어떤 영양소가 있을지, 그리고 점점 질려가는 기분 나쁜 익숙한 맛에 우물우물 기계적으로 저작운동에 집중해야 하는 순간도 몇 번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가끔 챙겨보는 오늘의 집 유튜브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는다. 주인공은 자취하는 직장인이었는데 여느 주인공들과 비슷하게 집이 카페처럼 깔끔하고 스타일리시했다. 그런데 내가 충격을 받은 건 후반 부 그럴듯한 식재료들이 라벨링 되어 정리된 냉장고 안을 봤을 때였다. 아니다, 거기까지는 참을만했던 것 같다. 살림 좀 한다는 고수들의 냉장고도 몇 번 본 적이 있어 내성이 있었던 덕분이었으리라.
가장 큰 충격은 바로 주인공이 수줍어하며 널어놓은 도시락 보를 꺼냈을 때였다. 귀여운 체크무늬의 도시락 보는 손잡이가 달려있어 몇 번 교차해서 묶는 방식이었다. 프로그램의 mc가 도시락 보를 보고 귀엽다며 크게 감탄한 덕인지 주인공은 이번엔 조금 더 당당한 태도로 에어홀이 있는 실리콘 도시락 통을 소개했다. 따뜻한 음식이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영상을 다 볼 때쯤 나는 어쩐지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본 듯 갑자기 소유욕이 치솟는 걸 느꼈다. 최근에 귀여운 걸 봐도 귀엽다는 생각이 안 들고, 귀여운 소품들을 사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러지 않는 사람이구나 막연하게 스스로를 조금 삭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 나도 귀여운 걸 보면 못 참는 사람이구나. 무감하다고 누가 뭐라고 한 사람도 없는데 괜히 다행이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30대 중반인 내가 미처 몰랐던 나의 새로운 취향을 깨닫게 된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귀여운 도시락 보와 에어홀이 있는 도시락통 덕분에 나름 건강하고 맛도 괜찮고, 따뜻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또한 작은 변화지만 매일 비슷한 하루를 다르게 만들어주는 말랑말랑한 영감과 취향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귀여운 것에 자주 감탄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남보다 말랑말랑,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