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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산다

by ri

고양이와 산지 어느새 2년 차가 되었다. 그런데도 옆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곤히 잠을 자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으면 이 녀석이 정말 우리 집 고양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쩐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면 괜히 민들레 홀씨 같은 털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거나 부드럽고 따뜻한 뱃살을 아프지 않게 조물조물거리면서 녀석의 작은 품을 비집고 들어간다. 처음엔 그런 손길이 낯설어서 피하던 녀석도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포기를 한 건지 몇 번 야옹거리다가 참을만하면 눈을 지그시 감는다.


모든 반려동물들과의 만남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고 연이 닿아 이루어진 것이겠지만 나 역시 고양이와 어떤 운명으로 만나게 된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재작년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든 때가 있었다. 많이 힘들어서 병원도 다니고 약도 먹어야 했는데 일상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란 의문과 두려움을 품고,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단단한 마음가짐을 하던 때였다. 힘을 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지만 막상 곁엔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외로움이 깊이 사무쳤다.


그러다 생각만 하던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어플을 설치하게 되었고 유심히 아이들의 얼굴을 살폈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데려오고 싶었지만 마음과 몸이 약한 상태에서 입양하는 게 동물에게도 좋지 않을 거 같아 늘 눈에만 담아두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용기가 났는지 눈에 어른거리던 턱시도 고양이의 입양공고가 마감된 걸 보고는 급하게 동물병원에 연락을 했고 임시보호를 문의했다. 담당 선생님은 다행히 턱시도 고양이는 입양을 갔고 임시보호는 하지 않는다고 다른 고양이들도 많으니 한 번 보러 오라고 하셨다.


막상 보호소에 가보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관리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환경이 열악했다. 그래서 처음엔 보고만 가려고 했으나 아이들의 상태가 눈에 밟혀 급 한 마리를 데려오는 것도 괜찮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고양이를 만지거나 안아보지도 못하고 눈만 꿈뻑꿈뻑거리는 아이들과 몇 번 눈을 맞추고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됐는지 중성화나 접종 여부, 건강 상태는 어떤지 정도만 설명을 듣고 입양할 고양이를 결정해야 했다.


그중 마음에 가는 아이가 있었지만 잇몸병을 앓고 있어서 보호소 선생님께서 케어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다음으로 눈길이 가던 아이를 데려오기로 했다. 녀석은 사람을 좋아하고 애교가 많은 편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원래 지내던 곳인 듯 편하게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본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무릎에 올라와 꾹꾹이를 하는 녀석을 보면서 운이 좋게도 개냥이를 키우게 되었구나 즐거워했다.


그런데 밤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친구들을 부르는지 밤새 울어대는 것이었다. 3일째 잠을 못 자고 병원에 데려가 안정제를 받아왔다. 약을 먹은 아이는 몇 시간 조용히 있다가 잠깐 자더니 깨어나 다시 울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이러다가 내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에 갑자기 겁이 났다. 그래서 죄송하게도 다시 보호소에 연락을 드렸고 사정을 설명한 뒤 고양이를 돌려보내게 되었다.


보호소나 고양이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지만 보호소 선생님이 조용하고 얌전한 녀석들을 추천해 주셔서 며칠 후 지금의 우리 집 고양이 단무를 입양하게 되었다. 보호소 선생님은 얌전해서 별명이 중전마마라고 소개하셨다. 고양이에 대해 잘 몰라 그나마 손이 덜 가는 조용한 아이이기를 바랐는데 아들 고양이 뒤에 몸을 숙이고 가만히 있던 단무를 보자 그때까지도 긴장하고 주눅 들었던 마음이 안심되었다.


택시로 집에 오는 동안 두어 번 야옹 소리를 낸 단무는 이틀 정도 화장실만 가고 캐리어에서 나오지 않다가 조금 안정을 찾았는지 캐리어를 벗어나 냉장고 뒤편의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2주 정도 되었을까 단무는 조금씩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처음 입양했던 고양이가 자기 집처럼 이곳저곳을 활보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단무는 차라리 내 선입견 속의 고양이와 더 가까워서 마음이 오히려 편했던 것도 같다.


다가가면 구석으로 숨던 단무는 지금 손을 뻗으면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비비고 내가 누워있으면 겨드랑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만족한 얼굴을 한다. 거기다 눈을 빤히 바라보며 뭐라고 말하듯이 야옹거릴 땐 정말 대화를 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우리는 많이 친해졌다. 거기다 겁이 많고 소심하면서도 차분한 성격이 나랑 잘 맞아서 생활하는 데도 불편함 없이 (내 입장에서는 그렇지만 단무가 어떤 불편을 겪는지는 모른다) 잘 지내고 있다.


지금보다 할 일이 많아지고 신경 써줘야 할 것이 많아지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다행히 왜 이제 데려왔을까 더 빨리 만났어도 좋았겠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랬으면 단무를 만날 수 없었을 테고 의도치 않게 한 마리를 파양 보내고 두 번째만에 단무를 만난 것도 운명이 아니었으면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게 참 많은 인연 중에 우리가 만난 것이 다시금 소중하게 여겨졌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돌려보낸 개냥이는 다른 집에 입양을 갔고 거기선 안 울었다고 한다. 그런 거 보면 정말 다 정해진 짝이 있는 거 아닐까.


“내게 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온다. 만약 오지 않는다면 내게 오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2024년 내게는 단무가 꼭 필요했던 존재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일들을 거쳐 한 가족이 되었다. 내 건강도 금방 회복세에 접어들어서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많은 일들이, 또 그만큼 많은 인연이 지나갔던 2024년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2025년도 2024년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과 기회들이 올 것이다. 내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해야겠다. 내 곁엔 단무가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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